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배, 충청도 특유의 능청과 해학, 반전 흥미유발
김풍배, 충청도 특유의 능청과 해학, 반전 흥미유발
  • 허성수 기자
  • 승인 2020.08.3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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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눈물 먹고 핀 꽃’, 등단장사로 시인 양산하는 문단 폐해 고발
김풍배 소설가가 지난 6월 13일 홍주천년문학관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자신의 단편소설집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답변하고 있다.
김풍배 소설가가 지난 6월 13일 홍주천년문학관에서 열린 북콘서트에서 자신의 단편소설집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답변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돈만 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하면서 문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글을 못 써도 돈이 있으면 시인이 될 수 있고 문학상도 수상할 수 있다. 그것도 문학계에서 제법 알려진 문인이나 학자들이 문예지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거기에 맛을 들여 등단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작품의 질은 따지지 않고 문인의 명예가 필요한 사람을 추천해주고 추천작을 실은 잡지를 대량으로 구매하게 함으로써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다. 보통 1권당 1만원이면 50권에 50만원, 많게는 100권에 100만원을 책값으로 지불해야 한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문인의 명예를 사는데 그 정도의 책값은 아깝지 않다. 돈이 없더라도 최소한 10권은 구매해줘야 추천을 받은 자로서 도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마저도 구입할 형편이 못 되면서 작품이 정말 뛰어나 추천을 받은 사람에게는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추천을 받은 사람 입장에서 오히려 상금을 받아야 한다. 작품이 게재된 잡지야 일정 부수를 기증받을 수 있고, 그 이상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부담해서 구입하면 된다. 공모한 작품을 통해 문학적 역량을 인정받고 당선을 통보받은 자가 상금은커녕 오히려 책값으로 적잖은 액수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은 매우 비상식적인 일이고, 이것이야말로 문단의 적폐다. 

서산에서 활동하는 소설가 김풍배의 단편소설 ‘눈물 먹고 핀 꽃’은 바로 이런 문예지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소설 속에 김철민이라는 인물은 졸부로 동창생 황진태가 시인으로 등단해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너무 부러워한 나머지 자신도 시인이 될 꿈을 꾼다. 그래서 이미 시인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정광섭 시인을 찾아가 시를 공부한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해도 시가 어렵기만 하다. 그는 다른 시인들의 시집을 읽어보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으니 쓰기도 어렵다. 그렇게 고민하던 그는 표절하기로 하고 기가 막힌 방법을 생각해낸다. 

나는 쓰레기통에서 시집을 꺼내어 죽 늘어놓았다. 시집을 모두 10쪽을 펼쳐 놓았다. 첫 시집 첫 절에서 한 줄, 다음 시집에서 둘째 줄, 셋째 시집에서 세 번째 줄…, 이렇게 열 줄을 꺼내어 시를 완성했다. 앞뒤 문장을 바꾸거나 단어를 바꿨다. 주어와 동사도 바꿔놓고 형용사도 앞뒤로 넣고 빼었다. 내가 작업을 했어도 이해 못하는 쪽으로 보면 아주 훌륭했다. 이렇게 10쪽부터 90쪽까지 펼쳐놓고 작업을 해보니 아홉 편이나 되었다. 
 

-‘눈물 먹고 핀 꽃’ 중에서-

그런 식으로 만든 아홉 편의 시를 정광섭 시인에게 보여주니 뜻밖에 호평을 한다. 정 시인은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문예지를 하나 소개하면서 김철민에게 거기 응모하라고 부추긴다. 그리고 추천을 받게 되면 책도 많이 사줘야 한다고 미리 언질을 한다. 

결국 김철민은 그 문예지에 작품을 보내 당선됐고, 자신의 추천작이 실린 책을 300권이나 사주면서 후하게 사례를 한다. 그 후에도 그 문예지에서는 김철민을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해 상을 주고 500만원의 사례를 받는다. 

우리 사회는 이런 식으로 시인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 시를 잘 쓰든 못 쓰든 시인이 많은 사회는 사기꾼이 많은 것보다 분명 나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돈으로 시인의 칭호를 산 김철민은 사기꾼이 된다. 가짜 건강보조식품을 만들어서 팔다가 걸리고 만다. 결국 무거운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뒤늦게 표절한 사실이 들통나 옛날에 받았던 문학상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적당히 고치거나 마구 뒤섞어 쓴 시로 행세했던 시인의 명예도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가 감옥에서 진정한 시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좁은 감방에 갇혀 지내게 되니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반성도 하면서 내면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노트에 받아 적다 보니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는 시가 되었다. 죄수 김철민이 자꾸만 뭘 적는 모습을 본 교도관이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며 노트를 빼앗아 가는데 결국 탁월한 시인의 정체를 알아보게 된다. 교도관이 시인인 자신의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김철민의 시는 교도소 안에도 붙여지고 신문의 문화면에도 인터뷰와 함께 소개되면서 유명해진다. 

김풍배의 첫 단편소설집 '눈물 먹고 핀 꽃'(문경출판사), 올해 5월에 출간했다.
김풍배의 첫 단편소설집 '눈물 먹고 핀 꽃'(문경출판사), 올해 5월에 출간했다.

다행하게도 이 소설의 내용과 관련 없는 건전한 문예지가 많이 있다. 일부 문예지들의 문제라는 것을 밝히면서 그런 폐해를 직간접적으로 목격을 한 소설가 김풍배의 지적은 높이 살만 하다. 

김풍배는 올해 5월 이 소설을 포함해 13편의 작품을 묶어 ‘눈물 먹고 핀 꽃’(문경출판사)이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집을 냈다. 대표작 ‘눈물 먹고 핀 꽃’을 비롯해 13편의 단편소설 모두 하나같이 완벽한 구성을 토대로 잘 짜여진 이야기들이라 매우 흥미있게 읽힌다. 충청도 사람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해학과 유머가 스며 있는 데다 감각적인 문장으로 잘도 그려내는 남녀간의 사랑, 혹은 누구나 겪을 법한 옛 추억담 같은 이야기들, 후반에 전혀 뜻밖의 반전과 깊은 울림을 주는 결말 등 뭐 하나 나무랄 것이 없다. 

다만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하거나 혹은 과거 언젠가 만났던 인물을 복선으로 설정해 오래 전 기억을 되살리고 훗날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만나 반갑게 해후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하고 있는 점이 거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인연을 되살려 그 동안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삶을 교차시키면서 여러 모양으로 해후하는 모습은 충분히 흥미를 느끼게 한다. 소설에서 우연을 즐겨 쓰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지만 김풍배는 그것을 필연으로 변화시키는 재주가 놀랍다. 즉,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적용해 어떤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고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테크닉이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성묘’에서 어릴 때 어머니가 신부감으로 일찌감치 정해줬으나 막상 결혼을 하지 않았던 순이누나를 비롯해 ‘사문서 위조죄’에서 동창생에게 빼앗겼던 애인 성향숙, ‘쪽지’에서 교사 초년생 시절 동료교사였던 윤현숙, ‘도돌이표’에서 중3 때 학교에서 반장을 맡아 아이들을 선동해 무능한 교사로 낙인찍어 쫓아냈던 장성우 선생님, ‘그날의 기억’에서 군대시절 사귀었던 여인 윤순이 등의 인물들과 주인공 화자와의 관계가 다 그런 식으로 설정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각 작품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사건으로 작가가 훌륭한 입담을 과시하기 때문에 재미도 있고 때로는 숙연케 하며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정말 단편소설로서는 모범답안 같은 작품이다. 

앞으로는 과거에 만났던 인물과의 추억담을 더듬고 해후하는 방식이 아닌 보다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로 인간과 사회를 탐구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소설을 기대해본다. 
김풍배는 농협에서 정년은퇴를 하고 62세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먼저 시로 등단을 해 ‘물 동그라미’, ‘가깝고도 먼 길’, ‘바람소리’ 등의 시집을 냈고, ‘노을에 기대어 서서’, ‘나무’ 등의 시조집도 냈다. 

그러나 짧은 운문으로 만족할 수 없어 그는 소설도 부지런히 써 왔는데, 올해 75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첫 소설집을 내게 되었다. 대기만성형 시인이자 소설가로서 한국문협 서산지부장을 지냈으며, 창조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자신의 첫 단편소설집 출간을 기념해 홍주천년문학관에서 가진 북콘서트 후 지역의 문인들과 함께 한 김풍배 소설가(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자신의 첫 단편소설집 출간을 기념해 홍주천년문학관에서 가진 북콘서트 후 홍성지역 문인들과 함께 한 김풍배 소설가(앞줄 왼쪽에서 네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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