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한 염소… “당신과 닮아있지는 않나요?”
무표정한 염소… “당신과 닮아있지는 않나요?”
  • 노진호
  • 승인 2020.06.30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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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별의별 공방 채정옥 작가
7월 1~31일 갤러리 짙은서 개인전 ‘모범염소’
7월 한 달간 갤러리 짙은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채정옥 작가가 전시화 동명 타이틀 작품인 ‘모범염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7월 한 달간 갤러리 짙은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채정옥 작가가 전시회 동명 타이틀 작품인 ‘모범염소’ 앞에 서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소목(偶蹄目) 소과의 포유류로 학명이 Capra인 ‘염소’는 우리에게 익숙한 가축인 만큼 그 쓰임도 다양해 누구에겐 먹을거리이고, 또 다른 누구에겐 입을 거리의 재료이며, 가끔은 반려동물이기도 하다.

사람을 돕는 동물(가축·家畜) ‘염소’를 화폭에 담고 있는 작가가 있다. 주인공은 이응노 마을 별의별 공방의 채정옥 작가(32)로, 오는 7월 1일부터 31일까지 천수만 한울마루 속동전망대에 있는 ‘갤러리 짙은(홍성군 서부면 남당항로 689)’에서 ‘모범염소’를 테마로 전시회를 연다.

‘시골마을에서 자라 온 아이는 비탈진 언덕에서 풀을 뜯는 염소들을 쉽사리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자주 자신의 놀이 장소가 되어주던 큰 느티나무에 올라 몰래 염소를 구경하곤 했다. 염소 특유의 표정 없는 얼굴에 적잖은 흥미를 느낀 것이다. 어떤 때에는 구태여 소리를 꽥 질러 염소에게 겁을 줬는데 소스라치게 놀라 줄행랑을 칠 때마저 그 특유의 인상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보고 싶었던 것은 얼굴 너머의 번뇌인지 모르겠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는 문득, 도심 속 상가 쇼윈도에 비친 염소를 보았다. 어느덧, 염소를 닮아 있는 자신을…’

채정옥 작가가 지난 5월 1~28일 천안 갤러리공감에서 연 ‘시선’이란 전시의 리플릿에 실린 글이다. 그가 그리는 ‘염소’의 의미가 궁금했다. 지난 22일 별의별 공방을 찾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채 작가는 “염소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2년쯤으로 대학 졸업 후 사회와의 부딪힘을 점점 크게 느끼면서부터인 것 같다”며 “난 제대로 내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했고, 남이 바라는 모습으로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 시작한 그림”이라고 덧붙였다.

채 작가는 “염소는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특유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기도 하다”라며 “공부를 잘해야 하고,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서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 등 자본주의 사회 속의 기준(요구)이 그 ‘염소성’을 만든 것”이라고 전했다.

홍성군 홍동면 출신인 채 작가는 홍주고등학교~강남대학교 회화산업디자인학과(회화전공)를 나왔으며, 그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라고 한다.

그는 “처음에는 그냥 취미로 시작했다. 그런데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친한 친구들이 생기면서 학교보다 학원이 더 좋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이 대입으로 이어졌다”며 “그냥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고 회상했다.

​6월 30일까지 충남도청 작은 미술관에 전시된 채정옥 작가의 작품 ‘응시’. 사진= 노진호 기자​
​6월 30일까지 충남도청 작은 미술관에 전시된 채정옥 작가의 작품 ‘응시’. 사진= 노진호 기자​

채 작가는 한국화를 그리고 있다. 사실 필자는 별의별 공방을 찾으며 사군자(四君子,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 네 가지 식물을 일컫는 말로 고결함을 상징하는 문인화의 화제) 같은 것을 떠올렸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풀보다 상위 단계의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채 작가는 “한국화·서양화·동양화 등을 분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나누자면 재료나 그 그림을 그리는 주체의 차이”라며 “한국화하면 보통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문인화로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난 먹을 갈 때 나는 특유의 향이 좋아 한국화를 선택하게 됐다”라면서도 “꼭 먹만 쓰는 것은 아니다. 사실 어떤 재료를 쓰느냐 보다는 어떤 주제를 잡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특히 채 작가는 “난 사실 말을 잘 못해서 그림을 전달방법으로 선택한 것”이라며 “그림으로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나만의 ‘포커스(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를 알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의 사회 속에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염소성’을 찾은 것”이라며 “삶의 방향(주체성)을 사회의 기준에 맡기면 안 된다는 생각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나도 나만의 방향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2017 대한민국 청년작가초대전 ‘시흥의 바람’ ▲2018 제10회 청양향토작가 및 전국작가초대전 ▲2019 순천방문의 해 기념 전국청년작가작품전 ‘청춘: 꿈을 그리다’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채 작가는 지난해 ‘소리 없는 슬픔3’이란 작품으로 제49회 충청남도미술대전 입상작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채 작가는 올해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창작준비지원사업(창작디딤돌)에 선정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 선정돼 부담을 많이 덜었다”며 “다른 많은 예술가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채 작가는 삼성꿈장학재단에서 지원하는 지역아동센터 미디어교육(초등학생)에도 참여 중이다. 그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돕는 것”이라며 “올해로 3년차인데, 함께 공부하고 배워간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채 작가와의 대화가 이어지면서 염소가 사람을 돕는 동물이듯 그의 염소 그림도 사람을 돕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채 작가는 “혼자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 “나와 사람,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그림이고 지금 그 주인공이 염소인 것”이라고 전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삶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는 일이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전시를 통해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억압된 자아의 수문을 열고자 한다’ - 채정옥 개인전 ‘시선’ 리플릿中

7월 한 달 동안 채정옥 작가의 개인전이 펼쳐지는 갤러리 짙은, 그곳은 무표정한 염소 그림을 보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나의 내면을 확인하는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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