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명초, 백년역사 자랑하다가 주도권 빼앗기며 자멸
덕명초, 백년역사 자랑하다가 주도권 빼앗기며 자멸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11.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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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통합 개교한 ‘광천초’ 상승, 전통명문은 내리막길 양극화 심화   
지난 3월 폐교가 확정된 직후 덕명초등학교에 폐기물 용역사가 들어와 교실 안에 있던 각종 교구재들을 운동장 밖으로 꺼내는 작업을 했다. 그 후 지금까지 학교 시설을 상상이룸공작소, 안전체험관으로 용도를 바꾸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광천읍은 원래 덕명초교를 비롯해 광동초, 광신초교, 광남초교, 대평초교 등 모두 5개의 초등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학령인구 감소로 2013년 광신초교가 광동초교에 통폐합된데 이어 2014년에는 광남초교와 대평초교가 광동초교로 흡수되면서 문을 닫았다. 2014년 3월 1일 통합된 4개 학교들은 각기 갖고 있던 고유명사를 버리고 광천읍의 행정지명을 따서 ‘광천초등학교’로 새출발을 했다. 광천읍은 이제 덕명초교와 광천초교, 2개 초교로 재편됐다.

그러나, 바로 이때부터 100년 전통을 자랑하던 덕명초교에게는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반대로 신설학교인 광천초교는 한없이 날아올랐다. 광천초교는 통폐합을 통해 교육부와 도교육지원청으로부터 각종 인센티브를 받아 교사를 새로 신축 이전함으로써 쾌적한 교육환경과 시설을 갖추게 됐고, 학생들이 누리는 혜택도 많아졌다. 덕명초교생들은 이웃 광천초교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위화감을 느껴야 할 정도였다. 덕명초교도 결코 교육환경이 나쁘지 않았지만 학교를 4개나 합치면서 풍족하게 받은 인센티브로 호사를 누리는 광천초교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덕명초교가 오로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100년 역사와 전통뿐이었다. 2015년 그런 위기가 시작되고 있는 와중에서도 개교 100주년을 맞아 전국에서 모인 동문들은 성대하게 기념잔치를 했다. 그때 동문회에서는 교정에 100주년 기념탑을 세우기도 했다. 이 탑에 ‘번영의 기둥’이라고 제목을 붙여 덕명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잔치가 끝난 후 양극화는 더욱 심해져 덕명이 영원히 명맥을 이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덕명초교생들은 날로 격차가 벌어지는 교육환경과 자신들은 상상도 못할 다양한 체험학습 등에 대한 이야기를 광천초교생들에게 들으면서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불평을 날마다 들어야 하는 학부모들은 학생수마저 현저하게 줄어드는 현실도 감안해 광천초교와의 통폐합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2018년 7월 학부모 투표를 통해 73%의 찬성률로 통폐합이 결정됐고, 그 후 도교육청이 통폐합안을 받아들인 후 올해 1월 도의회가 이를 의결함으로써 덕명초교는 지난 3월 1일 영원히 문을 닫고 말았다. 100여년 전통의 명문 초교가 개교한지 5년밖에 안된 광천초교로 흡수 통합되는 굴욕을 당한 것이다.

2015년 덕명초교 100주년 기념행사 때 세운 100주년 기념탑 '번영의 기둥'.
2015년 ‘덕명초등학교 개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웅장하게 세운 3m 높이의 기념탑 ‘번영의 기둥’은 그 후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이름값도 하지 못한 채 쓸쓸한 교정을 지키고 있다.

덕명초교는 1908년 덕명의숙(학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사립학교가 효시다. 당시 광천지역의 선각자 서승태 선생이 주도해서 근대교육 수용과 민족의식 자각을 위해 설립했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 1911년 일제는 조선교육령을 제정하고, 사립학교를 폐교시키거나 인수해 공립보통학교로 초등교육체제를 개편한다.

덕명학교도 이에 따라 사립학교 체제를 마감하고 1915년 11월 3일 광천공립보통학교(4년제)로 인가를 받아 새 출발했다. 광천공립보통학교는 1938년 4월 1일 광천 신진공립심상소학교, 해방 후 1946년 9월 1일 광천제1공립학교가 되었다가 1949년 덕명국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서승태 선생이 최초로 설립했던 사립학교의 이름을 되찾아 온 것이다. 그러다가 1996년 3월부터 덕명초등학교가 되었다.

광천읍에서 덕명초교 다음으로 설립된 학교가 1944년 광동초교, 1946년 대평초교, 1966년 광남초교, 1967년 광신초교 순이었으나 2013~2014년 통폐합된 광천초교로 새출발하면서 이들 4개교의 역사도 뒤안길로 묻히고 말았다.

19일 광천읍에서 열린 ‘통합학교 교명변경 연구용역 주민설명회’에 참여한 광동초교 출신의 한 주민은 “우리도 5년전 4개교가 통폐합할 때 우리가 가진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고 지역명을 따 ‘광천초교’라는 교명으로 하나가 됐는데 또 교명을 바꿔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학생들에게 혼란을 주라는 말이냐”며 ‘덕명’으로 교명을 변경하는데 대해 강하게 반대를 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지만 지역주민들은 대부분 덕명초교 동문들이 역사 자랑만 할 게 아니라 학령인구 감소에 대해 미리 대처하지 못했다며 광천지역 초등학교 통폐합론이 처음 제기됐을 무렵 그때 덕명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통합을 주도했어야 한다고 뼈아픈 지적을 했다. 그랬다면 오랜 역사를 가진 ‘덕명’이라는 이름의 학교를 유지하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덕명초교는 지난 100여 년 동안 1만5000여 명의 동문들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충남도지사를 지낸 이완구 전 국무총리, 최건환 경주월드리조트 사장, 지난해 별세한 장석환 전 국회의원을 꼽을 수 있다. 그밖에도 중앙과 지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동문들이 많다.

학교 본관 앞에 있는 교목 소나무.
덕명초등학교 본관 앞에 있는 교목 소나무.

올봄에 문을 닫은 덕명초교는 지금 공사가 진행 중인데 홍성교육지원청에서는 학교 교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일부 시설을 상상이룸공작소와 안전체험관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덕명초교는 상상이룸공작소로 만들어 발명교실로 운영하게 됩니다. 또 안전체험관은 홍성군뿐만 아니라 이웃한 서산시, 태안군 등 도내 학생들을 유치해 견학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천안에도 안전체험관이 있지만 도내 학생들을 수용하기에 역부족입니다. 일부 여유 공간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회의실로도 쓰게 할 것입니다.”

홍성교육지원청 김대명 행정팀장의 말이다. 폐교된 교정이지만 지역학생들을 위해 다른 용도로 사용되면서 존속하게 될 것으로 보여 동문들에게는 다소나마 위안이 될 것 같다. 이미 교패가 떨어진 정문에는 없지만 그들이 교정 한 구석에 세운 ‘100주년 기념탑’에서 ‘덕명’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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