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속
[칼럼] 구속
  • 내포뉴스
  • 승인 2022.07.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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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훈 시인 · 노동문학관장
정세훈 시인 · 노동문학관장

날은 저물고 어두어 졌다. 어둠도 짙어져 깊어졌다. 그 깊이가 자정 즈음 되자 어김없이 강아지 얼룩이가 심야 울음을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라. 오늘은 제발 너의 슬픔이 씻은 듯 사라져 울지 않길 바란다” 나의 간절한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는 얼룩이의 울음이, 어둠에 기울이는 내 귀에 화살처럼 날아와 꽂혔다. 나는 반사적으로 노동문학관 숙소 창문을 가렸던 블라인드를 황급히 올렸다. 어둠에 점령당했으나, 구속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얼룩이의 울음을 수색했다. 그러나 짙은 어둠 속에서 전조등 없는 내 두 눈은 번번이 수색에 실패했다. 다만, 낮에 보았던 얼룩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울음소리의 원근감과 방향을 가늠해 얼룩이의 울음이 현재 어느 지점에 있는가를 추정해 보았다.

얼룩이의 울음은 자정 무렵부터 새벽 세 시 경까지 며칠째 지속되었다. 숨 가쁘고, 자지러지고, 외롭고, 슬펐다. 그렇게, 자신의 거처가 있던 곳을, 이웃집 탱자나무 울타리 근처를, 노동문학관 앞 버스 길을, 버스 길 건너 공장 마당 가를 배회했다. 

지난 5월 초, 어느 날 새벽 5시 경이었다. 무언가 폭발하는 굉음에 화들짝 잠을 깼다. 평생 처음 들어 본 엄청난 굉음이었다. 그 굉음에 노동문학관 건물이 순간 요동쳤다. 창문 방충망들이 뒤틀려 일부 모서리가 틀에서 벗어났다. 전시장의 전시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밖으로 뛰쳐나가 보니 인근 외딴집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워요. 어머니와 아들이 우리 교회 교인이에요. 두 분 다 우울증과 조현병을 앓고 있었어요. 증세가 더 심한 아들이 상담에서 말하기를, 시집간 누나가 찾아와서 관리를 잘해 주겠다며 통장을 자신에게 맡기라 했대요. 이번이 두 번째라며 누나의 구속을 받기 싫다고 하소연 했어요. 이번엔 정말 화가 나 죽고 싶다고 했었는데, 글쎄 홧김에 어머니 몰래 저녁에 가스레인지 줄을 가위로 끊어 놓고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 그걸 깜빡 잊고 라면을 끓이려고 점화했대요. 아들은 큰 병원으로 이송 중 사고 5시간 만에 사망하고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있대요.” 마을 교회 전도사의 애통 해 하는 전언이었다.

외딴집 강아지였던 얼룩이를 처음 알게 된 건 1년 6개월 전이었다. 저녁 산책길에 외딴집 근처를 지나치려는데 접근하지 말라는 듯 짖어댔다.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는 또 다른 강아지 흰둥이와 달리 기세등등했다. 삶터를 한순간에 가스폭발 화재사고로 잃은 얼룩이와 흰둥이는 껌딱지처럼 항상 함께 붙어 다녔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의기소침하지 않고 활달했다. 마을로, 들로, 산으로, 점차 활동반경을 넓혀갔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흰둥이는 보이지 않고 얼룩이만 보였다. “참으로 안 됐기도 하지. 끔찍하게도 그 하얀 강아지가 며칠 전 저녁때 버스 길에서 차에 깔려 그 자리에서 죽었대요.” 탱자나무 울타리 집 어르신의 말에 그 진위를 알게 되었다. 얼룩이의 심야 울음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새삼 인지하게 되었다.

외롭고 배고픈 얼룩이에게 우선 밥을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건 먼발치에서 건 얼룩이가 보이면 사료와 물을 챙겨 들고 갔지만, 도망쳐 버리곤 했다. 10여 미터 거리를 두고 사료와 물그릇을 놓아주고 물러나 보았다. 그러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도 얼룩이의 심야 울음은 계속 되었다. 며칠 후, 먹이를 완강하게 거부하던 얼룩이가 멀찌감치 놓아주고 온 사료와 물을 먹기 시작했다. “얼룩아!” 부르면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기도 했다. 그날 이후 얼룩이의 심야 울음은 멈추었다. 

어디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꼬박 하루 만에 나타난 얼룩이에게 이제까지 해온 방식으로 사료와 물을 주었다. 종일토록 굶었을 것 같아 평상시보다 두 배의 양을 주었다. 그리고, 멀찌감치 물러서서 지켜보았다. 밥을 주는 나로부터, “지난 24시간 동안 어디에 있었니?” “배탈이 날 수 있으니 허겁지겁 먹지 말고 천천히 물 마시며 먹어라!” “이제 맘 편히 노동문학관에서 살아가렴.” 이러한, 구속을 당하지 않는 얼룩이의 식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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