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우 재경향토사학자, 주류성은 장곡산성
이강우 재경향토사학자, 주류성은 장곡산성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6.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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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헌 뒤지며 틈나는 대로 현장답사 백제사 연구
이강우 재경향토사학자, 그는 장곡초교가 최종학력이지만 지난해 출간한 '백제사기의 비밀과 유적'은
이강우 재경향토사학자, 그는 장곡초교가 최종학력이지만 지난해 출간한 '백제사기의 비밀과 유적'은 거의 박사학위 논문급 저작물로 주목받는다.

백제가 패망할 무렵 신라와 당나라와 맞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 중의 하나가 주류성이다. 그러나 주류성은 고문헌에만 나와 있는 지명일 뿐 지도상으로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당시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군이 백강을 통해 사비성으로 들어왔다고 하는데 백강 역시 백제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강 이름이어서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난무할 뿐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주류성과 백강에 대해 다양한 지역이 언급되고 있는 가운데 홍성 출신 재경향토사학자 이강우(66) 씨도 나름대로 연구한 근거를 제시하며 이 논란에 가세했다.

이 씨는 지난해 ‘백제사기의 비밀과 유적’(맑은샘)이라는 단행본을 내고 주류성은 홍성군 장곡면 장곡산성, 백강은 충남 아산시 무한천 하류부터 삽교호까지 이어지는 하천이라고 주장했다. 또 당나라군이 군산 방면에서 군선을 이끌고 금강을 따라 올라와 마지막 하선을 한 기벌포는 전북 익산시 성당포라고 추정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학계가 주장하고 있는 주류성의 위치는 부안 우금산성, 부안 위금암성, 무주 당산산성, 서천 건지산성, 연기(세종) 당산산성 등 실로 다양하다. 백강 혹은 백촌강도 금강 하구, 동진강, 백마강 등 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반기를 든 이강우 씨가 주류성을 장곡산성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백제 부흥군의 최후 보루가 임존성이었고 이에 근접한 홍성 장곡의 산성이 주류성입니다.”
임존성은 홍성군 장곡면과 바로 이웃한 예산군 대흥면 봉수산에 있다. 이 씨는 고문헌을 두루 연구한 결과 당시 임존성에서 주류성이 지근거리에 있다고 기록된 점에 주목했다. 당시 신라군이 임존성 공략에 실패하고 후퇴하면서 당나라군과 함께 이동한 동선을 따라 주류성이 장곡산성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이강우 씨는 2010년경 우연한 기회에 장곡산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 무렵 장곡의 근래 사회상과 문화유적에 대해 관심을 갖고 동네를 다니며 전래이야기를 수집해 ‘장곡이야기’를 출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故) 김갑현(金鉀鉉 1932~2001) 선생이 향토사학자로 주류성에 대한 연구를 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장곡산성이 주류성임을 입증하는 그의 저서 '백제사기의 비밀과 유적' 표지
장곡산성이 주류성임을 입증하는 그의 저서 '백제사기의 비밀과 유적' 표지

이 씨는 김갑현 선생의 유족으로부터 고인의 유고를 건네받고 읽어보았다. 주류성에 대해 연구한 원고였는데 바로 자신의 고향에 있는 장곡산성이 가진 엄청난 역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학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좀 더 연구할 필요를 느꼈다. 그는 곧장 사료 수집에 나섰다.

주류성을 장곡산성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김갑현 선생보다 앞서 박성흥(朴性興 1917~2008) 선생이었다. 이 씨는 서울의 한 서점에서 박성흥 선생의 저서 ‘진번목지국과 백제부흥전’을 구입했다. 그러나 박성흥 선생의 책에는 복신굴과 백강의 위치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고 판단한 그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일본서기를 함께 구입해 독해를 하는 한편 시간만 나면 현장답사도 했다.

그가 주류성 연구를 위해 서울에서 자주 고향을 왕래하는 동안 홍성의 향토사학자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홍성에서는 주류성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상태에서 전옥진, 전하수, 황성창, 복익채 등 향토사학자들이 이 씨가 하는 연구에 큰 관심을 보이며 격려했다. 그 중 복익채 선생은 이 씨를 홍주향토문화연구회 회원으로 가입하도록 주선했다. 2016년 4월 이 씨를 회원으로 영입한 홍주향토문화연구회는 백제주류성연구소를 만들어 그를 소장으로 임명하면서 연구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 씨는 이 같은 성원에 힘입어 서울에서 직장생활로 바쁜 가운데서도 그 동안 주류성에 관해 집필한 원고를 마무리했고, 홍주향토문화연구회에서는 자체 기금 150만원과 군비 350만원을 지원받아 총 500만원으로 2017년 10월 말까지 1000여부를 발간하기 위한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예정된 시기에 책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2017년 11월 15일 이강우 백제주류성연구소장은 일방적으로 제명처분을 당했다. 서울에 있던 이 씨는 이러한 사실을 우편으로 통보받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향토문화연구회가 이 씨를 적극 지지하고 밀어주다가 갑자기 이 같은 태도로 돌변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 씨의 말에 따르면, 그가 괘씸죄로 걸린 이유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백강과 주류성을 찾아서’ 책자 발간용 원고 교정지가 서울 자택으로 와서 살펴보던 중 이 씨는 총 179쪽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내용이 있는 68쪽이 삭제되고 다른 내용으로 50여 쪽이 재편집된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이 씨는 저자와 아무 상의도 없이 연구 내용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함께 10월 23일 책자 발간과 인쇄 중지를 요청하는 내용증명을 연구회 대표 앞으로 보냈다. 그러자 연구회가 앞으로 저자의 원고를 전면 사용하지 않겠다며 11월 12일 이사회를 열어 이강우 소장의 회원자격 박탈을 결의하고 사흘 후 15일 회원들을 소집한 회의에서 최종결정을 내렸다.

결국 이 씨는 2018년 8월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고 고향의 독지가들의 후원을 받아 ‘백제사기의 비밀과 유적’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낼 수 있었다. 지금 그의 꿈은 학계에 자신이 연구한 내용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그러나 학벌도 없고, 소속된 연구단체도 없어 강연무대에 서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는 무엇보다도 고향에서 장곡산성에 대해 발표할 기회를 갖고 싶어 한다. 올해 초 장곡면에서 면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강연회를 추진하기도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한국문인인장박물관에서 그의 영원한 멘토가 된 소설가 이재인 관장과 함께.
한국문인인장박물관에서 그의 영원한 멘토가 된 소설가 이재인 관장(오른쪽)과 함께.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요즘 늘 고향에 가면 만나곤 하는 이재인 한국문인인장박물관 관장을 그의 멘토로 모시고 큰 위로를 받는다. 한때 베스트셀러 소설가로서 경기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이 관장을 통해 그는 국내의 유수한 사학자들을 소개받고 자신의 저서도 두루 기증했다. 그들에게서도 인정을 받은 그의 ‘주류성’이 유력한 학설로 인정받을 날은 결코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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