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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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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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오(홍성성결교회 담임목사)
이춘오(홍성성결교회 담임목사)

목회를 하다보면 목사에게 주어진 특권 가운데 장례를 집례 하는 일과 결혼 주례를 하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가정의 결혼 주례를 맡아서 그들을 축복하는 일과 삶을 마치고 또 다른 삶을 출발하는 분들의 장례를 집례 하는 것 역시 얼마나 영광스러운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홍성으로 목회지를 옮기면서 요즘엔 참 죄송한 장례식을 많이 경험합니다.

성도들에게 존경받아 오신 장로님이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장로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치매에 걸리셔서 본인도 그리고 가족도 조금은 힘들어 하실 때였습니다.

그 이후에 장로님은 요양원에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면회도 되지 않아 자주 찾아 뵐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얼마나 훌륭한 성도였는지 칭찬이 자자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이웃이었고, 직장 동료들에겐 존경받는 상사였고 교회에서는 신앙의 모범이 되시며 삶으로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낸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분의 장례를 집례하면서 너무 죄송해서 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훌륭하신 분의 삶을 곁에서 직접 뵌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과 함께 삶을 공유한 추억이 제겐 없습니다.

남들은 다 아는데 저만 모릅니다. 장례식에서 그분의 헌신과 수고, 그리고 삶의 아름다운 향기를 마음껏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그 분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 얼마나 죄송하고 송구한지 모릅니다.

25년 전 인천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80이 넘으신 할머니 한 분이 교회를 나오셨습니다. 집을 방문해 보니 남편분과 두 분이 외롭게 사셨습니다.

두 내외가 고령의 나이에 건강도 좋지 않으셨고 생활 보호대상자로 사는 것이 힘겨워 보이셨습니다.

그런데 이 어르신이 새벽에 늘 교회를 오셔서 기도하십니다.

설교가 끝나고 기도하려고 돌아서면 할머니 성도가 제 옆구리를 찌르면서 검정 비닐봉지에 담긴 무엇인가를 제 손에 쥐어 주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기도하시다 출출하시면 이거 드셔” 비닐 안에 신문지에 포장되어 있었던 것은 방금 쪄온 것 같은 따듯한 고구마였습니다.

다음 날에 또 고구마를 가져오면 제가 질릴까봐 그러셨는지 삶은 계란도 가져오시고 다음 날은 옥수수도, 그리고 그 다음 날에는 쑥 개떡도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초라한 장례식이었지만 제 생애에 가장 영광스럽고 행복한 장례를 집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할 말이 너무 많은 추억을 남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깊은 교회에 새로운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고 오면서 가장 죄송하고 미안한 부분이 바로 장례식을 집례 할 때입니다.

평생을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신 보배로운 성도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분들의 헌신 때문에 오늘의 교회가 세워지고 존재해 왔습니다.

그 분들의 사랑의 수고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새로 온 담임목사가 그 분들의 헌신을 모르는 것이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이제 남은 분들과 더 멋진 신앙의 추억을 만들어가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에 서로에게 밤을 지새우면서라도 말 해주고 싶은 추억이 너무 많아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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