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내년에 촛불혁명 주도세력이 세상 바꿔야
김영호, 내년에 촛불혁명 주도세력이 세상 바꿔야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7.1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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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인농장에서 파프리카 재배하며 민중당 충남도당위원장 맡아
김영호 민중당 충남도당위원장은 예산 신암면 탄중리 육인농장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농민이다.
김영호 민중당 충남도당위원장은 예산 신암면 탄중리 육인농장에서 파프리카를 재배하는 농민이다.

박근혜정권 때였던 2014년 헌법재판소 판결에 의해 강제 해산당했던 통합진보당이 민중당으로 부활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세력으로 알려진 민중당이 2017년 10월 재건되면서 내년 봄에 있을 제21대 총선 판도를 어떻게 바꾸게 될지 벌써부터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기자는 지난 16일 예산 출신으로 민중당 충남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영호 위원장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민중당에 대해 자세히 소개한다면.
“민중당의 뿌리는 민주노동당이고, 통합진보당이다. 통합진보당은 박근혜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됐으나 그 후 다시 민중당으로 건설됐다. 농민과 노동자. 도시에서 포장마차를 하거나 청년학생들이 알바(아르바이트)하면서 참여하는데, 전국에 5만 명의 당원이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으로 재판거래를 한 것이 들통 나 감옥에 갔다. 그들과 처절하게 싸웠던 사람들이 바로 민중이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못할 때 당당하게 싸웠던 세력이 민중당 세력이라고 보시면 된다.

이석기 전 의원은 내란음모사건으로 5년 넘게 감옥살이 했다. 그분이 정전협정을 뛰어넘어 평화협정과 한반도 평화를 외쳤다. 그분은 그것 때문에 감옥에 갔고, 그 세력들은 그 시절 상당히 어렵게 보내야만 했다. 그 후 사람들은 평화협정과 정전협정을 얘기하고 있다.”

-중앙당에서는 누가 주도하며 이끌어가고 있나?
“전국의 노동자, 농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 민중당 속에는 농민당, 노동당, 청년당, 여성·엄마당, 빈민당이 있다. 이렇게 계급·계층별로 자기 작업복을 입은 채로 중앙당을 구성한다. 이상규 대표를 중심으로, 유일하게 현역 국회의원에는 김종훈(울산동구) 의원이 있다.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때 당시 통합진보당 소속 5명의 의원 중 한 명이었던 이상규 대표는 강제로 의원 배지를 강탈당했다.”

육인농장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파프리카 열매
육인농장에서 탐스럽게 익어가는 파프리카 열매

-지금 예산에서 직접 운영하는 육인농장에 대해 소개한다면.
“나는 예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1981년 제대하고 나서 처음에는 토마토를 시설 재배했다. 그러다가 1995년 육인농장을 설립하고 6명이 영농조합을 구성했다. ‘육인농장’은 여섯 명의 사람이 아니라 기를 육(育) 사람 인(人)을 뜻하며 파프리카를 재배한다. 6500평 규모여서 17명이 상시적으로 일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의장도 지내셨는데 언제부터 농민운동을 했나?
“81년 제대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왜 어렵게 농민이 살아야 하는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86년 가톨릭농민회에 몸담게 되면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전농은 1990년 4월 24일 출범했는데 그 전에 종교계의 보호를 받으며 활동했던 가톨릭농민회와 기독교농민회가 이때 다 해체됐다. 내가 전농 의장은 2014년 2월부터 2018년 4월까지 두 번 연임했다. 그 기간에 세월호 사건으로 촛불혁명을 주도하면서 박근혜정권과 처절하게 싸웠다.”

-그때 감옥은 안 갔나?
“박근혜가 감옥에 가면서 우리는 감옥행을 면했다. 대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감옥에 갔다. 백남기 농민이 2015년 민중총궐기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사망한 후 우리에 대한 탄압도 덜했다.”

-내년 총선에 대한 계획은.
“내년 총선에서는 2015~16년도 촛불혁명을 울궈먹은 세력들을 국회에서 몰아내야 한다. 2016~17년 박근혜가 탄핵을 당하고 감옥에 갔지만 그때 추종세력들은 국회에 다 가 있다. 당시 제도적인 한계 때문에 총선을 치르지 않았다. 내년에는 촛불혁명을 주도했던 민중당과 구 세력과의 대결로 총선구도를 짜야 한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혁명 때 나오지 못했다. 7~8년간 박근혜 정권 때문에 혁명의 광장에 무서워서 나오지 않았다. 그 암흑기의 막막한 시절 나섰던 정치인, 언론인, 학자가 없었다. 그때 주역이 되었던 세력은 민중당이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숟가락만 갖다놨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은 결코 오만해서는 안 된다. 나는 박근혜와 맞서 중앙에서 4년간 싸우다가 지금 지역에 내려와 있다.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싸워 이기겠다.”

-지역발전을 위해 구상하고 있는 공약이 있다면.
“그 동안 모든 정치인들이 공장을 유치하는 것을 지역발전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지역발전으로 이어졌는가? 고덕지역에 산업단지를 유치했지만 과연 지역이 발전했나? 냉철하게 뒤집어 보자.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 공장의 폐수와 연기 때문에 전부 절규하고 있다. 나는 농사짓는 사람은 제값 받고 농산물을 팔고,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받아도 아이들 학교 보내고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년·대학생들이 알바해도 살 수 있는 구조가 돼야지 공장 세운다고 예산·홍성 경제 좋아지지 않는다. 물론 인구 유입책으로 필요하겠지만 농민이 농사지어도 먹고 살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토·일요일 자기들(사업주들)은 다 쉬면서 노동자들은 왜 안 쉬게 하나. 내 새끼 학교 보낼 수 있으면 여기가 사람 살 수 있는 곳이다. 노동자와 농민이 일하고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희망이다.”
 
김영호 위원장은 신례원초교(26회), 예산중학교(23회)를 졸업했다. 그 후 산업체 기능공 양성과 함께 하사관 의무복무를 전제로 지원하는 국방부 장학금을 받고 천안공고에 진학했다. 1976년 고교를 졸업하고 입대한 그는 하사관으로 5년 7개월간 복무하고 1981년 예비역 중사로 전역했다. 제대 후에는 산업현장 대신 고향에 돌아와 농사꾼이 됐다. 그래도 공고에서 배운 용접과 선반 등 기계에 대한 기술이 시설농업을 하는데 꽤 유용했다며 한국 파프리카 농업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예산·홍성지역 야권연대 단일후보로 나가 새누리당 홍문표, 자유선진당 서상목 후보와 싸웠다. 보수성향의 두 후보와 3자구도로 치른 선거 결과 약 20%의 득표율로 선전했다. 민중당 충남도당은 현재 당원 1500명이다.

김영호 위원장은 7년전 2012년 제19대 총선 때 예산홍성에서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야권연대 후보로 나가 보수성향의 두 후보와 3파전을 벌여 20%의 득표율로 선전했다.
김영호 위원장은 7년전 2012년 제19대 총선 때 예산홍성에서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야권연대 후보로 나가 보수성향의 두 후보와 3파전을 벌여 20%의 득표율로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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