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이끈 ‘노동문학’… 이곳에서 ‘별처럼 꽃처럼’
한국 사회 이끈 ‘노동문학’… 이곳에서 ‘별처럼 꽃처럼’
  • 노진호
  • 승인 2020.09.0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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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동문학관 정세훈 이사장
“위인들 얼·가치관 담긴 고향 홍성… 노동문학관 건립 소망”
일제강점기 카프부터 연대별 전시… “노동문화예술 메카로”
홍성군 광천읍 월림리에 자리 잡은 노동문학과 야경. 사진= 정세훈 이사장 제공
홍성군 광천읍 월림리에 자리 잡은 노동문학관 야경. 사진= 정세훈 이사장 제공

매년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1945년)된 것을 기념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을 경축하는 날이다. 올해 홍성의 8월 15일은 그 기쁨이 더 컸다. 그날, 국내 최초 ‘노동문학관’이 공식 개관했기 때문이다.

홍성군 광천읍 월림리(162-2)에 터를 잡은 노동문학관은 개관은 했지만 문은 열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쉬운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그 아쉬움을 달래려 노동문학관의 초대 이사장이자 건립위원장인 정세훈 시인(65)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그에게 건넨 첫 질문은 ‘왜’였다. 노동문학관 건립과 부지 선정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다.

정세훈 이사장은 내포뉴스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노동문학이 우리 한국사회의 올바른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 정세훈 이사장 제공
정세훈 이사장은 내포뉴스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노동문학이 우리 한국사회의 올바른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 정세훈 이사장 제공

정 이사장은 “일제 강점시기 카프(KARF)와 전태일 열사 분신 후 노동문학 관련 소중한 자료들이 손실되고 있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더 이상 손실되지 않도록 그 자료들을 한 곳으로 모아 잘 보관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나아가 노동문학을 조명하고 노동문학이 향후 우리 한국사회의 올바른 길잡이가 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초 건립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는 문단 원로를 비롯해 선·후배들은 물론 예술계와 종교계, 주변 지인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립위원회에는 원로 문인 구중서 평론가, 민영 시인, 신경림 시인, 염무웅 평론가, 현기영 소설가 등이 상임고문으로, 맹문재 시인과 박일환 시인, 배인석 화가, 서정홍 시인, 임성용 시인, 조기조 시인, 조성웅 시인 등이 기획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100여명이 힘을 보탰다.

정 이사장은 “노동문학관 건립에 대해 일각에선 지자체나 관련 단체 등과 연계해 규모 등 모든 면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지난 몇 년 간 알아본 결과 현실적으로 요원하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건립자금을 사비로 충당해 추진하게 됐다. 자금이 형편없어 문체부의 관련 법령과 시행규칙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마련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문학관 공간이 협소하지만 향후 형편과 여건이 되는대로 넓히며 채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이사장이 국내 최초 노동문학관의 터로 홍성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홍성군 장곡면 월계리 닭잘뫼 마을에서 태어나 안골마을에서 자랐으며, 옥계리에 있는 양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소년공장노동자가 됐다.

정 이사장은 “홍성은 최영·성삼문·한용운·김좌진 등 위인들의 특별한 얼과 가치관을 품고 있다. 이러한 고향 홍성에 노동과 노동문학의 얼과 가치를 담은 노동문학관을 건립하고픈 소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이 같은 성장배경과 함께 ‘큰 그림’도 그리고 있었다. 그는 “노동문학관 소재지는 중앙선이 있는 2차선 도로변이고 버스정류장도 바로 앞에 있다”며 “부지 확정 전 중장기적 계획도 염두에 뒀다”고 밝혔다. 이어 “향후 지자체 등과 협의해 문학관 인근에 시비동산과 조각공원 등을 조성해 전국적 예술명소로 만들 것이다. 또 해마다 노동예술제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 세계 노동문학예술의 메카로 만들 계획”이라며 “이런 것들을 감안해 주변에 주택이 없는 곳으로 터를 잡았다”고 부연 설명했다.

노동문학관은 노동을 다룬 개인 시집과 소설집, 동인지 문학잡지 등 소중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전시물은 1920년부터 1930년 일제강점기 카프, 전태일 열사 분신 후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 이후 등으로 분류됐다.

정 이사장은 “전시장에 들어서 우측 벽에 표기된 화살표를 따라 천천히 관람하시면 된다”며 “충남도에 승인 등록한 105점의 자료부터 전시돼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눈여겨봐야 할 소중한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노동문학’에 대해 물었다. 정 이사장은 “한국 사회는 1960년대 말 산업화가 시작됐고, 산업화의 주역인 노동자들은 한국경제를 현재의 4차 산업으로 이끌어 왔음에도 온갖 차별과 억압으로 고통 받았다”며 “노동문학 진영의 문인들은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이 내포하고 있는 바람직한 가치를 문학적으로 형상화 해왔다”고 답했다. 이어 “이를 통해 열악한 노동현장의 문제점과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 자본주의의 각종 병폐들을 비판했다”며 “더 나아가 민주·민중 등 사회운동의 선봉 역할로 한국 사회 발전을 이끌어 왔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1925년 결성된 카프(KARF),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문학이 노동과 민중의 편에 서게 된 1970년대, 정권과 자본의 결탁으로 노동문학의 역할이 극대화된 1980년대, 상대적으로 위축됐던 1990년대 노동문학 등에 대해 이야기 했다(자세한 내용은 기사 하단에 별도로 담는다).

노동문학관 전시실 중앙. 사진= 정세훈 이사장 제공
노동문학관 전시실 중앙. 사진= 정세훈 이사장 제공

정 이사장에게 노동문학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그는 “현재 노동문학은 불온한 상업적 자본주의의 흐름에 대항해야 하는 무겁고 큰 숙제를 안고 있다”며 “1980년대 우리나라 노동시장에 출몰한 비정규직이 노동유연성 강화 등에 따라 급속히 확대되고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노노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문학은 더욱 구원의 문학이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1955년 홍성에서 태어난 정 이사장은 17세 때부터 소년공장노동자로 시작해 20여년간 노동자 생활을 하던 중 1989년 ‘노동해방문학’과 1990년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시인 정세훈의 지난 30여년이 궁금했다.

그는 “노동을 하며 포장지 파지 위에 혹은 야근 후 단칸방에 엎드려 원고지에 꾹꾹 눌러 노동시를 새겼다. 또 진폐증 투병기에 외로이 홀로 가슴에 시를 새겼고, 재생된 몸으로 해고노동자 복직투쟁 현장과 광화문 촛불현장 등에서 민중과 연대하며 몸에 시를 새겼다”며 “한국민예총 이사장 대행을 맡던 2016년 10월 18일 박근혜 정권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했고, 이듬해 9월 26일에는 이명박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사법처리를 촉구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어릴 때부터 고단한 노동과 가난 그로인한 병마로 지난하고 핍진한 삶을 살아왔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낮은 곳으로 임해 핍박받은 예수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었고 이에 따라 긍정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본인의 작품세계를 정의해 달라는 질문에는 “노동자·민중과 함께 호흡해 왔다”며 “때로는 쓰러지고 때로는 짓밟히지만 언제나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는 그들의 호흡이 내 작품에 배어있다”고 답했다.

본인의 작품 중 하나를 추천해 달라고 하자 ‘몸의 중심’을 꼽았다. 이 시는 특히 2017년 2월 8일 방영된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 앵커가 소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 이사장은 “‘몸의 중심’은 2016년 11월 4일 박근혜 정권 퇴진 문화예술인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촛불시위를 위한 텐트를 치기 위해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떠오른 시상을 정리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약자, 소외된 곳, 아픈 곳 등을 중심으로 살아가자는 얼과 가치를 담았다”고 말했다.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 정세훈 시인 ‘몸의 중심’

끝으로 정세훈 이사장은 “노동문학관 건립은 어린 나이부터 ‘공순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내 삶의 동지(아내)가 전폭적으로 지지했기에 가능했다. 또 국내·외 400여명의 후원자가 있다”며 “노동문학관을 통해 노동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고 언제나 노동과 함께 가는 진정한 벗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코로나19로 당장은 찾아볼 수 없지만, 노동문학관에서는 ‘별처럼 꽃처럼’이란 주제의 개관 기념 특별전시회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초대 서기장 윤기정을 비롯해 이기영, 임화 등의 카프 문학 작품과 이후 전태일, 백기완, 박노해 등 문인 20명의 노동문학 작품 중 일부 문장과 시어를 김병주, 배인석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노동문학관 관람은 무료이며, 매주 월·화요일과 공휴일, 고유 명절 등은 휴관한다.

 

☞노동문학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정세훈 이사장이 전한 설명을 그대로 옮긴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중 한 장면. 네이버 영화 홈페이지 참조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중 한 장면. 네이버 영화 홈페이지 참조

전통적 농경사회였던 한국 사회는 1960년대 말 전국에 공단이 조성되며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이후 산업화의 주역인 노동자들은 한국경제를 현재의 4차 산업으로 이끌어 왔다. 그럼에도 불합리한 온갖 차별과 억압으로 고통 받았다.

노동문학 진영의 문인들은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이 내포하고 있는 바람직한 가치를 문학적으로 꾸준히 형상화 해왔다. 이를 통해 열악한 노동현장의 문제점과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 자본주의의 각종 병폐들을 비판 지적, 투쟁했다. 아울러 노동운동과 더 나아가 민주 민중 등 사회운동의 선봉 역할로 한국 사회 발전을 이끌어 왔다. 이렇듯, 노동문학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에 바람직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으로 불린다.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문학가들의 실천단체로써 1925년에 결성됐다.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머리글자를 딴 약칭이다.

결성 후 창작 활동보다 평론을 통한 정론적 예술비평이 주조를 이루었으며, 1926년에 발간된 준기관지 <문예운동 文藝運動>(1926)을 통해 사회주의 이념을 전파했다.

한때 심화 된 리얼리즘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작가들의 창작을 통한 사회적 실천 노력들이 활발했다.

영화 <지하촌 地下村> 사건과 1934년 신건설사(新建設社) 사건을 통한 일제의 지속적이고 극심한 탄압과 조직 내부 갈등으로 인한 조직원들의 전향으로 1935년 5월 해체됐다.

1970년대 노동문학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구름다리 밑에서 평화시장의 영세 봉제 공장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며 열악하기 짝이 없는 노동 조건에 목숨을 걸고 항의한다. 그해 11월 27일“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라는 전태일의 뜻을 기려 ‘전국연합노조 청계피복지부’가 조직됐다.

1977년 7월, 섬유제조업체 동일방직에서 노동현장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회사측의 부정과 비리에 반발해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시위하는 여성 노동자들을 당국과 경찰은 폭력배를 앞세워 똥물을 끼얹으며 진압했으며, 회사측은 주동자와 적극 가담자들을 무더기 해고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항거하는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의 목소리가 커졌다.

문학도 핍진한 노동자 민중의 현실을 직시하고 노동과 민중의 편에 서게 된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동일방직 사건을 다루고 있다. 김수영 · 신동엽 · 고은 · 신경림 · 김지하 등이 카프 이후 노동과 민중문학의 길을 다시 열고, 뒤이어 이성부 · 조태일 · 정희성 · 김준태 · 양성우 · 이시영 등이 그 폭을 넓혔다.

1980년대 노동문학

정권과 자본의 결탁으로 탄압받는 노동 현실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노동문학의 역할이 극대화된 시기다.

노동(자)문학이라는 새로운 문단의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3)을 그 대표적인 작가·작품으로 들 수 있다. 시인으로 박영근·백무산·김해화·정세훈·김신용·정인화 등이, 소설가로 방현석·김한수·정화진·안재성 등이 등장해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89년 <노동해방문학>과 <노동문학>이 창간되어 노동(자)문학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1989년 3월, 1980년대 후반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노동운동을 배경으로 창간된 <노동해방문학>은 노동자들의 계급적 자각을 바탕으로 한 노동 해방 투쟁의 방향과 전언을 담은 작품, 평론 등을 집중적으로 실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역동적으로 펼쳐졌던 우리나라 노동 해방 운동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1991년 1월 당국의 억압으로 종간되었다.

구로노동자문학회와 인천노동자문학회, 부천노동자문학회 등을 비롯해 전국 각 지역 노동자문학회가 조직되어 노동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90년대 노동문학

1990년대의 노동문학은 크게 산업분야의 노동문학, 농촌의 농민문학, 일선 교사들의 교육문학 등으로 나눌 수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 노동문학은 198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됐다.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전지구적 자본주의화와 문민정부의 출현, 반세기만의 정권교체, 노사문화의 변화 등 국내외 상황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자본주의의 세계지배로 인한 개인주의, 물질주의, 상대적 빈곤, 환경오염, 실업, 소외, 다원화, 정보화 등이 뒤섞여 한층 복잡하게 타락한 사회를 선도해야 하는 책무를 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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