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통해 꿈꾸는 더 나은 미래, 그러려면…”
“연극을 통해 꿈꾸는 더 나은 미래, 그러려면…”
  • 노진호
  • 승인 2020.09.1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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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한국연극협회 홍성지부 김수민 부지부장
‘아리랑·일본군 위안부’ 테마 공연 9년째…
소극장·연습실 부재… “작품 위한 공간 필요”
(사)한국연극협회 홍성지부 김수민 부지부장을 전국 청소년연극제 준비를 위한 임시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 노진호 기자
(사)한국연극협회 홍성지부 김수민 부지부장을 전국 청소년연극제 준비를 위한 임시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진= 노진호 기자

오는 19~20일 청운대학교에서는 청산리대첩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국 청소년연극제가 펼쳐질 예정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영상 심사로 대체돼 직접 볼 수는 없게 됐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까지 축소되는 건 아닐 것이다.

이번 연극제는 (사)한국연극협회 홍성지부(이하 홍성연극협회·지부장 이재운)가 맡고 있다. 내포뉴스는 홍성연극협회 김수민 부지부장(43)을 미리 만나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더불어 이번 연극제에 최종 선정된 작품들도 미리 소개할 예정이다.

2004년 정식 인준된 홍성연극협회는 현재 30명 정도의 회원이 등록돼 있으며, 극단 홍성무대를 중심으로 20여명 정도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6월 1일 홍주의사총에서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의병의 날 기념행사에서 ‘의병이여 일어나다’란 주제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 부지부장은 “홍성군과 사업을 같이 한 것은 3년쯤 된 것 같다. 올해 의병의 날 퍼포먼스도 그 중 하나로 의병정신이 다시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며 “코로나19 때문에 행사가 축소돼 15분 안에 모든 것을 보여줘야 했다. 흔히 생각하는 연극보다는 융·복합 공연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의병의 날 퍼포먼스와 청산리대첩 100주년 기념 전국 청소년연극제의 공통점은 ‘잊혀서는 안 되는 것,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일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 부지부장과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홍성연극협회가 꾸준히 전하고 있는 ‘테마’로 이어졌다.

(사)한국연극협회 홍성지부가 2018년 공연한 ‘나비 꿈 소녀’ 중 한 장면. 홍성연극협회 제공
(사)한국연극협회 홍성지부가 2018년 공연한 ‘나비 꿈 소녀’ 중 한 장면. 홍성연극협회 제공

홍성연극협회는 2012년쯤부터 ‘아리랑’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주제로 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김 부지부장은 “그즈음 중국의 아리랑 유네스코 등재 논란이 있었고, 그것이 아리랑을 테마로 삼게 된 계기가 됐다”며 “2012년 제30회 전국연극제(현 대한민국연극제)에서는 은상을 받기도 했고, 2013년에는 카자흐스탄 국립극장에서 초청공연도 가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테마는 아리랑이지만, 어느 한 장르가 아닌 소리와 몸짓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무대였다. 판소리를 전공한 김란 배우가 도와줘 다양한 방법과 내용을 시도할 수 있었다”며 “일반 연극과 비교해 대사 보다는 노래와 이미지가 주가 돼 배우들은 좀 힘들어하지만, 관객들은 더 쉽게 이해하는 것 같다. 특히 아이들도 꽤나 재미있어한다”고 부연했다.

‘아리랑’을 주제로 무대를 만들던 홍성연극협회는 2018년 선보인 ‘나비 꿈 소녀’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김 부지부장은 “어느 날 위안부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후 저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흔히 위안부 하면 떠오르는 사진(이미지)이 있는데 그런 것보다는 그 소녀들의 꿈과 그 삶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여성가족부가 갖고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인터뷰 기록 같은 것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극의 형태가 더 강조됐다는 점 등은 이전 아리랑을 주제로 한 공연과 다른 점이지만, 우리 무대에서 아리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위안부에 끌려갔던 소녀가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상주아리랑이 흐르고, 치매에 걸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딸과 대화하다 부르는 예전 일본 동요가 아리랑으로 오버랩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지부장은 “내 역사의식이 특별히 높아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저 잊혀서는 안 되는 것들,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연극이,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홍성의 연극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김 부지부장은 이곳 토박이는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2002년 결혼을 계기로 홍성에 왔으며, 2004년 지역 극단에 들어간 후 2010년 홍성연극협회 일을 시작했다.

비록 본토박이는 아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홍성 연극에 대한 고민이 컸다. 이곳에는 그들을 위한 ‘무대’가 없기 때문이다. 김 부지부장과의 인터뷰는 홍성군청 인근의 청년공유공간 1839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그곳도 전국 청소년연극제를 위해 잠시 마련된 공간일 뿐 홍성연극협회의 터전은 아니라고 한다.

김 부지부장은 “사실 우리는 사무실도 연습실도 없다. 연극을 위해 고민할 공간이 없는 것”이라며 “어느 날은 누구의 집, 어떤 날은 커피숍에서 모이기도 하고 방학 시즌에는 청운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의병의 날 퍼포먼스 연습도 청운대 야외극장에서 했다. 배우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홍성에는 연극을 할 수 있는 소극장도 없어 요즘은 대부분 청운대에서 공연을 해왔다”며 “가장 큰 걱정은 이런 상황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사업이나 주부극단 같은 것도 구상 중이다. 그런 것을 통해 공간이 생기면, 낮에는 군민을 위한 밤에는 작품을 위한 장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김 부지부장은 “아리랑이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테마로 한 공연은 충남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지만, 보조금은 대부분 제작·홍보비 등으로 다 쓰인다”며 “배우들 페이는 100만원도 안 된다. 서울에서 오시는 분들은 교통비 수준이다. 그래서 캐스팅 할 때 ‘같이 하시죠’가 아니라 ‘도와주실 거죠’라고 묻는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끝으로 김수민 부지부장은 “우리는 관객이 1명이어도 공연을 한다. 예술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만 마련되면 무언가 새로운 바람과 그로 인한 좋은 영향이 생길 수 있다”며 “지역민이 제대로 문화를 공유하고 향유하려면 상시적이고 동시다발적인 발생이 중요하다고 한다. 홍성에도 그런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하소연했다.

현대 공연예술의 기초를 세운 폴란드 연출가 예지 그로토프스키는 ‘연극은 만남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홍성연극협회는 올해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테마로 한 공연을 준비 중이다. 혹시 코로나19로 힘들 런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막이 열리면 이들의 무대를 만나봤으면 좋겠다. 지역 문화 발전의 새로운 바람도 거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사)한국연극협회 홍성지부가 2019년 선보인 ‘소녀, 그리다’ 중 한 장면. 홍성연극협회 제공
(사)한국연극협회 홍성지부가 2019년 선보인 ‘소녀, 그리다’ 중 한 장면. 홍성연극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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