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늘빛, 우리만의 글씨 그리고 우리…
우리의 하늘빛, 우리만의 글씨 그리고 우리…
  • 노진호
  • 승인 2020.08.26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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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5회 고암미술상 수상 이진경 작가
90년대 초반 유학 접고 귀국… “한국의 것 더 본질에 가까워”
“믿을 수 있는 작가 되려”… 내년 이응노의 집서 전시도 계획

홍성군은 해마다 고암 이응노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고, 그의 예술세계와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고암미술상’을 선정하고 있다. 이달 초 발표된 고암미술상의 다섯 번째 주인공은 현대회화 이진경 작가(53)였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회화, 오브제 및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폭넓은 작업세계를 구현해옴과 동시에 한글문자를 활용한 독특한 서체의 맛을 살려 좋은 평가를 받은 이진경 작가가 고암미술상의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제5회 고암미술상을 받은 이진경 작가를 이응노의 집 북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노진호 기자
제5회 고암미술상을 받은 이진경 작가를 이응노의 집 북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노진호 기자

이진경 작가와의 만남은 지난 주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에서 이뤄졌다.

이 작가는 “올해 초 고암미술상 관련 이야기를 접했고,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주위 권유가 있었다”며 “응모는 했지만 진짜 될지는 몰랐다. 무척 기쁘고, 감사하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심사평에서 보듯 현대회화를 하는 이 작가의 작품 세계는 매우 다양하다. 그는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설치미술도 한다. 상업적 간판을 하기도 하고, 광화문 쌈지농부 아트디렉터 일도 한다. 이 작가 스스로는 ‘들쭉날쭉’이라는 말로 본인의 다양성을 표현했다.

현대회화 작가인 그는 그림을 기본으로 하지만, 글씨(한글)가 그 중심에 있다. 이 작가는 “장터(시장) 장사꾼들의 글씨가 좋았다. ‘마늘 팝니다, 사과 4개에 5000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직접 쓴 글씨에는 그 사람만의 느낌이 담긴다. 그런 게 좋았던 것”이라며 “사회가 점점 도시화 되며 그런 글씨가 인쇄된 텍스트로 바뀌어 가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어 “따로 서예 같은 글씨 공부를 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서울 인사동에 있는 쌈지길 아트디렉터(2003~2008년)로 일한 게 참 많은 것을 써보는 기회가 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작가는 본인의 작품 몇 가지를 소개했다. 그 중에는 ‘검은머리의 차이코프스키’라 불리는 천재 음악가 정추의 사연이 담긴 ‘내 조국<사진>’이란 작품도 있었다. 이 작가는 “정추의 고향은 전라도 광주다. 그런데 무용가 최승희의 공연을 보러 북으로 갔을 때 6·25가 터져버린 것”이라며 “이후 그는 북으로도 남으로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 그가 미래 통일조국을 위해 만든 애국가의 제목이 ‘내 조국’”이라고 설명했다.

워낙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그이지만, 공통의 주제 같은 것이 있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특별한 주제보다는 본질적인 것 혹은 살아있는 것 뭐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은 나 혹은 내 주변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의 미감은 대부분 서구의 것들로 교육받고 그것이 선진적인 것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문화는 우리만의 고유한 것이 있고, 그것이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작가의 이런 생각은 꽤나 역사가 깊어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특히 이 시기의 결정은 그의 삶에 큰 변곡점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원 진학과 유학 등을 놓고 고민하다 학비가 싼 유럽으로 갔다. 독일이든 프랑스든 일단 가서 내게 맞는 곳을 찾자는 생각이었다”며 “그러다 백남준처럼 세계를 무대로 살지 공부하고 돌아가게 될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고 여기(유럽)에서 공부를 해도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이곳에서 배워갈 게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미감은 그 환경과 연관성이 크다. 그 나라만의 하늘빛이 있는 것이다”라며 “난 우리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다. 한국의 것이 더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그냥 추측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생각이 맞았다”고 덧붙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 작가는 옛 그림과 한문, 역사, 동양철학 등 한국에 관한 여러 가지 것들을 공부를 했다. 그래서 1998년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연 개인전 제목도 ‘나에게 간다’라고 지었다고 한다. 나의 땅 한국과 나를 찾는 탐구의 과정을 모은 전시였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으로 세상이 어수선했던 2000년대 초반, 이 작가는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이한다. 그는 2000년 12월 일본 도쿄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gift of hope’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를 마치고 돌아온 날 밤, 가족끼리 식사를 하다 아버지가 쓰러지셨고, 반년 정도의 투병 끝에 눈을 감으셨다.

이 작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8개월 정도는 청소만 했다. 도저히 작업을 할 수가 없어 그 힘으로 청소만 한 것”이라며 “2002년 3월인가 다시 작업을 시작한 어느 날 경기도 포천에 있던 작업실에 불이 났다. 그동안 아꼈던 것과 익숙했던 것들이 다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새 작업실을 마련하기 위해 빚을 내서 강원도 홍천의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사실 쌈지길 아트디렉터도 빚을 갚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며 “6년 정도 일했는데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도움이 됐다. 쌈지길 일을 ‘함께’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것이 좋은 변화를 가져다 줬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그가 작품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건지 궁금해졌다.

그는 “시골(홍천)에 살다보면 안 좋은 집안환경 때문에 혹은 공부를 잘 못해서 등의 이유로 ‘루저’처럼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며 “하지만 그것은 그냥 다른 것이다. 홍천이나 홍성이 서울이 될 필요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 집이, 고향이, 어머니가 부끄러운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됐다. 그게 부끄러우면 나 자신이 부끄러운 것이다”라며 “일단 솔직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대부분 그렇게 하지 못해 허망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작가는 한글을 쓴지 26년쯤 됐다. 그러면서도 “이제 붓을 들어 글씨가 써지는 수준”이라고 스스로를 평했다. 그가 처음 그림에 한글을 넣은 것은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모티브로 한 ‘떡 하나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작품이다<사진>. 이 작가는 “세상의 모든 자식은 호랑이와 같다”고 설명했고, 왠지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앞서 이 작가 작품의 중심에는 ‘글씨’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으로 정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는 2012년 12월 연 ‘당신이 좋아요’라는 전시에 대해 설명하며 “공적 가치를 삶에 두고 있는 분들을 초청해 작품을 선물했다”며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신이 좋아요’는 대선용 전시였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난 작가이면서 사회의 한 사람이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고 그때마다 깃발을 들고 나갈 수는 없으니 작품으로 대신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또 살고 있는 동네(내촌) 농협창고에서 동네잔치 겸 전시를 연 일, 서울 명륜동에서 간판이나 문패를 써주고 그릇·의자·비누 등과 물물교환을 한 일, 신발 한 켤레 값(1999년 당시 8만원)으로 원하는 그림을 그려준 일 등도 소개했다.

이진경 작가가 불이 난 작업실에서 모은 물건들로 만든 공. 이진경 작가 포트폴리오 참조
이진경 작가가 불이 난 작업실에서 모은 물건들로 만든 공. 이진경 작가 포트폴리오 참조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스스로 믿을 수 있는 작가’가 되려한다는 이진경 작가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보다는 어떻게 살고 또 어떻게 이 시절을 담는지가 중요하다”며 “본질은 사람들과의 교감”이라고 전했다.

이 작가는 2002년 3월 불이 난 작업실에 있던 헝겊과 책 조각 등을 모아 알록달록한 공을 만들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 공은 마치 눈덩이처럼, 세월 속에서 구르고 구를수록 더 커지고 단단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작가는 오는 10월 7일부터 열리는 ‘강원국제키즈트리엔날레’와 11월 11일 서울예술의전당에서 막을 여는 ‘기억(ㄱ)의 순간’ 전시에 참여한다. 또 내년에는 개관 10주년을 맞는 이응노의 집에서 전시도 열 예정이다. “그는 이응노 선생님과 홍성에 대해 더 공부하고 고민해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2021년, 홍성을 찾은 이진경 작가의 ‘공’이 얼마나 더 크고 아름다워졌을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2014년 서울 인사동에서 연 ‘아부레수이나’ 展. 이 전시는 우리 민요를 녹음하고 채록한 최상일 PD를 위해 마련됐다. 이진경 작가 포트폴리오 참조
2014년 서울 인사동에서 연 ‘아부레수이나’ 展. 이 전시는 우리 민요를 녹음하고 채록한 최상일 PD를 위해 마련됐다. 이진경 작가 포트폴리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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