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운, ‘예산학’ 정립 전파하며 향토문화 발전 힘써
김시운, ‘예산학’ 정립 전파하며 향토문화 발전 힘써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10.1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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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문화원 주관 ‘예산장터 삼국축제’ 열어 지역경제 활성화
김시운 예산문화원장은 젊었을 때 한국농어촌공사에서 평생 근무했다. 학구파이기도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던 그는 그 열정을 지난 11년 동안 향토문화에 쏟아부어 예산학을 정립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언제나 단정한 정장차림의 노신사, 예산 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인 김시운 예산문화원장의 모습이다. 학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안 그래도 그가 건네는 예산문화원장 명함에는 공학박사와 함께 토목기술사라고 특별한 이력을 덧붙여 놨다. 기자의 고정관념으로 문화원장에게 어울릴 만한 학위는 문학박사가 아닐까 싶은데 공학박사가 왠지 어색해 보였다. 

사실 문화가 문학·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화는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수식어가 되었다. 김시운 원장은 평생 토목분야에서 활동했지만 기술인으로서의 열정을 지역문화를 위해 쏟아 부으니 예산의 품격이 달라졌다. 예산문화원장을 맡아왔던 지난 11년간 향토문화를 크게 업그레이드시킨 인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16일 오후 예산문화원에서 김시운 원장을 만나보았다.

■추사와 매헌 등 예산6현 롤 모델 삼아

-최근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주관하는 `제34회 전국향토문화공모전'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인 최우수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은.
“예산문화원은 1955년도에 창설했기 때문에 내년에 65주년이 된다. 그 동안 지역사회를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엊그제 신문에 났듯이 예산문화원은 2010년도부터 전국최우수문화원상을 두 번이나 탔다. 2017년도에 종합경영평가에서는 국무총리 대상을 받았다. 전국에서 우리만큼 많은 회원이 있는 곳도 없다. 예산문화원은 회원 1700명, 임원 50여명, 30개 문화학교에 450명의 주민이 등록했다. 게다가 예산시네마도 직영한다. 전국에서 지자체가 운영하는 35개 시네마 중 유일하게 우리 예산시네마가 상당한 실적을 내며 흑자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매진될 정도로 호황이다. 지역에 영화문화 저변 확대를 위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충남학을 6년째 하면서 예산학도 3년째 하고 있다. 지역의 정신문화를 활성화해야 된다. 지역의 역사를 알아야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지역민들이 인문학 강의를 들음으로써 지식 수준도 높아진다. 예산의 역사인물로 추사 김정희는 중국에도 잘 알려진 서예의 대가다. 우리 문화원에서는 추사를 본받아 마음의 수양에도 좋은 서예를 적극 보급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 추모 전국휘호대회’를 매년 하고 있는데 추사의 기를 받아서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기회다.”

-예산은 훌륭한 역사인물을 많이 배출한 고을로서 예산문화원의 할 일이 많은 것 같다. 추사 김정희 다음으로 비중을 두고 기념하는 인물은?
“매헌 윤봉길이다. 장개석 총통은 윤봉길이 거사를 일으킨데 대해 ‘중국에서 백만 군대가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이 해냈다’고 칭송했다. 그만큼 훌륭한 분이다. 그게 바로 예산정신이다. 추사와 매헌을 포함해서 예산을 빛낸 역사인물로 예산6현(秋史 김정희, 勉菴 최익현, 修堂 이남규, 一宇 김한종, 梅軒 윤봉길, 一鳶 신현상)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롤모델로 삼고 있다.”

-요즘 예산문화원이 ‘예상장터 삼국축제’를 앞두고 몹시 분주한 분위기인데 외지 사람이 얼른 들으면 삼국시대와 관련된 행사처럼 오해할 수도 있겠다. 왜 삼국축제인가?
“예산장터 삼국축제는 올해 3회째로 이달 18일부터 24일까지 예산전통시장 내 백종원국밥거리에서 열린다. 올해는 예산 지명이 탄생한지 1100년이 되는 해로 그것을 기념하면서 얼큰한 국밥, 맛있는 국수, 향긋한 국화도 즐기도록 3국축제를 마련하게 됐다. 옛날 어려웠을 때 많이 먹었던 재래음식으로 국수 한 그릇을 5천원에 판매하는데 상당히 맛있다. 국밥도 어려웠던 어린 시절 장터에서 많이 먹었던 추억을 생각하며 먹을 수 있다. 국화는 농업기술센터가 전담해서 3국축제를 같이 하게 된다. 축제가 열리는 일주일 동안 예산의 음식과 국화를 많이 알려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한다. 올해 4월 6일 전국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를 개통했다. 삼국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예당호 출렁다리도 건너보고 수덕사, 예산육현 유적지를 방문하면서, 예당 사과도 맛보고 붕어찜, 어죽, 삽다리곱창, 소갈비, 수덕사 산채정식 등 5미를 맛볼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물 부족국가에서 공주보 해체하면 안돼 

-원장으로 3선을 하게 된 비결은.
“나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37년간 근무하고 본사 농업용수처장을 마지막으로 정년은퇴했다. 그 후 지역사회의 권유를 받고 2008년 예산문화원장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두 번째부터는 추대를 받았고, 세 번째도 추대를 받아 현재 11년째 재임하고 있다. 문화도 지역사회를 위한 복지라고 생각하면서 비록 무보수지만 열심히 하니 일을 계속 맡기더라. 지금 충남문화원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다.”
 
-농어촌공사에서 농업용수와 관련한 일을 했으니 공주보를 해체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가급적이면 정치적인 이이기는 피하고 싶은데, 그래도 입장을 밝힌다면 반대한다. 농업은 농업용수 체제를 제대로 갖춰야 경쟁력이 있다. 우리나라는 물 부족국가로서 물을 바다에 그냥 흘려보낸다는 것은 잘못 됐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양승조 도지사도 국정감사에서 공주보를 해체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박수를 쳤다. 녹조는 관리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발생 여부가 달려 있는 것이지 보가 주범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공주보 물이 예당저수지까지 온다. 어느 날 그것을 해체해서 바다에 내려 보낸다면 예당저수지가 물이 부족할 때 어떻게 하나. 물이 얼마나 큰 자원인가. 환경을 살린다는 이유로 물을 바다로 보내겠다는 것은 잘못 된 생각이다. 농어촌공사에서 일을 했던 사람으로서 양 지사가 공주보를 유지하기로 밝힌데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만일 3선으로 내년에 마지막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게 되면 그 후 계획은.
“내년에 ‘예산문화원 65년사’를 발간하면서 마무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내가 본래 설계와 시공, 감독, 그런 계통의 일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기술지도를 가끔 나간다. 본래의 직업을 통해 쌓은 노하우로 농촌에 머물면서 조상이 물려준 땅을 관리하면서 건강이 허락되는 한 농촌 부흥운동을 할 계획이다. 농어촌공사 시절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토목기술사 자격증까지 땄다. 지금도 농어촌공사에 기술 자문을 하고 있으며. 지역에서도 기술 자문을 한다. 문화적으로 시설명칭위원회에서도 위촉을 받아 활동하며, 충남학 강사로 도내 대학과 평생교육원에 다니면서 강의도 하고 있다.”

-학문으로서 ‘예산학’을 시작한지 3년 됐으면 지금 어느 정도 정립됐나? 
“2012년도에 충남도청이 내포에 오면서 2013년부터 충남학 강사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욕심이 생겨 예산학도 하게 됐다. 충남지역 인문학 강사와 교수 16명을 섭외하여 ‘예산학’ 교재를 만들었다. 충남학은 충남의 역사문화, 충남다움, 정체성을 정립해 충남의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예산학도 예산이 잘 살기 위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초교부터 예산학을 가르쳐야 한다. 수강자 중에는 교장, 교감, 교육장, 교사 출신과 기획실장, 과장 등 공무원 출신이 많아 취미생활을 하면서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그분들을 가르쳐 강사로 파견하기 위해 작년에 예산학연구소를 설치하려고 했다. 덕잠서원도 복원하려고 엊그제 세미나를 했다. 그런 것을 지역민들에게 가르치고 널리 알리려고 한다.”

예산문화원 본관 앞 주차장에서 김시운 원장. 그는 굳이 사양하는 기자를 따라 나와 마당에서 전송을 했다.
예산문화원 본관 앞 주차장에서 김시운 원장. 그는 굳이 노구를 이끌고 기자를 따라 밖으로 나와 마당에서 전송을 했다.

김시운 원장은 워낙 지식가 경험이 풍부해 기자가 던지는 질문에 거침없이 풍성하게 답변을 쏟아냈다. 게다가 자상하기까지 했다. 기자가 떠날 때는 노구를 이끌고 승강기도 없는 건물 2층에서 계단을 걸어 내려와 문화원 마당에서 전송을 했다. 진정 그는 예산(禮山)의 지명에 어울리는 예의 사표로서 이 시대의 대표적인 예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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