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합니다
[칼럼]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합니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09.17 09: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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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호 취재국 부장

필자는 2005년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 무렵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나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교 동문의 부모님을 뵌 일이 있었는데 그 친구는 필자를 이렇게 소개했다. “엄마 ‘기자’ 친구야!” 어쩌면 오해였는지도 모르지만 그 소개말 후 어떤 신뢰나 인정 같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예전에는 그랬다.

얼마 전 ‘언론중재법’으로 시끄러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 개정안이 제대로 된 것인지, 그 취지가 옳은 것인지, 그 의도가 불순한 것인지는 따져보지 않았다. 어찌됐든 언론도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은 갑자기 세상이 바뀌어서가 아니다. 그래, 기자는 ‘기레기’가 됐다.

기자가 ‘기레기’가 된 것에 대해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훌륭한 선배, 좋은 동료, 기대되는 후배들을 많이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상황이 이른바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유력·보수언론만의 탓이라는 생각은 안 든다. 모두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 친구의 부모님께 사과드리고 싶다.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합니다.

얼마 전 유재석이 진행하는 한 프로그램에 박지성이 나왔다. ‘해버지’ 박지성은 우리의 영웅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영웅을 마음에 갖고 있다. 부모님일수도 있고, 선생님이나 아티스트일수도 있고, 이순신 장군 같은 위인일수도 있다. 필자의 영웅은 故 신해철이다. 더 많이 꼽을 수도 있겠지만, 딱 한 명이라면 바뀌지 않을 것이다.

불혹(不惑)을 넘긴 필자가 소년이던 시절에는 절차탁마(切磋琢磨), 우각괘서(牛角掛書) 해서 ‘마왕처럼’ 누군가의 영웅이 되고 싶었다. 잘만 하면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삶이 그리 녹록치 않고, 세상이 그리 너그럽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세상 탓을 하는 건 아니다. 스스로를 꾸짖을 뿐이다.

영웅이 될 수 없다고 해서 동기부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원대한 꿈은 접었지만, 필자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부자 아빠’도 애당초 그른 것 같고, 그저 이 사회에 해 끼치지 않고 누군가에겐 가끔 도움이 되고 간혹 인정과 지지도 받는 ‘어른’이 되길 소망했다. 그런 어른들이 많아지면 우리 다음 세대 중에는 영웅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 여겼다.

지난 14일 홍성도서관이 마련한 김누리 교수 강연을 들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한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이 세계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아동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우울한 아이’란 말은 ‘검은 백마’처럼 형용 모순이다. 한국의 아이들은 기적적으로 우울한 것이고, 그건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내용이었다. 또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란 지적도 곱씹어봐야 한다. 어른들의 책임인지, 진짜 어른이 부족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추석 연휴다. 코로나 때문에 예전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마주하는 가족과 친척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너무 빨리 시작된 과도한 경쟁 속에서 숨통이 조여듦을 느끼는 소년·소녀가 있을 수도 있고,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을 향해 발버둥치고 있는 젊은이가 있을 수도 있다. 물론 그 잠깐을 틈타 부담감과 좌절감을 안기는 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 믿는다. 필자도 조카들에게 어른처럼 보이려 애쓰고 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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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wnakds 2021-09-23 14:53:38
기자님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