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꿈꾸는 작업실 짚과 헝겊’ 카페지기
박효신 ‘꿈꾸는 작업실 짚과 헝겊’ 카페지기
  • 허성수 기자
  • 승인 2020.02.04 16: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헌옷가지로 만든 소품들 보며 차 한 잔 하면 저절로 힐링
박효신 카페지기는 젊었을 때 서울에서 기자생활을 한 언론인 출신으로 2003년 귀촌한 후에는 농사를 지으며 책을 여러 권 내기도 했다. 대흥면은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다.
박효신 카페지기는 젊었을 때 서울에서 기자생활을 한 언론인 출신으로 2003년 귀촌한 후에는 농사를 지으며 책을 여러 권 내기도 했다. 대흥면은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다.

예산군 대흥면 소재지 의좋은형제공원 입구에 자그마한 카페가 하나 있다. ‘꿈꾸는 작업실 짚과 헝겊’이라는 상호를 갖고 있는데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소품들이 많다. 처음 방문하는 길손이라면 벌어지는 입을 다물기 힘들 정도로 마치 소인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카페 안은 낡은 옷을 재활용해 만든 인형과 각종 장신구, 가방, 모자 등이 진열대를 가득 채우며 손님을 반겨준다. 뿐만 아니라 짚으로 짠 공예품도 눈길을 끈다. 옛날 공산품이 나오기 전 우리 조상들이 짚을 이용해서 곡식을 비롯해 뭐든지 담을 수 있는 용도로 온갖 도구를 만들었다. 산업화가 된 후에는 이제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토속적인 것들이 이 카페에서 아름다운 작품으로 부활해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카페 안에 들어서면 말 없이 반겨주는 인형들. 주민들이 헌옷가지를 뜯어 각종 소품을 만들어 판매도 한다.
카페 안에 들어서면 말 없이 반겨주는 인형들. 주민들이 헌옷가지를 뜯어 각종 소품을 만들어 판매도 한다.

도시에서 번잡한 삶에 지친 나그네라면 이 카페에 잠시만 들러도 치유가 될 것 같다.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없더라도 차 한 잔을 마시며 주변을 점령하고 있는 인형과 각종 소품을 바라보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진다. 우울한 마음조차도 미소가 번지며 밝아진다. 그저 꿈인 듯 동화 속인 듯 착각에 빠져 마시는 차 한 잔의 맛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비록 혼자라고 해도 카페지기 박효신 대표는 이야기를 나눌 훌륭한 친구가 될 수 있다. 그의 마음도 따뜻하다. 젊었을 때 서울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2003년 귀촌 후 농사를 지으면서 책도 여러 권 쓴 작가이기도 하다.

2011년 대흥면이 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그는 사무국장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대흥면은 평범한 시골에서 전국이 주목하는 명소가 되었다.

‘슬로시티’는 1999년 10월 이탈리아 그레베 인 키안티(Greve in Chianti)의 파올로 사투르니니(Paolo Saturnini) 전 시장을 비롯한 몇몇 시장들이 모여 위협받는 달콤한 인생(la dolce vita)의 미래를 염려하여 만든 ‘치따슬로(cittaslow)'가 효시다. 영어로는 슬로시티(slow city)인데 이 운동은 슬로푸드 먹기와 느리게 살기(slow movement)로부터 시작됐다.

그저 찬 한 잔 마시며 바라만 봐도 분주한 마음이 고요해지며 안정을 되찾게 된다.
그저 찬 한 잔 마시며 바라만 봐도 분주한 마음이 고요해지며 안정을 되찾게 된다.

요즘 속도를 중요시하는 첨단기술 문명시대에 빼앗긴 느림의 즐거움과 행복을 되찾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된 슬로시티의 철학은 성장에서 성숙, 삶의 양에서 삶의 질로, 속도에서 깊이와 품위를 존중한다. 느림의 기술(slowware)은 느림(slow), 작음(small), 지속성(sustainable)에 둔다.

1999년 국제슬로시티운동이 출범된 이래 2019년 5월 현재 30개국 252개 도시로 확대되었으며 한국에도 15개의 슬로시티가 가입돼 있다. 예산군 대흥면은 국내에서 여섯 번째로 슬로시티에 가입했다고 한다.

“슬로시티는 농촌의 환경을 보호하고, 역사·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는 것,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해 행복지수를 올리는 것, 이 세 가지를 목적으로 하는 운동입니다.”

카페 앞은 예당저수지가 있고, 주변은 대흥면소재지로 의좋은형제공원과 슬로시티마을로 지정돼 산책로가 잘 종성돼 있다.
카페 앞은 예당저수지가 있고, 주변은 대흥면소재지로 의좋은형제공원과 슬로시티마을로 지정돼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박효신 카페지기의 말이다. 그는 작년까지 사무국장을 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지금은 카페 운영에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카페 주변은 의좋은형제공원과 함께 천천히 걸어선 산책할 수 있는 길이 잘 조성돼 있다. 3개의 코스가 있는데, 5.1km의 옛이야기길은 90분, 4.6km의 느림길은 60분, 3.3km의 사랑길은 50분이 걸린다.

“이것은 수익사업이 아닙니다. 대신 슬로시티로 바뀐 후 살고 싶은 동네가 됐어요. 2010년 이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주민들이 살기 싫어 떠나려고 했지요. 지금은 돌아오는 동네가 됐어요. 관이 아니라 주민 주도의 마을 가꾸기 성공 사례로 꼽혀 다른 지자체에서 선진지 견학 코스로 꼽혀 많이 찾아옵니다.”

땅값도 올라 매물도 없을 정도라고 했다. 카페 짚과헝겊은 2018년 3월 30일 문을 열었다. 박효신 대표의 개인 사업장이지만 동네 사랑방을 겸해 주민들이 슬로시티를 시작하면서 익힌 바느질로 작업도 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월 대보름을 겨냥해 복조리도 많이 만들아놨다.
짚으로 짠 각종 소품들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보게 한다.

“2011년부터 주민들이 선생님을 모셔서 2년 정도 배웠어요. 헌옷을 해체해서 재활용해 가방이나 여러 가지 소품을 만듭니다. 지구를 생각하는 바느질을 하는데, 가능하면 환경에 해가 되지 않도록 안 쓰는 천 쪼가리로 만듭니다. 버려도 썩는 것들을 사용하고 화학적인 것은 쓰지도 않아요.”

마을 주민들은 아예 협동조합까지 만들었다. 이 카페의 단골은 가까운 광시면과 이웃 청양, 홍성, 내포신도시 등 멀리서도 많이 방문한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각박한 삶 속에서 오아시스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