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연, 돌들이 살아서 전하는 말 긴 울림으로
김가연, 돌들이 살아서 전하는 말 긴 울림으로
  • 허성수 기자
  • 승인 2020.09.02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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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집 ‘해미읍성, 600년 역사…’, 시인의 독백에서 과거 민초들 숨결 느껴
김가연 시인은 서산 토박이로 지금 살고 있는 인지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해미읍성을 자주 방문하며 시적 영감을 얻는다.
홍성읍에서 만난 김가연 시인. 그녀는 서산 토박이로 지금 살고 있는 인지면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해미읍성을 자주 방문하며 시적 영감을 얻는다. 

요즘 이동통신의 발달로 국민 누구나 휴대폰을 지니고 다니며 어디서든 전화를 걸고 받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휴대폰에 장착된 디지털카메라로 멋진 풍경을 보면 바로 찍어서 보관할 수도 있고, 누구에게나 전송할 수도 있다. 그래서 국민 누구나 사진사가 되어 사진작가 못지 않은 작품사진을 만들기도 한다. 

김가연 시인, 그녀도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항상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그냥 지나칠 줄 모른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갈수록 기능이 좋아지면서 현장의 생동감을 거의 살리며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게 하고 책으로 인쇄해도 DSLR카메라 사진 못지 않게 좋은 화면을 볼 수 있게 한다. 게다가 거기에 시인의 감성적인 언어를 입히면 훌륭한 시집이 된다. 

김가연 저/도서출판 가야/1만2000원
김가연 저/도서출판 가야/1만2000원

김가연 시인이 최근 디카시집 ‘해미읍성, 600년 역사를 걸어나오다’(도서출판 가야)를 냈다. 다소 생소한 개념인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 사진과 시의 합성어로 축약해서 부르는 말이다. 완전히 영어식으로 표현하면, ‘디카포엠’(dica-poem)이리고 불리는데, 곧 디지털카메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포착하여 찍은 영상과 함께 문자로 표현한 시다. 

김 시인의 디카시집에 해설을 쓴 신익선 시인의 말에 따르면, 디카시는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문학장르로, 언어예술이라는 기존 시의 범주를 확장하여 영상과 문자를 하나의 텍스트로 결합한 멀티 언어예술이다. 

김 시인은 이번 책의 제목이 말하듯 해미읍성을 무대로 삼아 구석구석을 돌면서 찍은 사진에 한두 줄 적은 시편을 붙였다. 물론 다소 긴 독백도 있지만 대부분 매우 절제된 시어로 600여년 전 모습을 상상하며 한 맺힌 민초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신 토설한다. 해미읍성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보루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끌려와 고문을 받고 처형당한 순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돌로 빚은 바람의 시간

-‘성벽’ 전문-

이 시는 한 행으로만 이뤄져 있다. 시인이 게을러서 너무 얄팍한 언어의 유희로 장난을 친 것 같지만 디카시이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하다. 길게 그림자가 진 성벽의 사진과 함께 이 시를 봐야 한다. 켜켜이 쌓인 성벽의 돌을 바라보면 이 짧은 시어만으로도 너무나 긴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김 시인은 이 책을 들고 진남문에서 시작해 사진이 실린 순서대로 해미읍성을 한 바퀴 돌면서 각 장면의 시를 음미한다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매우 의미있는 역사투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읍내의 한 식당에서 신익선 시인과 김가연 시인. 신익선 시인은 김 시인이 낸 이번 디카시집에 대해 성벽의 돌에 숨결을 불어넣어 해미읍성을 살아있는 생물체로 부활시켰다고 평가했다.
홍성읍내의 한 식당에서 신익선 시인과 김가연 시인. 신익선 시인은 김 시인이 낸 이번 디카시집에 대해 성벽의 돌에 숨결을 불어넣어 해미읍성을 살아있는 생물체로 부활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시집만으로 해미읍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 계속 자료를 수집하며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제는 디카시가 아니라 서사시로 사진 때문에 절제해야 했던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 놓겠단다. 

해미읍성 속에 스며 있는 민초들의 한과 난세 영웅들의 고뇌를 함축된 언어로 운율을 살려 노래를 읊어 적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다. 그것도 전체 3권의 시집으로 계획하고 있다. 

“해미읍성에 관한 자료를 훑어보면 만만치 않은 서사가 숨어 있습니다. 첫 번째 책은 해미읍성의 축성과 변천과정을 담고, 두 번째 책은 민초들의 삶을 묘사하게 됩니다. 마지막 책은 가톨릭 수난사 등으로 상·중·하 3권의 서사시를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김 시인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초창기 천주교 신자들이 해미읍성에 끌려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진 고문을 견디며 죽어간 모습을 생각할 때는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해미읍성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흘린 피의 양이 많습니다. 워낙 큰 성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 천주교 부문 서사시를 따로 한 권 내기로 했습니다.” 

김가연 시인은 내년 상반기에 상권을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산 토박이로 인지면에 살고 있는 시인이 지나칠 정도로 해미읍성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돌들이 살아서 사람의 목숨처럼 유지돼 왔습니다. 이 책으로 인해 해미읍성의 존재가치를 알리게 된다면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으로서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시인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했고 ‘열린시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시간의 배후’, ‘푸른 별에서의 하루’ 등이 있다. 충남시인협회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서산시인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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