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의 집, 슬기로운 창스생활… 함께 해 주실 거죠?
이응노의 집, 슬기로운 창스생활… 함께 해 주실 거죠?
  • 노진호
  • 승인 2020.05.27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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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작 스튜디오 제4기 입주작가 민택기·정직성·김제원
사진·회화·설치미술 등으로 각자의 세계 표현
파사드·땡감전 등 지역민과의 소통도 계속…
이응노의 집 창작 스튜디오에 살고 있는 (왼쪽부터)정직성, 김제원, 민택기 작가가 파사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이응노의 집 창작 스튜디오에 살고 있는 (왼쪽부터)정직성, 김제원, 민택기 작가가 파사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홍성읍에서 북서쪽으로 4㎞, 홍성의 주산(主山)인 용봉산 정상에서 3㎞ 정도 떨어진 곳에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이하 이응노의 집)’이 있다. 1904년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 선생은 1989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이곳에는 고암의 ‘열린 사고’를 이어가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있다.

이응노의 집 ‘창작 스튜디오’는 2017년 5월 문을 열었고, 한 달 후 1기 ‘레지던시’ 운영을 시작해 올해로 4기째를 맞았다. 축사 공간을 활용한 컨테이너형 건물로 구성된 창작 스튜디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작가의 작업세계를 확장시키고, 예술을 통해 이응노마을과 소통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창작 스튜디오 제4기 입주작가는 민택기(47·사진), 정직성(44·회화), 김제원(33·설치미술) 등으로 짜였다. 이들과의 인터뷰는 지난 21일 그들의 거처에서 이뤄졌다.

민택기 작가는 2012년 홍성과의 인연이 시작돼 이곳까지 이어졌으며, 정직성 작가는 고암의 작품을 더 가까이서 접하고 싶었던 게 계기가 됐다. 또 김제원 작가는 다양한 형태의 레지던시를 경험 중이었다.

‘관계성과 매개성’이 중요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오픈 스튜디오 등 기존 방식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에 이응노의 후예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고, 그것이 바로 ‘파사드(Façade)’이었다.

5월 초부터 선보이고 있는 파사드는 기존 축사 원형 전면부에 천막과 각관을 사용해 가로 4m 높이 3.8m의 2개 시설물 형태이다. 파사드는 건축물의 정면을 일컫는 말로 건축시공에서는 별나지 않은 것이지만, 이곳의 그것은 공공의 고민으로 탄생한 결과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민 작가는 이응노의 집 홈페이지(leeungno.hongseong.go.kr) ‘슬기로운 창스생활’을 통해 “파사드에는 작가들 개성이나 특징을 담으려 했다”며 “정 작가의 회화적 붓 터치, 김 작가의 작업 소재인 건축 이미지, 제가 좋아하는 형태들로 구성한 그래픽 요소들을 표현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직접 만난 자리에서 김 작가는 “주민들과의 소통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전했으며, 정 작가는 “이 공간의 정체성은 헤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이응노의 집 전범석 코디네이터는 “건축 원형을 살리는 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너무 축사로만 보인다’는 딜레마가 있었다”며 “파사드라는 건축적 요소를 차용해 이미지를 개선하려 한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또 이응노의 집 신나라 학예연구사는 얼마 전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건축물 원형을 그대로 활용하는 일은 ‘기억을 보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며 “홍성의 모든 축사가 사라져도 이곳은 지역의 역사문화를 증언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창작 스튜디오 파사드는 오는 6월까지 첫 작품인 ‘이응노의 집이 사랑한 얼굴들’이 전시되며, 이후에는 작가별로 두 달씩 돌아가며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앞서도 얘기했듯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중요 미션 중 하나는 지역민과의 소통이다. 그 만남을 위해 생겨난 또 하나의 공동 프로젝트가 지난 5월 5일 시작된 ‘땡감전’이다. 땡감전은 ‘땡처리 영감 전시’의 줄임말로 매월 월과 일의 숫자가 같은 날(ex 6월 6일, 7월 7일) 하루만 여는 일종의 ‘게릴라 전시’이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민 작가는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것보다는 레지던시의 방향 설정 차원이라고 봐야 한다”며 “머릿속에만 있던 조각난 아이디어들이 전시회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익지 않아 떫은 채로 내어놓는 작업이지만, 다른 관점에서의 피드백이 작가의 다음 작업으로 이어지는 에너지가 될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땡감전’은 오는 10월 10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며, 유튜브에서 ‘오(5)!땡감전’을 검색하면 첫 전시회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다.

(왼쪽부터)민택기, 정직성, 김제원 작가. 사진은 좀 경직돼 보이지만 만나보면 훨씬 부드러운 사람들이다. 사진= 노진호 기자
(왼쪽부터)민택기, 정직성, 김제원 작가. 사진은 좀 경직돼 보이지만 만나보면 훨씬 부드러운 사람들이다. 사진= 노진호 기자

제4기 입주작가 3인은 창작 스튜디오에 소속된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색을 갖고 있는 각각의 예술가이다.

민택기 작가는 사진을 주로 다루지만 영상 등 다른 미디어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도시적이고 스펙터클한 것을 좋아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소소한 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며 “주변에서 메시지나 영감을 얻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사를 쓰고 있는 노래가 있는데 제목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야’이다”라며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예술가가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정직성 작가는 “한국의 비정규직 여성이라는 제 정체성을 기반으로 바라보는 현실을 회화의 추상적 이미지로 담아내고 있다”며 “이응노 선생님도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을 추상적 언어들로 풀어내셨다”고 말했다. 이어 “현실 인식에 기반을 두지만 그렇다고 꼭 사회비판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현실의 면면을 다양한 재료와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라고 전했다.

김제원 작가는 “홍성의 오래된 건물이나 새로운 용도로 변화될 공간을 일시적인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장소 특정적 설치 프로젝트를 하려고 한다”며 “작품을 통해 지나간 시간을 회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주제를 정해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저만의 시선으로 주제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들이 앞으로 보여줄 것들이 궁금해졌다.

우선 김 작가는 “일본과 폴란드 등 해외 레지던시도 다녀왔다. 앞으로도 다양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더 많은 장소가 더 풍성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작가는 “여기에 있는 동안 새 영감을 받아 활동을 확장하고 싶다”며 “땡감전 또한 기존의 전형적인 전시와는 성격이 다른 것으로 작가 스스로 영감을 주고 매듭도 짓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활동 등을 통해 전시도 작업도 더 유연해지고 싶다”고 전했다.

끝으로 민 작가는 “내년에는 고향인 서울로 돌아간다. 홍성에서 지낸 9년을 올해 정리해 몸통을 만들고 싶다”며 “예전에는 그냥 스쳐지나갔던 것들을 보고 만지는 방법을 찾았다. 그런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이들과의 인터뷰를 기사로 작성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것은 이들이 그들만의 언어나 현학적 표현을 써서가 아니라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들의 작품을 같이 보지 못해 ‘영감’을 얻기가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6월 6일, 7월 7일, 8월 8일, 9월 9일 그리고 10월 10일… 이들을 찾아가 일상의 활력소가 될 새로운 영감을 얻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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