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1)
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1)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6.12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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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팔 청룡구청장은 지각대장이었다. 취임 1주년 지역신문기자 초청간담회에서도 그는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구청장님이 일찍 오셔도 잡아먹을 사람 없는데 오늘도 늦어지시네요.”

용머리신문의 박하식 부장이 웃으면서 홍보실 직원들에게 한 마디 던졌다.

“우리 구청장님은 청룡구에서 제일 바쁜 분 아니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역대 어느 청장보다 부지런하시고 열심히 뛰어다니시는 분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겨우 3분 지났는데 2분만 더 기다립시다.”

이상남 언론홍보팀장이 대답했다. 우리는 구청 직원들이 나눠준 보도자료를 뒤적거리며 임 구청장을 기다렸다. 언론홍보팀에서 임의로 질문을 만들어 구청장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인터뷰 기사를 정리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임종팔 구청장이 취임하자마자 가장 관심을 갖고 추진해왔던 한 가지 사업이 누락된 사실을 발견했다. 지난해 임 구청장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제1순위로 내건 공약이었을 뿐만 아니라 구청장이 된 후에도 4년 임기 동안 꼭 해내겠다고 줄곧 공언해왔던 ‘청룡랜드’ 조성사업이 보도자료에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청룡구의 북쪽에 도시를 감싸듯 병풍처럼 펼쳐진 청룡산에 미국의 디즈니랜드 같은 세계적인 놀이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구청의 예산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사업이어서 국비와 시비를 받아내고 대기업을 설득하거나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개발하겠다고 줄곧 홍보해왔다. 임 구청장은 마치 그 사업 하나만을 위해 취임한 것처럼 주민들이 모인 곳에서는 어김없이 ‘청룡랜드’에 대한 청사진을 밝히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곤 했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500m도 채 안 되는 청룡산은 있는 그대로 놔둬도 주민들에게 훌륭한 휴식처였다. 계곡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흘러내리고 무성하게 자란 소나무를 비롯해 온갖 종류의 잡목과 식물들로 울창해 청룡구 주민들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주민들도 많이 찾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곳을 파 뒤집어서 굳이 세계적인 놀이공원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보고 즐길 거리가 많은 유료화 시설로 개발함으로써 더 많은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게 되면 구의 재정자립도를 한층 더 높일 수 있고, 주변의 상가도 활성화된다는 논리였다. 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파트 값도 덩달아 올라 주민들이 엄청난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선전했다.

우리가 기자로서 그것은 많은 문제점이 보였지만 함부로 비판할 수 없었다. 같은 지역 동업자로서 푸른용뉴스가 6개월 전 바로 이 사업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기획기사를 실었다가 지금 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당시 푸른용뉴스의 서경만 기자는 청룡랜드 사업에 대해 심각한 자연환경의 훼손을 우려하면서 법률적으로도 많은 제약이 따를 뿐 아니라 대기업이나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겠다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민들에게 쓸데없는 환상을 심어주는 ‘공약(空約)사업’은 일찍 포기하고 나무와 숲을 살리고 자연을 보호하는 정책을 줄곧 유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가 실린 푸른용뉴스가 배포되자마자 청룡구청은 발칵 뒤집혔다. 구청은 그 신문에 지원하던 보조금을 바로 끊어버렸다.

<2편은 6월 19일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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