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장애 극복 약자의 대변자가 된 김헌수 의장
지체장애 극복 약자의 대변자가 된 김헌수 의장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7.24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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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벽 뛰어넘은 도시로 평가받아
김헌수 의장은 청년시절 불의의 사고로 지체장애를 갖게 됐지만 신앙으로 극복한 의지의 한국인이다.
김헌수 의장은 청년시절 불의의 사고로 지체장애를 갖게 됐지만 그 후 겪었던 어려움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했다고 오히려 감사한다.

홍성군의회(의장 김헌수)는 더불어민주당 5, 자유한국당 5, 바른미래당 1석으로 3개 정당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체 11명중 지체장애를 가진 의원이 3명이나 차지한다. 더욱이 이번 제8대 홍성군의회 전반기를 이끄는 수장도 장애인이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소통하는 의회

기자는 지난 19일 오후 홍성군의회 의장실에서 김헌수 의장을 만났다. 

-제8대 홍성군의회가 출범한지 1년이 지나면서 지금 분위기는.
“제8대 군의회는 초선의원이 많고 민주당과 한국당의 5:5 구도에 미래당 1석까지 3당이 다 모였지만 염려와는 달리 원만하게 잘 운영되고 있다. 엊그제 개원 1주년 기념행사를 하는데 기자들도 제8대 홍성군의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를 해 나름대로 만족한다. 홍성군의회는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문을 활짝 열어놓고 소통하는 의회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의장님을 비롯해 장애인 의원이 세 분이나 돼 홍성지역 장애인들의 기대가 클 것 같은데.
“홍성군의회에서 전체 11명중 장애인 의원이 3명이 들어와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홍성군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과 편견의 벽을 뛰어넘은 도시로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는 홍성군의 복지 수준이 높아져 장애인들이 더 행복하고 더 잘 살 수 있도록 의정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내포신도시에 혁신도시 유치를 추진하고 있으나 최근 국회 소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는데. 
“내포 혁신도시 지정건이 이번 국회에 통과되지 않았지만 다음 회기 때 올라가서 재논의될 것으로 본다. 그때는 더 좋은 조건으로 통과될 것으로 확신한다. 언론에서는 이번에 보류된 것으로 보도했는데 보류가 아니라 다음 회기로 미뤄졌을 뿐이다.”

-홍성군이 서해복선전철 삽교역사 신설을 반대해 예산군에서 많이 걱정하는데.
“예산군 살림에 대해 우리가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홍성역세권을 더 멋지게 개발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지난 5월 역세권 개발 방안에 대해 의회 차원에서 공청회 열어 좋은 답을 얻었던 적이 있다. 그런 식으로 대안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예산·홍성 통합론에 대해 개인적인 입장은. 
“예산과 홍성은 옛날부터 경쟁의식이 있었으나 이제 내포와 함께 통합시가 돼야 한다. 양군은 도청 수부도시로서 함께 성장해 나가야 된다.” 

-3년 후 지방선거에서는 어떤 선택을 할 계획인가?
“3년 후 계획을 벌써 얘기할 수 없다. 지금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하다가 3년 후 주민들이 기대하는 자리에서 함께 하겠다.”

■고난은 오늘을 위한 훈련의 과정 감사할 뿐

김헌수 의장은 한쪽 팔이 의수다. 원래 그는 사지가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청년시절 군대도 갔다 왔다. 그러나 31세 때 불의의 사고로 팔을 하나 잃고 중도 장애인이 됐다. 그때 서울에서 아내도 만나 결혼하고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러나 신혼생활의 즐거움을 한창 맛보고 있을 무렵 뜻밖에 찾아온 위기 앞에서 김 의장은 속수무책이었다. 

불편한 몸으로 직장생활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왔다. 홍성에서도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여전히 힘들었다. 소를 키워보려고 했지만 지체장애인으로서 힘이 부쳐 포기했고, 한 손으로 막노동도 할 수가 없었다. 

거의 10년간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어렵게 지내다가 나이 43세 때 아내와 함께 홍성전통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시작했다. 아내는 건강했던 총각 시절 교회에서 만난 신앙인으로서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견디며 남편이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도우며 가정을 꾸려나갔다. 

다행히 반찬가게는 장사가 잘 되었다. 김 의장은 신앙으로 슬럼프를 극복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무엇보다도 자신과 같은 지체장애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홍성군지체장애인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그는 동료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앞장섰고, 2005년 9월부터는 탁월한 리더십을 인정받고 지장협 홍성군지회장으로 추대받기에 이르렀다. 

홍성지역 장애인 대표로서 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 한나라당 비례대표 기호 2번을 받고 출마했다. 당시 하나뿐이었던 비례대표 군의원 자리에 2번 후보로서는 전혀 넘볼 수 없었다. 선거를 하나마나 같은 당 비례대표 1번 후보 몫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2007년 7월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한나라랑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군의원이 사망하면서 그 자리를 승계하게 된 것이다. 

홍성상설시장에서 고객감사 세일에 나서 판촉활동을 하는 김헌수 의장. 그는 이 시장의 상인이기도 하다.
홍성전통시장에서 고객감사 대축제 때 주민들을 만나는 김헌수 의장. 

그는 지장협 홍성군지회장을 사임하고 제5대 홍성군의원으로 합류했다. 비례대표로 다른 의원들보다 1년 늦게 의정활동을 시작했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하며 구멍난 행정을 신랄하게 질타했다. 그가 공무원 인사의 공정성과 공직기강 문제, 재무관계의 투명성을 집중적으로 지적하자 집행부가 기피하는 인물 1호로 떠올랐다. 또한 자신이 지체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몸소 겪은 소외와 차별을 타파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들의 대변자로서 적극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홍성읍을 지역구로 선택해서 출마했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근소한 표 차이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다시 4년 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고, 제7대 홍성군의회 전반기에 부의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지난해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3선에 성공한 그는 제8대 홍성군의회 전반기 의장으로 선임됐다. 지금 그가 속한 정당은 자유한국당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의 인생에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어요. 주님의 계획대로 제가 잘 사용되고 있구나, 하며 매일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고를 처음 당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그것은 훈련이었고, 저를 연단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이 와도 저는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입니다. 무슨 일이든 즐겁게 하니까 재미가 있습니다.”
 
김헌수 의장은 주일마다 홍성성결교회에서 장로로 봉사한다. 부인은 여전히 홍성전통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며 남편의 의정활동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서울에서 교회를 다니며 서울 아가씨를 만나 결혼했는데 제가 사고를 당하고 나서 가정이 파탄나지 않을까 일가친척들이 많이 걱정을 했어요. 하지만 아내는 시골에 내려와서 잘 적응했고, 신앙으로 잘 견뎌내며 아이들도 잘 길렀습니다.”

김 의장이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아내 윤미숙 권사에 대해 칭찬하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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