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책임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지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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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진호
  • 승인 2020.10.16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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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는…
재난 피해자 일상복귀 도와… 올해만 524건 상담
이현숙 교수 “재난심리상담은 심리적 응급처치”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에서 만난 충청남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김숙 사원(오른쪽)과 건양사이버대학교 이현숙 교수가 토닥토닥 캠페인 나비포옹법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에서 만난 충청남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김숙 사원(오른쪽)과 건양사이버대학교 이현숙 교수가 토닥토닥 캠페인 나비포옹법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올여름 아산에는 ‘물폭탄’이 터졌다. 유례없는 집중호우로 인명·재산피해가 잇따랐다. 피해자 중에는 초등학교 6학년 영수(가명)도 있었다. 갑작스런 폭우에 영수네 집은 휩쓸려갔고, 영수는 혼자 거센 물살을 헤쳐 나와야 했다. 더군다나 영수는 당시 세 살 터울 여동생을 집에 두고 왔다고 착각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고 한다. 다행히 동생은 당시 다른 곳에 있었지만, 영수의 마음속에는 동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올여름 일어난 악몽 같은 이 사건은 열세 살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이에 충청남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는 이 소년을 위해 미술치료 등 4차례의 상담을 지원했다. 다행히 영수는 지금 ‘그날’ 이전의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가 수탁 운영 중인 충청남도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이하 센터)의 상담 사례다. 센터는 ▲재난경험자(재난피해자·가족·지역주민 등)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방문·전화상담 ▲재난심리회복전문가 인력풀 구성 및 전문 인력 양성 ▲재난심리회복지원 기초조사 및 활성화 연구 ▲중앙부처·지자체·유관단체·학회 등 네트워크 구축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내포뉴스는 센터 김숙 사원과 이 분야 권위자인 건양사이버대학교 재난안전소방학과 이현숙 교수(보건학박사)를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현숙 교수는 “재난심리회복지원 업무는 2008년 소방방재청이 시작했고, 같은 해 부산에 1호 센터가 생겼다”며 “초기에는 대학 상담심리학과와 간호학과 등이 중심이 돼 활동을 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십자사는 더 효율적인 상담을 위한 풍부한 인프라를 이미 갖고 있었다. 그런 것을 활용하기 위해 2016년 행정안전부가 대한적십자사로 이 일을 위탁했고, 이후 전국 지사로 확대되며 체계화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숙 사원은 “우리 센터는 재난 피해자들의 일상 복귀를 돕는다. 기본 3회 상담 후 필요에 따라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보건소 등 전문기관으로 연계해 준다”고 말했다.

이어 이현숙 교수는 “심리적 응급치료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재난심리상담이 일순간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트라우마가 남지 않도록 돕는 것이라면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자살방지센터 등은 대상자의 히스토리 등을 통해 내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첨언했다.

홈페이지 캡처
홈페이지 캡처

재난심리회복 지원 단계는 크게 ▲재난심리회복지원 대응 여부 및 개입 정도 판단 ▲재난 상황정보 및 피해규모, 심리회복지원 대상자의 욕구 파악 ▲대한적십자사 초기 재난구호서비스 제공과 연계해 상담 실시 등으로 나뉜다.

일반 심리상담과 재난심리상담은 접근 방법도 다르다고 한다. 이현숙 교수는 “재난심리상담은 대부분 스스로 원해서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일단 전화로 먼저 접근을 하고 피해자가 거부를 할 경우에는 상황을 잘 설명하며 만남을 성사시킨다”며 “대부분 ‘일단 와보세요’라는 말로 시작하지만, ‘고맙다’는 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센터에는 현재 99명의 활동가가 있고, 이들은 상담심리·임상심리·정신간호·사회복지·청소년상담·미술치료 등 각자의 주특기를 보유하고 있다.

센터의 지난 5년간 상담건수를 살펴보면 ▲2016년 247건 ▲2017년 507건 ▲2018년 90건 ▲2019년 181건 ▲2020년 524건(9월 기준) 등으로 나타났다.

김숙 사원은 “올여름 아산처럼 재난피해 신고가 접수된 곳을 직접 찾기도 하고, 피해자가 센터로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올해 상담이 증가한 것은 코로나19와 집중호우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상담건수를 유형별로 살펴보니 ▲감염병 264건 ▲풍수해 144건 ▲화재 40건 ▲폭염 30건 ▲교통사고 24건 ▲한파 21건 ▲추락 1건 등이었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에는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란 구절이 있다. 아마도 똑같은 감염병, 풍수해 등으로 분류됐어도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은 다 다를 것이다.

오랜 경험을 갖고 있는 이현숙 교수에게 기억에 남는 피상담자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5년 전 대전 중부경찰서에 요청으로 만났던 분이 있다. 치킨집 사장님이었는데 밤에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다 자전거와 사고가 났고 자전거 운전자는 사망에까지 이르렀다”며 “본의 아니게 교통사고 가해자가 된 그 분은 매우 억울해하고 있었다. 또 아이들이 아빠를 살인자로 볼까하는 두려움도 컸다”고 회고했다. 이어 “사실 그분은 병원 심리상담을 받고 있었지만 막상 의사선생님을 만나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울화병’이 심해지게 된 것”이라며 “통상 3번 상담이 기본이지만 그 분 같은 경우는 더 이어갔다. 만나서 욕을 들어주기도 하고 눈물을 닦아주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지나며 조금씩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이현숙 교수는 또 “올봄 예산에서 만난 70대 후반의 남성도 기억난다. 그 분은 화재로 같이 살던 동생을 잃었는데,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사고로 인한 불안감, 화재 과태료 등 경제적 부담에 대한 걱정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었다”며 “이 케이스는 상담을 여러 번 하지는 않았다. 대신 첫 상담을 굉장히 오래했고, 현실적 조언을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별 탈 없이 잘 마무리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고 덧붙였다.

‘재난’은 사실 누구나, 자주 겪게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올해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며 전 국민이 재난의 경험자가 되고 있다.

이에 센터는 ‘토닥토닥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토닥토닥 캠페인 참여방법은 두 팔을 접어 X자로 교차하고 양 손바닥으로 어깨를 토닥토닥 번갈아 두드리는 ‘나비포옹법’ 동작 사진을 찍고 개인 SNS 계정에 #토닥토닥 캠페인,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 등의 해시태그와 응원 메시지를 함께 업로드한 후 다음 주자 2명을 지목하는 것이다.

김숙 사원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 국민을 응원하기 위한 토닥토닥 캠페인은 지난 9월 14일 대한적십자사 본사에서 시작해 시·도지사와 관계기관으로 전파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코로나 블루와 재난 피해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 도민에게는 언제나 무료로 상담을 해드린다. 주저 말고 센터(☎041-640-4845)로 연락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현숙 교수는 “센터 업무가 공식 위탁된 것은 2016년이지만, 사실 적십자는 이전부터 수많은 재난 피해자들을 토닥여줬다”며 “너무 힘들다고 생각될 때도 한숨 한 번 쉬고, 하늘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좋아질 수 있다. 스스로를 잘 지키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가 배포했던 토닥토닥 캠페인 홍보 사진. 내포뉴스DB
대한적십자사 충남지사가 배포했던 토닥토닥 캠페인 홍보 사진. 내포뉴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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