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의병史 속 ‘삼신당리’… 도대체 어딜까?
홍주의병史 속 ‘삼신당리’… 도대체 어딜까?
  • 노진호
  • 승인 2020.06.11 12: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주성역사관 특별기획전 ‘의병에서 독립군까지’
그 뿌리부터 향후 영향까지… 11월 1일까지 전시
이윤현 학예연구사 “잘 모르던 홍성 역사 재조명”
홍주성역사관 이윤현 학예연구사가 제2차 홍주의병 진행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홍주성역사관 이윤현 학예연구사가 제2차 홍주의병 진행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홍주의병 관련 기록이나 논문 등에 거의 대부분 등장하는 지명이 있다. 그곳은 바로 ‘삼신당리’이다. 홍주의병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위치는 불명확했다. 베일에 싸여있던 삼신당리, 지금 홍주성역사관에 가면 그 비밀의 문을 열어볼 수 있다.

홍주성역사관은 지난 5월 20일부터 오는 11월 1일까지 ‘의병에서 독립군까지’라는 주제의 특별기획전을 개최한다. 홍주성역사관은 리플릿을 통해 ‘제10회 대한민국 의병의 날 행사 개최와 백야 김좌진 장군이 지휘한 청산리대첩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라고 기획 의도를 밝히고 있다. ‘5월 20일’을 전시 개막일로 정한 것도 이날이 민종식 선생이 이끄는 의병진이 홍주읍성을 점령한 날(1906년)이기 때문이다.

홍주성역사관 이윤현 학예연구사는 “이번 특별기획전은 홍주의병의 뿌리(사상적 배경)부터 1·2차 전개과정 그리고 홍성 출신 김좌진 장군과 대한군정서 등을 소개하는 자리”라며 “우리가 무심코 지나갔던 홍성의 역사를 재조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너무 지루하고 어렵지 않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시가 펼쳐지는 홍주성역사관 기획전시실 입구에서는 우선 2분 정도 길이의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다. 이 학예연구사는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높이기 위해 준비했다”며 “개봉을 앞둔 영화의 티저(teaser) 영상 같은 것”이라고 전했다.

특별기획전 ‘티저 영상’을 보고 나면 관련 연표를 보며 입장하게 된다. 연표 중에는 파란색으로 쓰인 내용이 있는데 그것은 김좌진 장군 생애와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이번 특별기획전은 ▲홍주의병과 항일독립투쟁의 뿌리, 남당 한원진과 남당학파 ▲의병의 함성이 메아리치다 ▲홍주의병의 유산, 독립군으로 이어지다 등 세 파트로 나눠진다.

기획전시실에 들어서면 남당 한원진 선생과 마주하게 된다. 홍주문화권(내포문화권)의 한 축을 이룬 남당학파는 한원진 선생의 학문적 특성인 인물성이론을 계승한 유림들이 중심에 있다. 지산 김복한과 복암 이설 등 한원진 선생의 학풍을 계승한 인물들이 홍주의병을 주도했고, 경술국치 이후 김좌진과 한용운 같은 독립운동가가 배출되는 지역적 분위기를 형성한 것이다.

이 학예연구사는 “홍주의병은 일제 침략이 가시화되자 한원진 선생을 따르는 유생들(당문)이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1차 의병이 그런 색이 짙다”고 말했다. 이어 “한원진 선생의 영정은 7점 정도가 있는데 이번에 선보이는 것은 그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것”이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한원진 초상(충남 유형문화재 제237호)은 18세기 말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비단바탕에 채색을 해 그린 전신좌상으로 유건을 쓰고 심의를 입고 있는 모습이다.

한원진 선생과 인사를 나눈 후에는 홍주의병 관련 유물이 연대순으로 펼쳐진다. 우선 배신자 이승우와 의병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정인회를 마주보게 배치한 것이 눈에 띈다.

제1차 홍주의병(을미홍주의병)은 1895년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하지만 홍주부관찰사 이승우의 배신으로 1주일 만에 해산하게 된다. 1906년 을사늑약에 반발해 일어난 제2차 홍주의병(병오홍주의병)은 민종식과 안병찬, 이세영 등이 주도했다. 이들은 충남 서남부지역과 홍주성을 점령하며 기세를 올렸지만 일본군의 대대적 반격으로 해산됐다.

그러나 이후 전국적인 의병전쟁과 항일무장투쟁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 예로 홍주의병 당시 중군장이었던 이세영 선생은 이후 신흥무관학교 교장으로 독립군 양성에 앞장서게 된다.

이 학예연구사는 “2차 홍주의병은 이전에 비해 규모도 커지고 참여범위도 넓어졌다”며 “충남 서해안 일대 최대 규모의 의병항쟁”이라고 설명했다.

민종식 등이 쓴 편지와 의병전투요령 등 관련 서류 등과 함께 조총(鳥銃)이 한 점 전시돼 있는데 이 조총은 홍주의병 당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당대의 무기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또 1925년 간행된 홍성군지에는 1906년 의병들이 화승식 총을 성안에 난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1·2차 홍주의병의 흔적을 살펴보고 나면 홍주의병의 움직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림(지도)이 나온다. 여기에서 ‘삼신당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학예연구사는 “홍주의병실록이나 이 분야 권위자인 충남대학교 김상기 교수님의 연구논문 등에 보면 ‘삼신당리’라는 지명을 볼 수 있는데 그 정확한 위치가 불명확했다”며 “구식대포 2문을 끌고 홍주읍성에 진입했다는 당시 기록에서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홍주의병의 입장에서 검토·분석했다”고 전했다.

홍주의병사의 중요 거점인 삼신당리는 지금의 구항 마온리에서 혜전대학교 방향으로 넘어오는 길로 옥암리 수릿재 고개와 충령사가 있는 남장리 일대라고 한다. 당시 이 지역에 ‘당집(민간에서 신을 모시기 위해 사당 형태로 지은 건축물)’이 많았다는 면지나 군지 기록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이 학예연구사는 “당시 의병 두 명이 수구문을 통해 성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그곳도 군청 인근에서 찾아냈다”고 말했다. 이어 “일제는 홍주의병을 제압하기 위해 다나까 대대장을 필두로 500여명의 증파했는데, 다나까 대대장의 지휘본부가 있던 곳은 마구형사거리 부근”이라고 덧붙였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펼쳐진 역사적 전투를 한눈에 보여주는 청산리전투 진행도. 사진= 노진호 기자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 펼쳐진 역사적 전투를 한눈에 보여주는 청산리전투 진행도. 사진= 노진호 기자

홍주의병들과 발걸음을 맞춰본 후에는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은 독립군과 만나게 된다. 김좌진 장군이 스승에게 쓴 편지와 군복을 착용한 영정, 일제의 보고서(동향보고) 등이 전시 중이다.

홍성 갈산 출신인 김좌진 장군은 1917년 만주로 건너가 대종교계 단체인 대한군정서에 참여하게 되고, 이후 총사령관으로 이장령, 나중소 등과 함께 독립군을 양성했다. 그는 1920년 2월 사관연성소과 교성대를 조직했고, 같은 해 10월 청산리에서의 대승으로 항일독립전쟁 역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특히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전개된 ‘역사적 전투’를 시계방향의 그림(지도)으로 정리해 놓기도 했다. 이 학예연구사는 “청산리 대첩과 관련된 문서들을 뒤지고 또 뒤져서 날짜와 시간에 따라 정리했다”며 “김좌진 장군은 매우 잘 알려져 있는 것에 비해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주로 중국에서 활동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홍주성역사관은 이번 특별기획전을 통해 총 38건 57점의 유물을 선보이고 있다. 홍주성역사관의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해야 한다(매주 월요일 등 휴관).

더불어 홍주성역사관은 12일부터 이번 특별기획전과 같은 주제의 박물관대학 강좌도 진행해 강의와 관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가 마련됐다. 전시 관람 및 박물관대학 수강 신청 등에 대한 문의는 홍주성역사관(☎041-630-9240)으로 하면 된다.

이윤현 학예연구사는 “입장 전 발열체크와 마스크 착용 등 코로나19 방역지침만 잘 지켜주신다면 정말 재밌고 유익한 전시가 될 것”이라며 지역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