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7)
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7)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7.29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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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간담회에서 그 외에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나?”

서 선배가 물었다. 나는 박 부장의 눈치를 살피다가 푸른용뉴스 몫의 구정홍보 예산을 나눠달라고 요구한 청룡신문을 고자질하고 말았다.

“노진걸 사장과 윤은실 국장,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같은 동업자로서 언론을 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나는 스스로 흥분해서 말했다. 아까 박 부장이 하지 말라고 당부한 사항이었지만 실토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우리한테 배정된 예산을 더 나눠 받을 수도 있으니 자네 귀가 번쩍 뜨였겠네?”

“선배님, 무슨 소릴 그렇게 하십니까? 용머리신문의 박 선배도 찬성하지 않았어요. 우리 두 사람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었죠.”

“홍보실에서는 뭐라고 하던데?”

“자기들 마음대로 나눠줄 수 없다고 말했어요. 행정사무감사 때 구의원들의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구실을 대더군요. 당분간 불용처리 상태로 나뒀다가 나중에 상황을 봐가며 결정한다고 넘어갔습니다.”

나는 그의 편이 되어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지만 청룡신문과 싸움을 붙일 수는 없었다.

“서 선배님, 방금 드린 정보는 참고만 하세요. 혹 회사에 보고하더라도 그 신문사에 시비를 걸지 않으면 좋겠어요. 제가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걱정하지 말게. 고맙네.”

그 다음 주에 푸른용뉴스를 제외한 3개의 청룡구 지역신문에는 일제히 임종팔 구청장 취임 1주년 기념 인터뷰가 나갔다. 모두 구청의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실어 편집했으나, 그 중에서도 ‘개천고 자랑스런 동문상 수상자 선정’이란 제목으로 임종팔 구청장의 동정을 별도로 실은 청룡신문이 유난히 돋보였다. 임 구청장의 지시를 받아 조 실장이 가을에 있을 개천고 총동문회 행사 때까지 비보도 요청을 한 사항이었지만 청룡신문만 어긴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임 구청장의 입지전적인 이야기를 잔뜩 부풀려서 편집한 박스기사를 보고 박 부장과 나는 무척 속이 상했다. 조 실장의 말에 순종한 우리는 바보가 됐고, 바로 보도를 한 청룡신문만 특종을 한 셈이 됐다. 특종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 않지만 다른 신문이 다루지 않은 정보를 실어 차별화한 것만으로도 우리를 주눅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그것은 비보도를 요청할 만한 정보도 아니었다. 3개월 정도 남은 시상식 때까지 보안을 유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청장 자리를 위협 받는 것도 아닐 텐데 굳이 비보도를 부탁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존중했던 결과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회사에서는 똑같이 기자간담회에 참여하고도 그것을 다루지 않은데 대해 기자정신을 의심하며 나한테 매우 야단을 쳤다. 박 부장 역시 그의 사장한테 엄청 깨졌다고 투덜거렸다.

한편, 푸른용뉴스는 갈수록 보기가 힘들어졌다. 취재현장에서 서 선배를 만난 지도 오래 되었다. 그 사이 구청 주변에서는 푸른용뉴스가 부도나서 문을 닫았다느니 서 선배가 그만뒀다는 등의 말이 떠돌았다. 나는 뒤숭숭한 마음을 추스르면서 서 선배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 서 선배는 두어 번 신호가 간 후 바로 전화를 받았다.

“서 선배님, 푸른용뉴스를 요새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인쇄비가 밀려 찍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야. 뭐 다음 주에는 나오겠지…. 나 지금 정원창 의원님과 이야기하는 중이니까 구의회 가까운데 있으면 그 분 방으로 오게.”

서 선배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구청 1층 민원실 신문열람대에 있었으므로 바로 광장 건너편에 있는 구의회 청사로 득달같이 달려갔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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