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능, 금당초교 교장시절 폐교 위기 막은 구원투수 
심재능, 금당초교 교장시절 폐교 위기 막은 구원투수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10.25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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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임업후계자협회 홍성군지회장, 고향에서 산 가꾸며 노후생활
홍성군임업후계자협회 심재능 회장은 교장 시절만큼 지금은 흙속에 살면서 임업인으로 충실한 노후생활을 하고 있다.
홍성군임업후계자협회 심재능 회장은 교장 시절만큼 지금은 흙속에 살면서 노동으로 충실한 노후생활을 하고 있다.

(사)한국임업후계자협회 심재능 홍성군지회장은 교직에서 정년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와 산을 가꾸고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홍성읍에서 광천읍으로 향해 나란히 달리는 왕복 4차선 국도와 장항선 철길 중간에 있는 구항면 청광리 소반마을이다. 우선 국도를 벗어나 간수가 없는 단선 철길의 건널목을 가로질러 계속 좁은 포장도로를 따라 작은 고개를 넘으면 길 왼편의 첫 번째가 그의 집이다.

가을날 따사로운 햇빛이 온 산과 그의 집 뜰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기자를 맞이하는 그의 표정도 어린이처럼 해맑았다. 다소 낡아 보이는 양옥집이 황량하고 쓸쓸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4년 전 은퇴 후 아내와 함께 들어와 살다가 2년 만에 홍성읍내의 아파트로 이사를 나가고 지금은 혼자서 출퇴근하며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가 태어나 자랐던 집이기도 하고 그 주변 부모님이 물려준 산과 토지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그의 노후 일거리가 되었다. 직접 소유한 임야가 1만6천평, 그 중 8천평은 유실수, 나머지 8천평은 조경수 등을 심거나 묘목을 가꾼다. 그 중 밤나무에서 얻는 소득은 1천만원 되며, 임업을 통한 전체 소득은 연 사오천만원 정도다.

4년 전 그의 전직은 예산 응봉초등학교 교장이었다. 앞서 홍성 금당초등학교에서 교장으로 근무할 때는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려내 크게 화제가 됐다. 당시 금당초교는 전교생 36명, 그 후에도 점점 더 줄어들 것으로 보여 계속 유지해 나가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지역사회와 동문회에서는 반대했지만 입학할 학생이 없는 한 교육 당국의 구조조정 정책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그는 일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데다 자신이 더욱 넓혀놓은 산에 유실수와 조경수를 반반씩 심어 가꾸는 일로 늘 바쁜 일상이다.
그는 일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데다 자신이 더욱 넓혀놓은 산에 밤나무 등의 유실수와 조경수를 반반씩 심어 가꾸는 일로 늘 바쁜 일상이다.

심 교장도 주민들과 같은 생각이었다. 가능하면 학교를 살리고 싶었다. 사실 폐교가 되어도 교사들이 책임질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교육청에서는 기십 명의 학생들로 학교를 억지로 유지하는 것보다 폐교하고 인근 학교와 통폐합하는 것이 예산을 크게 절감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는 시각이었다. 교사들은 도시에 신설된 학교로 전근을 갈 수 있어 일자리를 잃을 염려도 없다. 

경제적인 논리로 보면 폐교가 바람직하지만 학교 주변 주민들과 동문에게 미치는 상실감은 가히 메가톤 급이라고 할 수 있다. 심 교장은 이런 분위기를 모른 체 할 수 없어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강화하고 체험학습을 늘렸다. 뿐만 아니라 토요일과 일요일까지도 학교가 학생들을 돌보며 지도를 했다. 그러자 동문회에서도 적극 지원하고 나섰다. 인근 읍·면 지역에서도 학생들이 전학 오거나 입학하게 되자 교통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동문회의 지원기금이 고갈돼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그래서 심 교장은 학부모들을 모아 이 같은 고충을 털어놓았다.

”동문회 지원기금 2400만원을 장거리 통학하는 아이들 교통비로 매달 10만원씩 주고 나면 1년이 못가 금방 다 소진돼 버려요. 그래서 악속을 지키기 힘든 상황을 얘기했더니 학부모들이 ‘그것 안 받아도 좋다. 학교가 이렇게 아이들 위해 잘 해주는데 우리는 그냥 학교 보내겠다’고 하는 거예요.“

심지어 멀리 대도시에서도 소문을 듣고 아이들을 금당초교로 유학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래서 부임 초 36명이었던 학생은 2년만에 120여명으로 늘어났다. 처음에 심 교장은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게서 항의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추진해 나가는 동안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활기찬 학교로 바뀌니 교사들의 볼멘소리는 저절로 사라졌다. 이 같은 성과를 토대로 농촌학교 공모제 교장에 지원한 그는 예산 응봉초교에 발탁이 돼 마지막 4년을 근무했다.

“그 교사들 중에서 저한테 배워 지금 다른 학교에 공모교장으로 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 제가 살렸던 금당초교가 지금까지 문 안 닫고 잘 운영되고 있잖아요.”

심재능 회장이 조경수로 가꾸고 있는 사철나무 묘목을 보여주고 있다.
심재능 회장이 조경수로 가꾸고 있는 사철나무 묘목을 보여주고 있다. 나무가 그냥 자라는 것 같지만 기술과 애정이 필요하다. 그는 교직에 있을 때부터 늘 배우며 은퇴 후를 준비해왔다.

심 회장은 당시 폐교 위기를 겪고 있던 홍성군 어느 초등학교 교장한테서 원망과 불평을 들은 적이 있다고 회고한다. 폐교를 반대하는 그 지역 주민들이 학교 살리는데 아무 관심이 없었던 그 교장에게 금당초교 심 교장과 비교를 하며 사퇴하라고 압력을 넣어 힘들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 학교는 문을 닫았고 남은 재학생과 신입생들은 해당 면내 다른 초교나 가까운 인근 면소재지 초등학교로 가고 말았다.

심 회장은 모교가 이웃 동네에 있는 대정초교다. 전형적인 시골학교로 전직 교장으로서, 동문으로서 약 50명의 학생들로 가까스로 유지해 나가고 있는 모교를 살리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소반마을에서는 노인회장도 맡았다. 아직 68세밖에 안됐는데 처음에는 총무를 2년간 하다가 벌써 노인회장이 됐다며 그가 쑥스럽게 웃었다. 참으로 미소가 해맑고 건강과 활력이 넘치는 젊은 노인이었다.  

”정년은퇴 후 연금으로 걱정 없이 살아가는 분들도 이렇게 노동을 하면서 노후를 보내면 좋겠어요. 늘 몰려다니면서 등산이나 하고 해외여행 다니는 것 자랑이나 하는 것은 피땀 흘리며 일하는 농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는 일이어서 삼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니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조용히 다녔으면 합니다.”

그가 고향 마을 이웃들과 늘 함께 하며 느끼는 바라 조심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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