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4)
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4)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7.12 18: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 실장이 다소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일장 연설을 했다.

“지역신문과 구청은 같이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중앙지를 따라가려고 하면 안 돼요. 다시 말해서 구청이 하는 일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많이 부각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앙지 기자들은 꼭 부정적인 면만 크게 부풀려 보도합니다. 메이저 일간지나 방송사 기자들의 생리가 늘 비판적인데, 걔네들이야 워낙 취재경쟁이 심해 쇼킹한 것을 자꾸 터뜨려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우리는 쓴 표정으로 밥값을 위해 구청이 원하는 보도지침을 잠자코 들어줘야만 했다.

“우리는 지난 2월 푸른용뉴스와 절교를 선언하면서 냉정하게 말했어요. ‘당신들 쓰고 싶은 대로 맘껏 써라. 대신 우리는 앞으로 거래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곤 곧장 보도자료 발송도 중단하고 그 신문사로 매월 나가던 보조금도 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통·반장들과 주민자치위원들한테 구청을 까는 기사 보라고 그런 신문 구독료를 대납해 줄 필요가 없잖아요. 그 후 5개월 쯤 지났더니 곧 문을 닫을 정도로 힘들다는 말이 들립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께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자, 이거 밥상 앞에서 너무 긴 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밥맛 떨어질 것 같아 이 정도만 말씀 드리고 식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그치기가 무섭게 선동적으로 박수를 주문하는 소리가 나왔다.

“자, 박수…, 박수!”

청룡신문의 노진걸 사장이었다. 도무지 박수칠 기분이 아니었으나 우리는 노 사장의 부추김에 이끌려 어색하게 손뼉을 쳤다. 노 사장은 작년 지방선거 때 임종팔 구청장과 대등하게 싸웠던 상대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개표 결과 임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그는 무척 어려운 처지가 되었지만 재빨리 그의 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노 사장은 청룡신문의 지면을 대폭 할애해 임종팔 구청장 당선자를 띄우기 시작했다. 임 당선자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성장한 과정부터 한국 최고의 명문대에 진학해 5공화국 시절 학생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면서 광역의원으로 재선까지 한 후 기초자치단체장에 두 번째 도전해서 꿈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을 써서 무려 4회에 걸쳐 연재했다.

청룡신문 윤은실 편집국장이 임 구청장의 전기를 직접 쓴 장본인으로서 구청과의 관계를 호의적으로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여기자로서 반듯한 외모까지 갖춘 것도 한몫을 한 듯 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 식사하기 전에 먼저 건배부터 합시다. 각자 앞에 있는 잔을 채우세요. 건배는 이 자리에서 연세도 가장 많고 유일하게 언론사 CEO로 참석하신 노진걸 청룡신문 사장님께서 하시겠습니다.”

조 실장이 박수를 유도한 노 사장에게 당장 보답이라도 하듯 건배사를 하게 했다. 윤은실 국장도 사주와 함께 와 있었다. 벌써부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노 사장은 소주잔을 번쩍 들고 외쳤다.

“자, 청룡구청과 임종팔 구청장님과 지역신문의 발전을 위하여!”

“위하여!”

나는 억지로 건배를 했지만 벌떡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용기도 없고 마땅히 둘러대고 나갈 핑계도 없어서 쓴 소주를 목구멍에 털어 넣고 젓가락을 더듬었다. 그래도 초밥과 참치 살점이 목구멍을 넘어가 다행이었다. 가난한 기자가 공짜 밥으로 점심 한 끼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잠시 조용한 가운데 각자 먹느라 바빴다.

<다음주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