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고달픈 내 삶 떠받치는 힘이었다”
“책은 고달픈 내 삶 떠받치는 힘이었다”
  • 이번영 ‘풀꽃’ 편집인
  • 승인 2021.09.13 08: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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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독서모임 6명 ‘40주년 자서전’ 출판
갓골자서전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왼쪽부터)주정자, 이영남 교수, 이재자, 노의영, 군정렬, 이승진, 이승자.
갓골자서전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왼쪽부터)주정자, 이영남 교수, 이재자, 노의영, 군정렬, 이승진, 이승자.

매주 목요일 함께 책을 읽는 할머니들이 모임 40주년을 맞아 자서전을 출간했다. 이승진(83), 노의영(81), 권정렬(80), 이승자(80), 주정자(77), 이재자(77) 씨 등 6명은 각자 자서전을 써서 ‘갓골자서전’이란 이름의 한 질로 묶어 펴냈다. 홍동면 운월리 갓골마을에 위치한 도서관 등에서 모임을 가졌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풀무학교 교사 부인, 기숙사 식당 조리사. 할마니반찬가게 등에서 일했던 이들의 책은 학교 개교, 비누공장, 밝맑도서관 건립 등 풀무학교와 홍동지역 사회 운동의 이면사를 볼 수 있어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들은 출판기념회 성격의 모임을 갖고 그간의 경위와 소감을 밝혔다. 2013년 5월 17일 자서전을 쓰기로 합의한 후 8년 만에 책을 출판했다.

자서전 쓰기를 지도했던 이영남 한신대 교수(문학박사·임상 역사가)는 “갓골자서전을 읽는 것은 지역의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읽는 것이다”고 말했다. 출판을 맡은 장은성 그물코출판사 대표는 “수십 년간 책을 만들었지만 8년 걸린 책은 처음이며 내게도 가장 보람 있는 책”이라고 전했다.

풀무학교 서무과장으로 농촌전도활동을 했던 고 유원상 씨가 여교사, 교직원 부인, 여성 졸업생 등 12명에게 일본 우찌무라 간조 전집 셋째권(일기편)을 복사해 나눠주며 같이 읽은 게 모임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당시 참여했던 김경숙 전 교사가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라고 말하고 있어 1981년이었음이 확인된다. 올해로 만40년이 된 것이다.

일본 무교회주의 기독교 창시자 우찌무라의 성서강연을 모은 전집 20권을 4년에 걸쳐 읽었다. ‘김교신 전집’,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 ‘태백산맥’ 등을 완독했다. ‘임걱정’은 “피 튀기는 험악한 말들이 많아,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좋은 말만 있는 책을 읽자”며 중단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태어나고 글 쓴 현장도 보고 싶어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강원도 박경리 토지문학관 답사도 했다.

모임 이름의 필요도 못 느꼈던 이들이 할머니가 되자 사람들은 ‘할머니독서모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10명이 넘던 참가자는 퇴직, 이사 등으로 6명으로 줄었지만 책 읽기는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매주 목요일 저녁 또는 오후에 학교에서 또는 회원 집을 순회하며 책을 읽었다. 30페이지 분량을 정해 각자 읽고 와서 소감을 나누며 줄친 부분을 다시 읽는 방법으로 2시간이 걸린다.

이달부터는 홍동농협 로컬푸드 2층 카페에서 우찌무라 전집을 두 번째 읽기 시작했다. 풀무재단 한 실무자는 거동이 불편한 주정자 씨를 운월리 창정에서 독서모임 장소까지 매주 자신의 자동차로 데려다주는 봉사를 다짐했다.

이재자 씨는 “우찌무라 전집을 읽을 때는 작가의 고통스런 경험과 영혼이 통해 함께 운다. 우리 몸은 늙어가지만 독서로 새로운 영혼을 공급 받는다”고 말했다.

오래 혼자 살며 건강이 좋지 않은 주정자 씨는 “책읽기는 고달픈 내 삶을 떠받치는 유일한 힘이었다”고 말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같이 읽고 함께 산다’는 책을 썼다. ‘한국의 독서공동체를 찾아서’라는 부제목이 붙은 이 책은 전국 24개 독서모임을 찾아다닌 탕방기다. 보령 책 읽는 마을 활동회원은 50명으로 전국 최대모임이며 제주도 남원북클럽은 2011년 4명이 시작해 10명 넘게 참석하고 2004년에 시작한 원주 그림책 연구회는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의 공동독서모임 등의 특징을 갖고 있으나 홍동 할머니독서모임은 국내 최장의 모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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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조아 2021-09-13 23:59:56
멋진 모임이네요.
부러워요.
뭘 계속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40년이라니....존경합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쭉~이어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