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시인, 서울지하철역 안전문에 시 게시
이복현 시인, 서울지하철역 안전문에 시 게시
  • 허성수 기자
  • 승인 2020.03.20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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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에서 이복현법무사사무소 운영하며 창작활동 활발
이복현 시인은 행정학을 전공하고 평생 법과 행정에 관련된 일을 해왔다. 내포신도시에 있는 이복현법무사사무소에서 시인. 

누구 한 사람을 가슴에 품는 일은
그의 아픈 무게를 나눠 갖는 일이다.

다가가
등 받쳐주고
무릎을 내어주는.

내포신도시에서 법무사로 활동하는 이복현 시인의 시 ‘의자’다. 전체 2연5행에 불과한 매우 짧은 시편인데도 불구하고 강한 울림을 준다. 이 시가 서울 지하철 역 8군데에 게시됐다고 한다. 

△1호선 청량리역 인천 방향 2-3 △2호선 선릉역 내선 방향 5-3 △2호선 홍대입구 내선 방향 7-2 △3호선 불광역 오금 방향 7-2 △3호선 양재역 오금 방향 7-2 △6호선 봉화산역 응암 방면 3-1 △6호선 상수역 봉화산 방향 4-2 △7호선 사가정역 온수 방향 2-3, 이 주소대로 정확한 위치를 찾아가면 이복현 시인의 시 ‘의자’를 만날 수 있다.

코로나의 공포 속에 바쁜 걸음으로 쫓아다니는 서울시민들이 열차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한눈에 들어오는 짧은 시를 통해 마음에 안정을 되찾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초교시절 타고르 시 읽고 감동받아

지난 19일 예산군 삽교읍 청사로 217 엔젤스타워 3층에 있는 이복현법무사사무소에서 이복현 시인을 만났다. 2018년 11월 이 건물에서 개업했지만 법무사로 활동한 경력은 24년째라고 한다. 1995년 서울고등법원 행정직 공무원을 마지막으로 일찍 퇴직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간판을 내걸고 자영업을 시작했다. 

시와는 거리가 먼 법과 행정과 관련된 일을 평생 하며 살아가는 시인은 초교생 시절부터 문학소년이었다고 회고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그때 타고르의 번역시집 ‘기탄잘리’를 읽고 많은 감동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시를 좋아하게 됐어요.”

전남 순천에서 태어난 그는 초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갔다. 고향에서 중학교에 수석합격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 우등생이었지만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돈을 벌어야 했다. 

“중학교 입학금은 면제되었지만 순천시내에 있는 학교까지 열차 통학비가 없어 아버지가 진학을 시켜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서울에 혼자 올라가 돈을 벌며 독학을 했지요.”

시인은 열심히 주경야독을 해 학부와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행정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공직에 진출해 안정을 되찾게 되자 비로소 문학에 대한 열정도 되살아났다. 

그의 나이 40대가 된 1994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장원, 1995년 시조시학 신인상을 차례로 수상하면서 등단했다. 1999년 대산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았으며, 2012년 시조시학상(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는 ‘따뜻한 사랑 한 그릇’, 시조집 ‘슬픔도 꽃이 되어 저 환한 햇빛 속에’ 등을 펴냈다. 
 
“지금 한국나이로 69살인데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시를 단 한 편이라도 쓰고 싶습니다.”

최고 권위의 매체를 통해 등단한 시인으로서 지금도 발표하는 시마다 호평을 받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전 국민이 애송하는 시를 쓰는 것이 숙제다. 그러나 서울지하철 8개 역에 안전을 위해 설치된 스크린 도어 도배용으로 이 시인의 시가 채택된 것만으로 그의 소원은 이미 이뤄진 셈이다. ‘의자’는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수도를 방문하는 전 국민이 읽고 마음속에 각인되어 오래 애송되는 시로 남으리라.

전국시니어노조 충남지역본부 총회에서 발언하는 이복현 시인.
전국시니어노조 충남지역본부 총회에서 발언하는 이복현 시인.

돈 욕심 없이 좋은 시 쓰고 싶어 

사업장에서 주로 하는 업무는 사건법률 상담, 부동산 전세권 설정, 부동산 매매이전 등기, 그 밖에 소송신청 사건 서류작성 법원제출 등의 일이다. 법원서기 20년 하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법무사 자격증을 비롯해 행정사,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따 공직에서 조기은퇴 후 든든한 밥줄이 되고 있다. 

“생계수단이 법무사지만 힘들 때는 2~3년 쉬기도 해요. 돈이 없으면 다시 일하고….”

그의 얼굴은 시인으로서 여유와 평안으로 충만하게 빛났다.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한 그는 가난하고 청렴하게 세상 욕심 없이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건강한 몸으로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과 친인척에게 근심거리가 안 되게 자기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내포신도시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사실을 의식하면서 이 시인이 말했다. 

이 시인은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이사, 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작가회의 및 충남작가회의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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