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희,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게 이끈 여성CEO
정옥희,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게 이끈 여성CEO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8.2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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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치안경 홍성점, 두 아이 키우면서 과감한 도전 고객중심 경영 성공
정옥희 사장이 37년전 홍성읍내에서 아무 기술도 없이 8평 가게로 시작한 불란서안경원이 지금은 100평 규모의 초대형 매장으로 성장했다.
정옥희 사장이 36년전 홍성읍내에서 아무 기술도 없이 8평 가게로 시작한 불란서안경원이 지금은 100평 규모의 초대형 매장에 직원 12명이 일하는 '다비치안경 홍성점'으로 성장했다.

■초창기 기술 없이 창업 소신 운영 어려워

다비치안경홍성점 정옥희 사장은 고객중심의 경영으로 36년 전 8평으로 시작한 가게를 오늘날 100평 규모의 초대형 안경점으로 만든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주목받고 있다. 

정 사장은 두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첫째 아들을 초교에 보내고 막내 딸이 4살이 되었을 때 사업을 하고 싶었다. 남편이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그는 아내로서 가사와 보육만 분담하는 삶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선택한 업종이 안경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평소 눈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 소비자였을 뿐 그 분야에 전혀 문외한이었다. 그 무렵만 해도 홍성군에는 안경점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 업체에서 독점하고 있는 시장에 하나 더 있어도 될 것 같다고 판단한 그는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1983년 10월 제가 아주 젊었을 때 8평 가게를 얻어 직원 한 사람 데리고 시작을 했죠. 그때만 해도 안경점 허가를 받는데 자격증 같은 것을 요구하지 않아 점포 개설하기가 쉬웠어요."

상호는 '불란서안경원'으로 붙였다. 그러나 사업자로서 기술이 전혀 없었던 그는 고용한 안경사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했다. 안경사는 조금만 비위가 상해도 그만두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래서 안경사의 비위를 맞추느라 소신껏 경영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창업한 것을 후회하면서 그만둘까 자주 고민하기도 했다. 한번 벌인 사업을 쉽게 접기도 어려워 억지로 참고 견디면서 어깨 너머로 열심히 배웠다. 특히 태안에서 안경점을 하는 지인이 그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경영에 대한 노하우와 기술을 전수받으면서 그는 차츰 자신감을 얻었다. 

그가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마침 안경사 자격증시험이 국가고시로 생겼다. 이제부터 신규로 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면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몹시 어려워졌다. 다행하게도 기존 안경점 사업자들한테는 일부 과목을 면제해주는 특혜를 줬다. 그는 제2회 안경사 국가고시에 도전해 거뜬히 합격했다. 

“처음 3년 동안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늘 고민했어요. 하지만 아이들도 있어서 끝까지 인내했어요. 문 안닫고 4~5년을 버티면서 기술을 배워 자격증도 따고 제가 직접 운영할 수 있게 되니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오솔길', 정옥희 유화
'오솔길', 정옥희 유화

■4~5년 참고 넘기니 탄탄대로 펼쳐져

부단히 참고 노력하면서 첫 번째 고비를 넘기고 나니 드디어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가게를 15평으로 늘리고 직원도 더 고용했다. 수익금은 광고에 재투자를 했다. 검찰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남편의 월급을 생활비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홍보비를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광고를 하면 그만큼 효과가 나타났다. 손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가게를 다시 30평으로 확장해야만 했다. 

그에게는 손님들을 무조건 친절하게 대하는 것 외에는 달리 경영의 비법으로 내세울 만 한 것이 없었다. 가게에서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아 화를 내고 돌아가는 손님에게는 반드시 저녁에 전화를 해 정중하게 사과하고 다음날 다시 방문할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화가 풀려 재방문하는 고객에게는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했다. 결국 흡족한 표정으로 돌아간 손님은 소문을 내고 자신의 이웃에게 추천하기 십상이었다. 더 많은 손님으로 보답하면서 안경점은 일취월장 성장가도를 힘차게 달려갈 수 있었다. 

지금은 100평으로 확장한 초대형 매장에서 12명의 직원들이 매일 분주하게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가게의 규모나 매출액이 충남지역 다비치 체인점 가운데서 선두그룹에 속한다. 

정 사장은 창업 초기부터 사회공헌 활동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했다. 군청에서 독거노인과 가난한 학생들을 추천받아 매년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5월에 50개의 안경을 기증했다. 이상선 군수 시절이었던 2000년 7월 그의 추천으로 ‘자랑스런충남인상’을 받기도 했다. 2003년에는 대한안경사협회 충남지부에서 솔선수범 봉사정신으로 표창패를 받았다.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는 ‘다비치’

2010년경 다비치 체인점으로 전환한 후에도 본사에서 인류의 행복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은 의무사항이 되었다. 본사의 브랜드인 ‘다비치’는 세상을 맑고 밝게 다 비춘다는 순 우리말로 소외된 어려운 이웃까지 맑고 밝게 다 비춘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다비치안경은 국내 최고의 안경전문기업으로 지금 전국에 250개의 체인점이 있다. 정 사장이 독립적인 사업체로 운영하다가 다비치 가맹점으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일까? 체인점이 되면 장점이 많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전국 250개 가맹점 점포가 전산망으로 다 뜹니다. 우리 가게에서 안경을 맞춘 고객이 다른 지역의 다비치 체인점에 가서도 똑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 곳에서 시력검사를 한 내용이 다른 점포에서도 전산망으로 공유가 되기 때문에 그것을 그대로 이용할 수가 있다고 한다. 다비치 상호가 붙은 가게는 전국 어디를 가도 다 통하고 포인트를 적립하거나 사용하는 것 모두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본사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체인점 직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상품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 서울 명동에 들어오는 최신 상품도 시골 오지의 다비치 체인점까지 동시에 정보가 전달되며 소비자들이 지역 차별없이 유행을 좇는 것도 가능하다. 

정 사장은 차별화된 다비치만의 한국식 검안법과 정찰제로 저렴한 가격도 큰 경쟁력이라고 내세웠다. 전국 250개 점포의 제품을 본사에서 공동으로 구매해주니 가격이 퍽 저렴할 수밖에 없는 유통구조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본사가 재고품까지 다 관리해 주기 때문에 가맹점으로 운영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했다. 

'고향가는 길', 정옥희 유화
'고향가는 길', 정옥희 유화

■학창시절 좋아했던 그림 뒤늦게 이룬 화가의 꿈

정 사장은 학창시절 그림을 잘 그렸다. 미술대회에 나가면 상을 독차지할 정도였으나 결혼하고 사업을 하면서 그림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사업이 안정궤도에 올라설 무렵인 2000년도에 가게를 동생에게 잠깐 맡기고 남편이 발령을 받은 대구로 따라갔다. 거기서 1년 동안 유명한 화가 밑에서 유화를 배웠다. 남편은 골프도 치라고 1년간 회원권을 끊어주기도 했지만 그는 화실에 아침에 나가면 저녁 늦게까지 그림에 몰두했다고 한다. 정작 골프장에는 몇 번 가지도 못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집중해서 그림 공부를 한 결과 그 이듬해 2001년 11월 구상전 공모전에 출품한 그림이 특선으로 뽑혔다. 그 후에도 공모전마다 작품을 보내면 입선은 기본이었다. 군계일학으로 평가받은 상으로는 △2002년 5월 형상미술대전 특선 △2002년 5월 충남도미술대전 특선 △2003년 6월 한국현대미술대전 우수상 △2005년 9월 형상전 미술대전 특선 △2009년 12월 코레아 미술제 국제미술상 등이 있다. 서울 인사동 운보갤러리와 홍성 홍주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홍성미술협회 회원으로서 단체전에도 자주 참여한다. 

'황혼', 정옥희 유화
'황혼', 정옥희 유화

2009년 12월부터는 형상전 초대작가로 위촉받아 활동하는 등 화단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홍성법원 정문 앞 불란서빌딩 2층에 마련한 화실에서 시간만 나면 그림을 그린다. 남편 추태호 씨가 정년은퇴 후 가게 운영을 돕고 있어 정 사장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매년 연말이 되면 정 사장은 자신의 그림으로 탁상용 달력을 제작해 고객들에게 새해선물을 한다. 그의 그림은 거의 사진에 가까울 정도로 사실화가 특징이다. 그러나 유화의 강렬한 색깔이 강조되는 붓의 터치가 사진보다 더 생생한 현실감과 생명력을 보여준다. 

남편이 전국을 순회하며 근무하는 동안 혼자 고향에 남아 사업하면서 혼자 떠맡았던 자녀들도 다 성공적으로 길렀다. 큰아들은 고려대 법학과를 나와 사업을 하고 있으며, 둘째 딸은 고려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된 추지영 교수로 고대안산병원 영상의학과에서 근무한다.  

지난해는 사업자로서 성실납세자로 인정받아 대전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 대한안경사협회 충남도지부 부지부장을 지냈고, 대한안경사협회 회장으로부터 공로패, 홍성군수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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