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화가의 안식처… 그곳서 펼쳐진 ‘미래로(美來路)’
세계적 화가의 안식처… 그곳서 펼쳐진 ‘미래로(美來路)’
  • 노진호
  • 승인 2020.09.1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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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이응노의 집’… 생가지에 자리한 기념관이자 미술관
신나라 학예연구사 “고암 선생 선양… 현대화·현재화도 숙제”

사람들은 홍성하면 어떤 인물을 떠올릴까.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김좌진 장군이나 한용운 선생이 많을 것이고, 조선의 명고수(名鼓手) 한성준 선생을 꼽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화단의 진정한 증인이자 거목으로 평가받는 고암(顧菴) 이응노 선생(1904년 1월 12일~1989년 1월 10일)도 절대 빼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더불어 그가 탄생하고 유년을 보냈다는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의 낮은 산자락 끝에 자리한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이하 이응노의 집)은 홍성의 아니 충남의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응노 선생을 떠올려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갑자기?’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내포뉴스는 우리가 ‘어쩌면 아는’ 이응노지만, 앞으로 ‘새로이 만나야 할 인물이며, 함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 곳’이기에 그 시기나 명분(?)과는 무관하게 이응노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것은 3월 1일이나 8월 15일에만 김좌진 장군이나 한용운 선생을 기억할 필요는 없는 것과 같다.

내포뉴스는 오늘(17일) ‘이응노의 집’을 시작으로 ‘이응노 마을’과 그 마을에 속한 한 ‘공방’의 이야기를 전달할 예정이다. 가장 먼저 게재하는 이응노의 집에 대한 취재는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신나라 학예연구사의 도움을 받았으며, 개관 기념 책자인 ‘이응노의 집, 이야기’도 참고했다.

‘이응노의 집'은 충남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의 낮은 산자락 끝에 있다. 사진에는 북 카페와 기념관, 생가가 보인다. 사진= 노진호 기자
‘이응노의 집'은 충남 홍성군 홍북읍 중계리의 낮은 산자락 끝에 있다. 사진에는 북 카페와 기념관, 생가가 보인다. 사진= 노진호 기자

‘이응노의 집’은 대지면적 2만 596㎡ 건축면적 1002㎡이며, 기념관(1~4전시실·기획전시실)과 북 카페, 초가로 지은 생가, 야외 전시장, 연밭, 산책로, 창작 스튜디오 등을 갖춘 ‘기념관이자 미술관’이다.

2011년 10월 12일 정식으로 문을 연 이응노의 집은 2004년 6월 5일 열린 ‘고암 탄생 100주년 기념, 고암 이응노 화백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 학술 심포지엄’을 통해 발아했으며, 이후 ▲미망인 박인경 여사 박문(2005년 4월 13일) ▲생가 복원 및 기념관 건립 기본계획 수립(2005년 6월 20일) ▲설계 공모작 심사 및 당선작 발표(2008년 7월 18일) ▲건립 계획 및 실시 설계 최종보고회(2009년 3월 11일) ▲기념관 건축, 토목 등 공사 착공(2009년 6월 7일) ▲미망인 박인경 여사 고암 생가지 방문(2009년 8월 21일) ▲생가 준공(2009년 12월 9일) ▲개관준비운영위원회 구성(위원장 유홍준·2010년 10월 6일) ▲관리 운영 조례 제정(2011년 7월 15일) ▲이태호 명예관장 위촉(2011년 8월 24일) ▲디스플레이 완료(2011년 11월 1일) ▲운영위원 프리뷰(2011년 11월 5일) 등의 과정을 거쳤다.

신나라 학예사는 “개관 준비 중 이곳이 이응노 선생의 생가지임을 규명하는 게 매우 중요했다”며 “개관 당시에는 지금보다 규모가 작아 기념관과 북 카페 정도만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곳을 설계한 조성룡 건축가는 원래의 지형 그대로를 살리기 위해 고심했던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응노의 집을 설계한 조성룡 건축가(성균관대 석좌교수)는 대표작으로 광주 의재미술관과 선유도공원, 서울올림픽공원 SOMA미술관 등이 있다. 그는 “고암 이응노 선생이 그리던 고향 마을, 선생이 걸어갔던 이 길을 걸어오고 지나갈 여러분의 마음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예술과 역사의 켜가 이 땅에서 다시 펼쳐지길 바란다”는 당부를 전하기도 했다.

또 개관 운영위원으로 이응노의 집 전시 기획을 이끌었던 김학량 명예관장은 개관 기념 책자에 실린 ‘화가의 고향, 화가와 고향 - 이응노의 경우’란 글을 통해 “이 산천이 낳은 한 아이가 꿈을 품고서 그 품을 떠난 지 거의 90년(개관 당시 기준) 만에 산천을 그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받아들였다. 퍽 늦기는 했어도 오랜 세월 이방(異邦)을 배회하던 그의 유혼이 안식처를 얻은 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에서 이태호 초대 명예관장은 “이응노의 집은 홍성이 크게 자랑할 만한 기념관이며, 홍성군이 추구하는 ‘미래로(美來路)’에 안성맞춤인 터전”이라며 “‘아름다운 미래를 여는 길’이라는 의미의 ‘미래로’는 고암이 평생 추구한 예술이념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신 학예사는 대전 이응노미술관, 예산 수덕사 등 이응노 선생과 관련된 다른 장소와 이곳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그는 “대전 이응노미술관이 선생이 프랑스에서 했던 작업 중심이라면 생가지가 있는 이곳은 고암에 대한 선양(宣揚)이 주가 된다. 또 우리는 선생의 유족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의 발자취에 대한 구술 채록과 학술 연구 등도 진행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그가 태어난 이곳은 고암 예술의 씨앗이며 정서가 담긴 곳”이라고 말했다.

이응노 선생이 남긴 “예술은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는 작업입니다. 나는 충남 홍성 사람입니다”라는 말도 홍성 이응노의 집의 남다른 의미를 뒷받침해 준다.

조금 때늦은 질문일지도 모르나, 누구나 들어는 봤을 이응노라는 화가는 어떤 의미를 가진 인물일까? 이에 대한 답도 이태호 초대 명예관장의 글을 빌리기로 했다. 그는 개관 기념 책자에서 “고암 이응노는 홍성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다. 지난 20세기 중후반 벌써 파리에 머물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니 한국 예술의 긍지이며 요즈음 얘기하는 한류 문화의 원조 격”이라며 “쉬지 않고 작업해 온 다작(多作)은 전통 서화를 풍류쯤으로 여기던 인식을 크게 바꾼 새로운 작가정신이다. 또한 고암 예술 세계는 매우 다채롭다. 아마도 고암이 유럽에 가지 않았다면, 한국 현대미술사가 그에 의해 구태를 벗는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참고로 고암의 작품 세계는 도불 이전의 서화, 풍경화와 도불 이후 ‘구성’, ‘군상’ 연작 시기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고 한다.

취재를 도와 준 ‘이응노의 집’ 신나라 학예연구사. 뒤에 걸린 현수막은 지난달 20일 운영을 시작한 어린이 상설체험존 ‘이응노는 어디로 갔을까?’ 홍보용이다. 신 학예사는 공들여 준비한 체험존과 자체개발한 교육키트가 코로나19로 묶인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사진= 노진호 기자
취재를 도와 준 ‘이응노의 집’ 신나라 학예연구사. 뒤에 걸린 현수막은 지난달 20일 운영을 시작한 어린이 상설체험존 ‘이응노는 어디로 갔을까?’ 홍보용이다. 신 학예사는 공들여 준비한 체험존과 자체개발한 교육키트가 코로나19로 묶인 것을 크게 아쉬워했다. 사진= 노진호 기자

앞서 이야기했듯 이응노의 집은 기념관이자 미술관이다. 이곳 사람들은 2011년 개관 후 해마다 고암의 예술 세계에 한층 깊이 다가서는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그동안의 전시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2011년 개관 전시 ‘이응노의 집 이야기’ ▲2012년 고암과 우리 시대의 정신展/ 특별기획전 ‘홍성, 답다’ vol.1 ▲2013년 제1회 고암미술상 수상 작가 오윤석展 ▲2014년 고암 이응노 탄생 110주년 기념展 ▲2015년 제2회 고암미술상 수상 작가 배종헌展 ▲2016년 이응노의 집 소장 기증 작품展 ▲2017년 창작스튜디오 교류展·입주작가 개인展/ 제3회 고암미술상 수상 작가 박은태展 ▲2018년 도불 60주년 기념展 ▲2019년 재17회 전국고암청소년미술실기대회 입상작/ 제4회 고암미술상 수상 작가 정정엽展 등이 펼쳐졌었다.

또 지난해 11월 20일부터 올해 5월까지는 ‘고암 이응노의 사생과 소묘 : 해방공간에서 1950년대’라는 전시를 선보였고, 지난 6월 16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는 ‘고암 이응노의 문자추상 : 말과 글, 뜻과 몸짓’이란 전시를 연다. 이 전시는 이응노 화백의 ‘문자추상’과 ‘군상’ 작품을 중심으로 국내작가 5인(박선기·연기백·오윤석·이성민·이완)을 초청해 고암이 추구했던 예술정신과 세계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해 기획됐다.

필자는 기사 초반 ‘새로이 만나야 할 인물이며, 함께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할 곳’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의미는 신 학예사의 말을 통해 알 수 있을 듯하다. 그는 “이응노 선생과 그 세계에 대한 ‘현대화와 현재화’가 우리의 숙제”라며 “고암의 화가로서의 정신과 마음과 그대로 계승해야 하지만 사람들에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식은 현대화·현재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사람들이 이응노를 어떻게 기억하게 하느냐의 문제이며, 그 기억을 동시대에 맞춰 심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부연했다.

개관 기념 책자에 있는 윤후영 이응노의 집 전 학예사의 글에도 같은 뜻이 담겨 있었다. 그는 “고암을 왜 기억하고 후세에 전달하며 어떻게 기념해야 하는지를 계속해 질문하지 않으면 잔치는 오래지 않아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며 “이곳이 제2, 제3의 고암을 잉태하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다가오는 2021년은 이응노의 집이 개관 10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곳 사람들은 10주년을 앞두고 ▲젊은 이응노를 만나는 새로운 생가기념관이라는 ‘비전’과 ▲이응노 예술정신에 대한 창조적 계승과 현재화라는 ‘미션’ ▲사람과 자연, 평화, 개척, 기백이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준비에 한참이었다.

신 학예사는 “큰 방향은 잡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되지 않았다”며 “아무래도 지난 10년의 과정과 이응노 마을, 현재는 어느 지점이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이 담길 ‘아카이브(archive)'와 이응노의 정신을 주제로 한 '특별기획전'에 초첨이 맞춰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장품 DB 구축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모자란 지식과 필력이지만, ‘이응노의 집’을 조금이나마 되짚어봤다. 기사의 끝은 개관 기념 책자인 ‘이응노의 집, 이야기’ 서문 일부를 발췌한다.

‘이 땅에서 태어나 20세기를 치열하게 살고 간 한 예술가, 한 인간의 삶과 마음의 길을 따라 천천히 들어오십시오. 굽고 비탈져, 어쩌면 조금 거칠지도 모를 이 길을 찬찬히 걸으며 묵향의 여운, 고향의 풍경 한 자락 마음에 담아 가시길 바랍니다.’

 

카메라로 담은 이응노의 집기념관 내부와 연밭 등 외부 모습 몇 컷. 사진= 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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