[칼럼] 엘랑비탈, 밤의 깊이 속으로
[칼럼] 엘랑비탈, 밤의 깊이 속으로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09.06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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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사)한국음악협회 예산군지부장(아트&뮤직 큐레이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로 ‘2020 도쿄올림픽’이 사상 최초로 1년 연기된 끝에 개최돼 17일 간의 열전을 마쳤다. 2002 월드컵 때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보냈던 응원 박수는 박치(拍癡)도 무색함을 떨쳐낼 만큼의 ‘국가리듬’이 됐다. 비더레즈(Be the Reds!) 티셔츠를 입으면 어떤 차에 올라타도 함께 응원했던 시절, 심장 대신 대한민국이 가슴에서 뛰던 추억이 새삼 돋는다.

이번 올림픽은 배달음식을 앞에 놓고 가족들과 함께 TV 너머로 응원을 보내며 오랜 코비드 우울에서 벗어나 모처럼 행복을 느꼈던 기간이었다. 선수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다 함께 감동했다. 특히 홍성 출신 장준 선수가 태권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것은 우리 지역의 자랑이었다. 오랜 준비기간 열정으로 달려왔던 그들,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에게서 ‘엘랑비탈(Elan Vital)’을 느낄 수 있었다. 엘랑비탈은 철학자 베르그송의 용어로 ‘항상 새로운 자기를 형성하기 위해 생명의 내부에서 분출되는 힘’이다. 심장을 생명력으로 충일케 하는 엘랑비탈이 스포츠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랴?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를 꿈꾸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의 나’라는 희망과 긍정의 엘랑비탈을 갖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 필자도 젊은 날엔 ‘삶과 시간이 여유로운 중년의 사모님’이 되고파 커트라인 없는 무한상상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인생 리셋(reset)을 통해 변곡점이 만들어졌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예술인’이 됐다. 예술은 ‘열정’이라는 근원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 때, 화상이었고 목사였고 탄광에서 일 했던 빈센트 반 고흐, 그는 27세에 화가가 돼 10여년 동안 10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영혼을 불태운 열정의 화가’ 고흐의 심장을 설레게 한 엘랑비탈은 무엇이었을까?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반 고흐: 위대한 유산(The Van Gogh Legacy)’, ‘반 고흐(Van Gogh)’,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 등 그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한 결 같이 광기로까지 치부되는 열정을 그리고 있다. 고흐는 에르네스트 르낭(Joseph Ernest Renan)의 말을 빌어 평생의 경제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동생 테오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진정으로 훌륭하고 유용한 일을 하려는 사람은 대중의 찬성이나 평가를 기대하거나 추구해서는 안 되며, 열정적인 가슴을 가진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의 공감과 동참만을 기대해야 한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 모르지만…”이라고. 위대한 화가 고흐도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까? 하지만 그는 유명세가 아니라 가슴을 뛰게 하는 그림 자체에 열정을 쏟아 부었다.

자신의 일에 관심과 열정을 쏟다보면 비록 고흐만큼은 아니어도 결국 배구의 김연경, 태권도의 장준 선수처럼 자기 분야에서 그 이름을 인정받게 되지 않겠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위해 끊임없이 엘랑비탈을 유지하는 것이다.

오늘 밤은 미국 가수 맥클린(Don Mclean)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Starry, Starry Night)’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추억의 팝송 ‘빈센트(Vincent)’를 듣고 싶다. 이 곡은 맥클린 자신이 가장 힘들고 어두웠던 시절에 공감했던 고흐의 삶과 일, 죽음을 묘사했다. 그 역시 노래에 대한 엘랑비탈을 가졌었기에 이 주옥같은 유산(heritage)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전자음이 섞이지 않은, 잔잔한 나일론 줄의 기타소리와 감성 촉촉한 그의 목소리를 만나보자. 그리고 한 시기를 수놓은 예술가들이 서로 일면식도 없지만 영혼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느껴보자. 귀뚜라미 우는 가을의 초저녁, 고흐의 그림과 맥클린의 노래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엘랑비탈, 심장을 뛰고 설레게 하는 밤의 깊이 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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