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떨어져서 본 홍성… 1120개의 타일에 담긴 여정
한 걸음 떨어져서 본 홍성… 1120개의 타일에 담긴 여정
  • 노진호
  • 승인 2020.11.10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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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응노의 집 ‘창스’ 4기 입주작가 - 김제원
오는 15일까지 개인전… 타이틀은 ‘The Third Spaces’
“3인칭 관찰자로 바라본 공간… 거기에 내 이야기 담아”

홍성군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이하 이응노의 집)은 지난달 7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제4기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개인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마무리를 맡은 것은 입주작가 중 막내인 김제원 작가(33)이다. 내포뉴스는 지난 6일 전시가 진행되는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에서 그를 만났다.

이응노의 집 ‘제4기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개인전’ 마무리를 맡은 김제원 작가를 지난 6일 만났다. 사진= 노진호 기자
이응노의 집 ‘제4기 창작 스튜디오 입주작가 개인전’ 마무리를 맡은 김제원 작가를 지난 6일 만났다. 사진= 노진호 기자

김제원 작가는 설치미술을 하고 있다. 미국·일본·폴란드 등 여러 나라 레지던시를 통해 일정기간 그곳에 머물며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찾고, 그곳에서 느낀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건축이란 것은 그것이 지어진 지역성과 시대적 상황, 정치, 문화 등과도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곳만의 공간성도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동안 구축되는 것”이라며 “제 작품은 도시의 역사, 그 공간에 사는 거주민의 기억에 그 공간에 대한 내 상상력,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다”고 말했다.

오는 15일까지 펼쳐지는 김 작가의 이번 전시 타이틀은 ‘더 서드 스페이스(The Third Spaces)’로, ▲미국 유티카 레지던시의 빈집 프로젝트 ▲일본 도쿄 무코지마 프로젝트 ▲일본 교토 빈집 프로젝트 ▲폴란드 스우프스크 젬스타 코샬리나 ▲홍성 이응노의 집 창작 스튜디오 등 2015년부터 이어진 그의 활동을 담고 있다.

이양헌 미술평론가는 이번 전시 서문을 통해 “‘The Third Spaces’는 김제원의 두 번째 개인전으로 지난 5년간의 여정을 담고 있다. 뉴욕주의 오래된 공업도시인 유티카와 도쿄의 몇몇 레디전시에 거주하며 보여준 작업에서 그는 지역의 기억을 모으는 일종의 수집가처럼 보인다”며 “과거의 건축물에서 파편을 모아 쌓아 올린 일시적인 기념비는 특정한 지역의 정체성을 증언하는 동시에 역사가 이미지로 어떻게 현시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버려진 집의 파편이나 오래된 건축적 요소로 구성된 오브제는 더 이상 교환의 대상이 아니라 비로소 스스로 발화하는 쇠퇴한 사물처럼 보인다”고 부연했다.

김 작가는 “‘The Third Spaces’는 사실 내가 애용하는 전시 타이틀”이라며 “소설의 ‘3인칭 관찰자 시점’처럼 내가 관찰자로서 또 서술자로서 바라보는 또 다른 세계”라고 소개했다. 이어 “지난 5년간의 활동을 처음으로 한 자리에서 선보이는 것인데 그 장소가 이응노의 집이어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의 전시가 열리는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을 찾으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닥의 대형 타일 작품(어떤 노부부의 집 프로젝트, 235㎝×176.5㎝×0.5㎝)이다. 1120개의 세라믹 타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이응노의 집 ‘창스’ 입주작가로서의 여정이 담겨 있다.

김제원 작가가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에서 1120개의 세라믹 타일로 구성된 ‘어떤 노부부의 집 프로젝트’ 작품을 만들고 있다. 사진= 민택기 작가
김제원 작가가 이응노의 집 기획전시실에서 1120개의 세라믹 타일로 구성된 ‘어떤 노부부의 집 프로젝트’ 작품을 만들고 있다. 사진= 민택기 작가

그는 “지난 7개월간 프로젝트를 위해 수집한 이미지와 그 여정을 물에 녹는 종이 위에 그렸다. 그 드로잉은 물에 녹으면서 흘러가기도 사라지기도 남아있기도 축소되기도 확대되기도 하고 때론 균열이 생기며 변형되고 뒤섞이기도 한다.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양헌 평론가는 전시 서문을 통해 “이응노의 집 창작 스튜디오에서 선보인 ‘어떤 노부부의 집 프로젝트’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을 연결하고 사라진 마을을 상상하게 하는 방식을 통해 포탈의 기능이 보다 강조되고 있다”며 “새로운 마을이 생기기 이전에 시간을 담지 한 노부부의 집에서 작가는 건축의 가장 오래된 소재 중 하나인 타일을 배경 삼아 지역의 기억과 흔적을 새겨 넣었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한국에서의 첫 프로젝트를 하면서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이방인인 나’, ‘이곳에 있으면서도 이곳에 속해 있지는 않은 나’ 등을 느꼈다”며 “프로젝트를 위한 장소를 섭외하면서 한국사회의 공간들이 닫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의미를 먼저 생각하고 그 의미에 맞는 공간을 찾는 게 아니라 사용가능한 공간을 어떻게 내 것으로 소화할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작가가 어렵게 찾아낸 장소는 홍천마을 이삼랑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그는 “할아버지 댁에는 오래된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있고 그 부엌에는 하얀색 타일이 있다”며 “그 타일은 그곳에 오래 있으면서도 어딘가 어색하고 낯설게 부유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 집은 홍성과 나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타일이라는 재료는 이곳에 있지만 속해 있지 않은 나와 같다. 또 그 집에 마루에 설치됐던 작품은 잠시 이곳에 머물다 이동하게 되는 나를 표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작가도 그의 작품도 잠시 머물다 사라지지만, 그것이 그다지 쓸쓸하고 허무한 일은 아닌 듯 했다. 그는 “내가 이곳에 머물다 이동을 하듯 내 작품도 결국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난 그런 유목적 의미가 있는 ‘장소 특정성’이란 것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며 “내 프로젝트는 사라지지만 그곳에 남겨져 있는 그 집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또 “특별히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 공간에 그 순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이라며 “작품은 사라지지만 영상이나 글, 사진 등으로 남긴다. 그런 면에서 내 작업은 다른 장르보다 더 많은 가지를 뻗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응노의 집에서의 시간도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에게 이곳의 가치에 대해 물었다.

김 작가는 “홍성에 처음 왔을 때 했던 구상은 중간 과정에서 많이 수정됐다. 군청 근처 적산가옥과 옛 목욕탕 등을 섭외하려다 실패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그런 과정이 지나고 이삼랑 할아버지 댁을 찾게 됐다. 결국 좋은 방향으로 흐른 것 같다”고 답했다. 이어 “함께 생활한 민택기·정직성 작가는 물론 이응노의 집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홍성에는 맛집도 많았다. 이번 레지던시는 정말 재밌었다”고 보탰다.

김 작가는 남은 레지던시 기간 이번 릴레이 전시 도록과 레지던시 활동 자료집을 만드는데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이후에는 국내의 다른 지역 레지던시에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계획도 전했다. 그는 “근대역사가 담긴 건축물이 많은 인천이나 포항 등을 생각 중”이라고 귀띔했다.

김제원 작가는 참 여러 곳을 부유했다. 미국에서 만난 호주작가와는 베스트 프렌드가 되기도 했고, 일본의 작가들이 오면 관광 가이드 역할도 도맡는다.

그런 그에게 홍성은 이응노의 집과 그곳의 사람들로 기억될 것 같다. 김 작가는 “최근 레지던시 부엌에 작가들 셋이 아침부터 모여 수다를 떤 적이 있다. 늘 엄마 같은 정 작가님이 과일을 깎아주면 나와 민 작가님은 맛있게 먹는다”며 “그런 소소한 교류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아마도 곧 그리워질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앞으로 홍성하면 떠오를 곳은 바로 이곳, 이응노의 집일 것”이라고 더했다.

올해 이응노의 집 창작 스튜디오를 찾은 민택기·정직성·김제원 작가는 연말까지만 이곳에 머물 예정이다. 김 작가는 지난 5월 내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더 많은 장소가 더 풍성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자신의 레지던시 활동을 소개한 바 있다. 세 작가의 시간은 홍성에서 작품으로 남겨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각자의 세계에서 선보일 더 많은 작품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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