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 선 39년 8개월…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교단에 선 39년 8개월…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0.05.15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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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인터뷰] ‘하모니카 부는’ 이홍재 선생님
1979년 광천 오서초교서 교직 입문
2018년 서부초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사랑 담긴 음악으로 아이들 가르쳐
제자들 편지·사진… “소중한 추억”

“감사함. 정말 그 말밖에 생각이 나지 않네요.”

서른아홉 번째 맞는 스승의 날, 이 말은 옛 은사(恩師)를 떠올리는 한 제자가 아닌 39년 하고도 8개월을 교단에 섰던 한 스승의 말이다. 주인공은 2018년 8월 31일 홍성군에 있는 서부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이홍재 선생님(64)이다.

2년 전 정년퇴임한 이홍재 선생님이 제자들과의 추억을 꺼내놓으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2년 전 정년퇴임한 이홍재 선생님이 제자들과의 추억을 꺼내놓으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이홍재 선생님은 1979년 4월 19일 광천 오서초등학교에서 교직에 입문해 광천에서만 평교사로 30여 년간 교단에 섰다. 그는 2010년 3월 1일 보령 월전초등학교에서 교감 생활을 시작해 2015년 9월 1일 태안 방포초교서 첫 교장 임무를 맡았으며, 이후 서부초교에서 교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3년 전의 일로, 매일 점심시간 학생들에게 하모니카를 가르쳐주는 교장 선생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부초교를 찾게 됐다. 당시 그는 “아이들에게서 배운다는 말은 요즘 새삼 깨닫는다”며 “연주 중인 아이들은 천사와 같다. 그런 얼굴을 보면 나도 힐링이 된다”고 전했다.

이 선생님을 3년여 만에 다시 만난 것은 스승의 날을 4일 앞둔 지난 11일이었다. 광천의 한 빵집에서 재회한 이 선생님의 얼굴에는 그때와 마찬가지로 웃음이 가득했다.

이 선생님은 양 손에 한 짐 가득 들고 등장했다. 그 안에는 39년 8개월간의 기록과 기억 그리고 제자들과의 추억이 있었다. 그는 제자들이 보낸 편지며 함께 만든 문집, 합창 등 각종 대회에 참가했던 기록과 당시 언론 보도 등을 내놓았다.

이 선생님은 “이건 1991년하고 1995년 광신초교 재직 때 만든 문집인데 예전에는 다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들었다”며 “아직도 가끔 꺼내어 읽는다”고 말했다.

광신초교 근무 당시 제자였던 한지연 씨가 2009년 보내온 편지.
광신초교 근무 당시 제자였던 한지연 씨가 2009년 보내온 편지.

이어 제자들이 보낸 편지와 성인이 된 후 보내온 사진 등을 한참 설명하던 그는 ‘청와대’ 마크가 찍힌 봉투 하나를 꺼내며 “광신초에서 2년간 가르쳤던 아이(한지연)가 2009년 1월에 보낸 편지인데 대통령실에서 근무한다고 하더라”며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것이 아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룬 것 같아 참 기뻤다”고 전했다. 이어 “이 아이는 내 부인(김연옥·59)이 홍성여고 재직시절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며 “인연은 인연”이라고 덧붙였다.

그 편지에는 ‘선생님께서는 제게 작곡·글짓기 등 정말 많은 기회를 주셨고 덕분에 초등학교 시절은 제게 자랑스러운 추억들로 가득 하답니다. 전교생이 몇 안 되는 조그마한 학교였지만 제게 그 곳은 제 인생 최고의 추억들로 가득 찬 그 무엇보다 소중한 곳이에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 선생님의 회상과 함께 가던 중 그곳 직원 한 분이 다가오며 “우리 선생님 좀 잘 써주세요”하고 말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최명선 씨는 이 선생님이 교사생활을 시작한 오서초교 시절 제자였다고 한다.

최 씨는 “제가 3학년 때였고 선생님은 스물여섯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아직도 함께 도시락을 나눠먹고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선생님은 정말 아낌없이 주던 분”이라고 전했다.

첫 제자가 다녀간 후로도 이 선생님의 회상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는 “모든 게 다 소중해 버릴 수가 없었다.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미안하다”며 겸연쩍어하면서도 아끼고 아끼던 추억을 하나 더 보여줬다. 그것은 2001년의 일이었다.

당시 장곡초교에 있던 이 선생님을 개학하자마자 합창단을 꾸렸다. 전교생이 50~60명인데 합창단원이 30명 정도나 됐다고 한다. 이 선생님과 단원들은 그해 11월 7일 충북 청주에서 열린 제2회 전국어린이합창경연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전국에서 25팀이 참가했는데 대부분 학교당 단원 수가 50~60명은 됐다”고 설명한 후 “대회 당일이 장곡 벼 수매하는 날이었는데 학부모님들이 만사 제쳐두고 함께 했다. 비록 상은 못 받았지만 경연이 끝난 후 함께 울고 웃었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1991년 10월 열린 제18회 전국학생동요작곡실기대회에서 금상을 받은 이혜련(당시 광신초 4년)도 빼놓으면 안 된다”며 “시골에서는 피아노 구경도 힘든 시절인데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다. 이제 한 마흔 살쯤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선생님은 군산교육대학교(현 군산대)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그의 교직생활에 아니 인생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음악이다. 그는 교직생활 내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으며, 현재는 광천장로교회(통합) 실로암성가대 지휘자이자 시온찬양선교단 리더이기도 하다.

또 7월부터는 내포신도시에 있는 충남노인대학교 노래강사로 나갈 예정이며, 보령 유치원교사를 대상으로 하모니카 연수 일정도 잡혀 있다.

이 선생님은 “아이들의 가정이 흔들리는 것을 볼 때 가장 안타까웠다. 한창 사랑 받아야 할 때인데 말이다”라며 “그런 아이들 마음 속 허전함을 음악이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지도했다”고 전했다. 이어 “누구든 악기를 하나쯤 했으면 좋겠다. 리코더든 하모니카든 더 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 선생님은 “오서·광신·덕명초교 등 거쳐 온 많은 곳이 폐교돼 마음이 아프다”며 “학교가 사라지만 그 동네의 정서가 무너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 안일한 결정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제자들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이 선생님은 “무엇을 하던지 최선을 다해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면 당장 성과가 안 나와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며 “어려운 시대, 모두 힘냈으면 좋겠다. 혹시 넘어져도 툴툴 털고 일어서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홍재 선생님이 가져온 추억 중에는 2011년 보령 월전초교에 있을 때 김소연(당시 6학년)이란 제자에게 받은 편지도 있었다. 3년 만에 다시 이뤄진 이 선생님과의 만남에 대한 기록은 그것으로 마감한다.

2011년 보령 월전초교 재직 때 6학년 학생(김소연)에게 받은 편지.
2011년 보령 월전초교 재직 때 6학년 학생(김소연)에게 받은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6학년 김소연입니다. 매주 월요일만 되면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주실까? 라는 생각을 하고 가면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시거나 하모니카, 기타 등을 연구 해주시고 그래서 저는 매주 월요일만 되면 너무너무 마음 설레고 행복해요. 그러고 이번에 교향악단이 왔다 갔을 때 음악이 이렇게 좋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교감 선생님께 음악을 꼭 배워보고 싶어요. 저는 교감 선생님이 너무 존경스러워요. 앞으로도 재미있는 이야기와 악기 연주 해주세요. 그럼 이만 줄일게요.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김소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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