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시간과 풍경, 생각… 그것들을 담은 12개의 작품
8년의 시간과 풍경, 생각… 그것들을 담은 12개의 작품
  • 노진호
  • 승인 2020.10.15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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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응노의 집 ‘창스’ 4기 입주작가 - 민택기
18일까지 개인전… 타이틀은 ‘Passing through’
두 달 남짓 남은 레지던시… “얻은 것은 감사함”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에서 만난 민택기 작가(오른쪽)와 신나라 학예연구사. 사진= 노진호 기자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릴레이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에서 만난 민택기 작가(오른쪽)와 신나라 학예연구사. 사진= 노진호 기자

홍성군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이하 이응노의 집)은 이달 7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제4기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개인전’을 펼친다.

3명의 입주작가가 릴레이로 진행하는 이번 전시회의 시작은 민택기 작가(47)가 맡았다. 13일 오전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에서 민 작가를 만났다.

민택기 작가와의 만남은 지난 7월 ‘땡감전’ 이후 세 달여 만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의 인상은 뭔가 더 편안해진 느낌이었다. 이어지는 그와의 대화 속에서 그 편안함이 단지 느낌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기도 했다.

민 작가와의 이야기는 이번 전시로 시작됐다. 그는 ‘Passing through(패싱 스루)’라는 타이틀로 오는 18일까지 12개의 작품을 선보인다.

민 작가는 “2012년 처음 홍성에 왔을 때 나는 논·밭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을 찍는 것뿐이었다”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만 찍으니 사람들이 나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점차 사진이 소통의 매체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나중에는 마을 수업까지 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번 전시 작품 대부분은 홍동과 장곡에서 찍은 것”이라며 “올해 이응노의 집 레지던시를 하며 그동안 컴퓨터 안에만 있던 사진들을 다시 보게 됐다. 스스로 아카이빙하며 체계화하려고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작품도 생각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민택기 작가에게 영향을 줬다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중 한 장면. 네이버 영화 홈페이지 캡처
민택기 작가에게 영향을 줬다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중 한 장면. 네이버 영화 홈페이지 캡처

그는 전시 타이틀로 내건 ‘Passing through’에 대해선 “삶 속의 여러 일들에 대해 그 이유를 잘 몰랐을 때가 있었지만, 모두 다 나의 선택이고 지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선택이기에 인정하면 되고,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완벽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며 “그런 의미를 담아 전시회 타이틀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가끔씩 다시 보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라는 영화에 ‘모든 것은 스쳐지나간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말에서 난 위안을 받는다”고 부연했다.

그는 이번 전시 작가노트를 통해 ‘나는/ 지나간다. 나에게 스민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을 무사히 통과할 것이다. 8년간 내 에포케 상태를 존중하면서 선험적 경험을 방패삼아 차가운 시공간에서 싸웠던 여정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파이터의 직무를 등에 단단히 동여매고 동굴 같던 숲을 터널 삼아 세상 반대편으로 나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자유롭게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소금기 많은 바닷물에 온몸을 던질 것이다’라고 전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지켜보던 이응노의 집 신나라 학예연구사는 “민택기 작가님은 이번 전시에서 작품 옆에 제목을 따로 달지 않고 별도의 안내지를 만들었다. 관람객들의 감상을 제목으로 가두지 않으려 한 것”이라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작가님과 그 작품에 대해 매우 신기해하고 궁금해 한다. 그건 아마도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관람객들이 호기심을 갖는 다는 것은 좋은 전시라는 방증”이라고 첨언했다.

이응노의 집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로서의 시간은 오는 12월로 끝이 난다. 그에게 남은 시간에 대해 물었다. 민 작가는 “11·12월 ‘땡감전’을 이어가고, 다음 달 10일부터는 한 달간 천리포수목원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며 “아직 공개시점이나 방식에 대한 논의는 남았지만 이번 릴레이 개인전 영상도 촬영해 ‘랜선 전시’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신나라 학예연구사는 “내년 10주년을 맞아 이응노의 집을 새롭게 기록하고 있다. 민 작가님이 올봄부터 건축물과 내부 전시, 연밭 등을 촬영 중”이라며 “작가님의 사진과 영상 등을 갖고 홈페이지도 개편하고, 책자도 새로 만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민 작가에게 레지던시 이후의 시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레디전시를 통해 가장 원했던 것은 다른 작가들과의 교류였는데 경험해보니 정말 좋았다. 그래서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레지던시를 한 번 더 했으면 한다”면서도 “혹시 안 되면 서울 성수동 집 근처에 작업실을 만들어 활동할 생각이다. 어쨌든 여기서 만든 작업이나 방향을 나만의 속도로 더 탄탄하게 만들어 갈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여기 와서 작가들, 학예팀과 함께 이응노 선생님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는데 선생님은 생활이 곧 예술활동이었다”며 “나도 그렇게 하고 싶고, 또 그렇게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응노의 집에서의 시간을 두 달 남짓 남겨놓은 그에게 지난 시간에 대해서도 물었다. 질문을 받고 잠시 침묵에 잠겼던 민 작가는 “열거하지 못할 만큼 얻은 것이 많다.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신나라 학예사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나를 도와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감사함’이다. 지나가는 바람마저 고마울 정도”라며 “앞으로 어떻게 보답해야 하느냐가 내게 남겨진 숙제”라고 고백했다.

레지던시의 중요 미션 중 하나가 지역민과의 소통인 만큼 코로나19로 인한 아쉬움도 있었다. 민 작가는 “사실 10월 땡감전을 ‘동네사람들 사진 찾아가세요’라는 타이틀로 준비했다가 하지 못했다. 그동안 땡감전을 보러 오시거나 동네 산책을 하며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 드리려 했던 것”이라며 “올 안에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그는 자연스러운 작업을 통해 대중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민택기 작가의 이번 전시 작품 중 ‘침묵의 숲을 #2’. 작가 노트 캡처
민택기 작가의 이번 전시 작품 중 ‘침묵의 숲을 #2’. 작가 노트 캡처

민 작가는 “난 내 작품이 어느 시골마을에 사는 노인의 집 한구석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는 식으로 걸려있었으면 좋겠다. 마치 창문같이 말이다”라며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는 그런 작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홍성에서 보낸 지난 8년간의 시간과 풍경, 그 속에서의 생각과 기분이 담긴 이번 전시는 내게 참 소중하다”며 “그동안 이곳에서 모은 구슬로 팔찌나 목걸이를 하나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내게는 아직 꿰어야 할 구슬이 많이 남아있다”고 전했다.

지난 5월 내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민택기 작가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의 소소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예술가가 하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주말 이응노의 집을 찾으면 그가 이곳의 풍경에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직접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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