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특별대담]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9.02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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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족은 솔선수범 국민들 지금도 군주로 모시며 존경심 표해
김상구 교수는 전공인 영문학뿐만 아니라 오페라, 영상, 음악 등 예술관련분야에도 조예가 깊다. 러시아 출신 미국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연구해 많은 논문을 썼다.
김상구 교수는 전공인 영문학뿐만 아니라 오페라, 영상, 음악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 조예가 깊다. 러시아 출신 미국 망명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연구해 많은 논문을 썼다.

8월 마지막 주 목요일이었던 29일 오후 기자는 청운대학교를 방문했다. 오전 내 가을을 재촉하며 바람이 심하게 불더니 정오를 지나면서 비가 오기 시작한다. 캠퍼스의 우거진 숲이 시원하게 샤워를 즐기며 활기를 되찾는 모습을 보면서 학창시절로 되돌아온 듯한 착각에 빠졌다. 굵은 빗줄기를 뚫고 도착한 청운대 신애관에서 영문학자 김상구 교수를 만났다. 그에게서 여름날 빗줄기 같은 청량한 사유의 샘물을 기대하며 잠깐 차 한 잔을 나눴다.

■한일관계, 아일랜드에서 답 찾아야

-문재인 정부가 과거사를 짚고 넘어가는 것은 좋은데 일본이 조상들의 죄에 대해 반성하고 사죄할 줄 모르니까 문제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철저하게 손해배상을 받아내겠다고 하면서 한일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는데 너무 무리수를 쓴 것 아닌가?
”지금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 없이 대충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일본과 등을 돌리고 살 것인가. 그러나 등을 돌리기에는 현실이 너무 각박하다. 나는 이 문제가 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를 잘 살펴보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가 일본보다 잘 살아야 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더 나아지고 문화적으로 더 융성해지면 일본이 무시하는 눈빛을 내려놓지 않을까. 오는 10월 청운대학교에서는 아일랜드에 대해 학술강연회를 할 예정으로, 아일랜드가 4차산업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가 발표된다. 아일랜드도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로 나눠진 분단국가이다. 아일랜드는 1921년 북아일랜드와 분단됐는데 지금 통일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번 여름에 북아일랜드에 가보니 스코틀랜드에서 많이 이주해 와서 살더라. 북아일랜드가 영국령에 속하는 분단국가인데 다른 종족이 많이 와서 살기 때문에 통일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라는 책인데 저자(김정노)를 이번에 초청한다. 아일랜드가 어떻게 하나로 평화통일을 하려고 했는지 거기에 대한 고민을 들어볼 것이다. 우리나라는 독일식 통일이 어렵다. 영국은 아일랜드인들을 '하얀 검둥이'로 부르며 개돼지 취급을 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지금 영국이 무시 못할 정도로 잘 산다. 우리도 일본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 문화와 도덕적으로 일본보다 우리가 우위에 있어야 극일이 가능하다.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극일하는 것은 어렵다. 의병도시 홍성에서 극일은 무엇일까? 독일과 아일랜드를 본받아서 문화와 도덕적으로 극일해야 된다. 우리가 잘 살아야 용서도 가능하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은 나라’로 불리며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었을 때 제3세계에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았다. 제2차세계대전 후 완전히 독립한 나라도 있지만 새롭게 건국한 나라들 중 상당수가 영연방에 속한 채 영국여왕을 군주로 모시고 있다.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독립국가가 된 후에도 영국여왕의 그늘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지금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한다. 영국이 EU(유럽연합)에서 나가게 되면 아일랜드와 담을 쌓는 일이 된다. 보리스 존슨 총리가 스코틀랜드를 방문해 달래 보려고 애쓰고 있다. 영국은 10월말까지 브렉시트 노딜 문제를 협상해야 한다. 
영국 문화권에서는 국민들이 지배계급인 군주에게 존경심을 표현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권력을 가진 자가 솔선수범을 할 때 나타난다, 영국은 전쟁이 일어나면 왕족들이 비행기를 몰고 전쟁터에 나갔다. 그들은 더 어려운 곳에 가서 싸우며 솔선수범하는 문화를 가꿔왔다. 물론 영국 왕들 중에 형편없는 왕도 많았지만 엘리자베스1세, 빅토리아에 이어 현재 엘리자베스2세 여왕은 국민들로부터 매우 존경을 받고 있다. 엘리자베스1세는 영국과 결혼했다고 선언하면서 결혼도 하지 않았다. 국가를 위해 왕족이 몸을 바치니까 국민들은 군주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로 통치형태가 바뀌어도 여왕은 영국의 최고 수장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왕은 전쟁이 나면 도망갔다. 임진왜란 때 성문을 열어준 사람이 우리 백성이라는 말도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있었지만 지배계급은 존경받지 못했다. 차라리 적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백성들이 성문을 열어주면서 멸망을 자초한 것이다. 
지배계급인 왕족들은 어느 시대나 솔선수범해야 된다, 백성에게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지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의 케이스는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촛불로 정권을 잡은 자들이 시대정신에 어긋난 채 자기만을 위한 짓거리를 한다면 국민의 호응을 받지 못한다. 촛불정권 지지자들도 조국이 옳아서가 아니라 진영논리에 빠져 국론을 분열시키며 치유할 수 없는 길로 가고 있다.”

지난여름 영국을 방문한 김상구 교수
지난 여름 영국을 방문한 김상구 교수가 비틀즈를 이끈 존 레넌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진영논리에 빠진 조국 지지 실망스러워

-조국 후보의 딸이 명문대 교수 자녀로서 성적이 좋아 장학금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주더라도 자신보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양보할 수는 없었을까?
“동문회 장학금은 학교가 간여를 안 한다. 개인이 주는 장학금도 학교가 간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중에 일이 터지면 문제가 된다. 조국 딸이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합격은 했지만 다니지도 않았다. 이미 부산대 의전원에 갈려고 결정이 됐는데 환경대학원의 장학금을 받고 떠난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거기에 조국이 개입했는지 안했는지 몰라도 딸이 다니지도 않을 거면서 장학금을 받고 떠난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법무부장관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청운대학교가 홍성군에 있는 4년제 대학으로 지역사회에 학문적으로 많은 기여를 하는 것으로 안다. 홍성군과 함께 인문학도시 사업은 요즘도 계속 하나?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인문도시 사업으로 5년째 계속 선정돼 오는 10월말 학술행사를 한다. 한국:일본, 영국:아일랜드 관계를 조명하기 위해 신청했는데 선정이 됐다. 작년에도 선정돼 프로이드와 라캉에 대해 했다, 또 고택 프로그램도 신청했는데 9월말에 나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지역사회와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대학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일 뿐만 아니라 대학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대학은 지역과 문화를 함께 해야 된다. 홍주문화재단이나 충남문화재단에서도 지역문화를 고유하면서도 보편성있는 문화로 발전시켜야 한다. 축제도 돈벌이 대상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지역민들이 지역문화를 고양시키도록 해야 한다. 연예인들을 초청해 억지로 동원시키는 축제는 하지 말아야 한다. 단편문화제는 실험성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소개하고 발전시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돼야 하지만 작년에는 연예인들이 와서 축제를 했다. 상업영화는 여기서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요즘 심각한 취업난 때문에 대학은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것 같은데.
“사실 취업은 제일 중요한 문제다. 대학을 나와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취업과 연결되지 않는 학문은 공허하다. 이것은 대학의 어젠다만이 아니라 국가의 어젠다로 제1순위다. 아랍의 봄도 젊은이들의 취업난에서 비롯됐다. 출산율 저하와 결혼기피 현상도 먹고 살기 힘들어서 생긴 문제 아닌가. 젊은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이 만들어져야 한다. 요즘 억지로 돈을 줘서 출산율을 높이는 현실이다. 대학은 졸업해도 취업이 안돼 내후년부터는 못 뽑을 학과가 늘어날 것이다. 이 문제는 지방대학 1~2개가 해결할 수 없고 국가의 어젠더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국가에 미래가 있다. 돈 몇 푼 주고 대학이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 영어 공부에 모두 매달리는데.
“외국어를 잘 해야 기회가 많이 주어지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학생들이 대학 1학년 때부터 토익과 토플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호연지기도 길러야 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도서관에서 영어공부만 매달리는 국가는 미래가 없다.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는 과거 타이타닉과 항공모함을 만들었던 도시다. 그러나 지금 가보니까 조선소가 한 달 전에 문을 닫았더라. 타이타닉호를 갖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옛날보다 3분의 1이나 관광객이 줄어들었다. 조선업이 불황을 맞은 군산과 울산도 4차산업혁명으로 빨리 산업구도를 전환해야 한다. 노조도 함께 노력을 해야 하는데 사라져야 할 산업을 붙들고 있으면 망한다. 나는 벨파스트의 황량하고 쓸쓸한 모습을 보고 변화하지 못하면 우리도 미래에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학생들은 영어도 무기로 꼭 필요하지만 세계를 누비기 위해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지방국립대가 서울 명문대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갈수록 지방인재들이 서울로 집중화되면서 지방국립대의 위상 하락과 함께 지방사립대까지 동반추락하고 있다. 지방대학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나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 대학과 병원이 서울에 많고 그쪽에 인재가 몰려 있다. 지역민들도 동네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고 수술이 필요하다면 서울로 간다. 요즘 고속철로 쉽게 서울에 갈 수 있다. 서울의 5대 대형병원은 미어터진다. 대학도 수도권 아이들은 서울서 다니려고 하지 멀리 안 가려고 한다. 지역 아이들도 공부 잘 하면 서울로 간다. 인서울이니, 수도권 대학을 가야 취업도 잘 된다고 한다. 신입생도 서울권이 차야 충청권, 경상권을 채우는 식이다. 정부에서는 지역의 특성을 많이 반영하는 대학에 많이 지원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작기 때문에 지역의 독특한 문화가 없다. 경상권이나 충청권의 어느 중소도시든 큰 차이가 없다. 지역과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대학은 지원 못 해준다고 한다. 서남대학이 문을 닫으면서 그 지역은 피폐화됐다. 홍성도 혜전대와 청운대가 문을 닫으면 슈퍼마켓의 매출이 30~40% 떨어질 것이다. 2개 대학이 없어지면 홍성에는 젊은이가 없어진다. 교육부의 지원 정책은 문제가 있다. 사립대를 공영제로 운영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사학은 재단이 있어 조심스러운 말이다. 지역대학을 보호해줘야 한다. 대학은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고 지역경제도 살린다. 그런데 정부가 학생이 없으면 지원 안 해준다고 하니 무대책이다. 국가가 대학이 지역과 함께 살아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대학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자체도 고민해야 한다. 대학교수들이 지역문화를 풍성하게 하도록 지자체가 이끌어 줘야 한다. 지역의 문화재단에도 지역대학에서 배출한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하게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지역인재는 지역에서 많이 활용해야

셰익스피어 기념 조형물이 매달린 가로등을 배경으로 선 김상구 교수.
셰익스피어 기념 조형물이 매달린 가로등을 배경으로 선 김상구 교수.

-노벨상의 계절이 다가왔다. 우리는 노벨상 얘기만 나오면 유독 일본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낀다. 특히 한국문학이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어보면 대단한 내공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사랑이 무엇인가? 허접한 여자를 놓고 사랑에 몰두하다가 몰락하는 과정을 깊이있게 보여주면서 인간의 사유를 확장시켜 준다. 문학은 사유의 깊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서양 작가들의 작품에서 많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오지 않은 것은 번역의 문제도 있겠지만 사유의 깊이를 인정받을 만한 작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피츠 제럴드는 사랑이 뭔지, 사랑이 파열음을 내면서 정제된 언어로 그만의 독특한 언어로 펼쳐낸 위대한 작가다. 작가에게는 실험성, 독특함, 언어를 다루는 마술사의 기질도 필요하다. 헤밍웨이도 그런 작가다. 그는 ‘노인과 바다’를 80번 이상 고쳐 썼다고 한다. 그것이 문학이다. 올해도 고은은 어려울 것 같고, 한강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나는 많이 안 읽어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이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김상구 교수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지역대학에서 배출한 인재들을 지역에서 요긴하게 써 줄 것을 거듭 강조했다. 아마도 홍성군에서 내년 초에 발족하게 될 가칭 ‘홍주문화관광재단’을 의식한 당부 같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대학과 지역사회의 문제다. 지역사회에 정화작용도 되고 새로운 기운도 불어넣고, 도덕성과 양심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문화단체에 진출해야 한다. 문화단체가 동네 형님동생들의 사랑방이 아니라 지역대학에서 실력을 쌓은 인재들로 진정성을 갖게 될 때에 지역문화도 발전하게 될 것이다. 청운대학교 이공계와 사회인문과학이 지역의 공무원들과 함께 손을 잡고 발전해야 한다.”

김상구 교수는 충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청운대 인문사회과학대학 영어과에 재직하며 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신 없는 세계의 글쓰기’(동인)는 문화관광부 추천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으며, 칼럼집으로 ‘환상과 유토피아’(동인)가 있다. 홍주신문과 기호일보에 꾸준히 기고하는 칼럼은 촌철살인의 시대 비평과 깊은 사유로 호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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