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을 위해, 주민과 함께… “벌써 19년째네요”
주민을 위해, 주민과 함께… “벌써 19년째네요”
  • 노진호
  • 승인 2020.11.26 19: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홍성 장곡우체국 오원철 국장
1995년 우체국과 인연… 2002년 12월 장곡으로
주민 곁으로… “자격증 따고 전자오르간 배우고”
우체국 축소 움직임… “지역주민 불편 커질 것”
오원철 장곡우체국장이 주민들을 위해 매일 아침 연습한다는 전자오르간 앞에 앉아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오원철 장곡우체국장이 주민들을 위해 매일 아침 연습한다는 전자오르간 앞에 앉아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마을을 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어르신이 타지에 사는 딸에게 김장김치를 보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아직 김장은 다 담그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뭐 어쩌겠어요. 바로 소매를 걷어붙였죠. 다 담근 김치를 소포 포장까지 해드리니 그제야 어르신도 한시름 놓으시더라고요….

각 가정마다 김장이 한창인 11월의 어느 날 만난 홍성 장곡우체국 오원철 국장(60)이 꺼낸 기억의 한 조각이다. 그는 “우체국은 정감 가는 ‘사랑방’ 역할을 해야 한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우체국은 130년 역사를 갖고 있다. 개화기이던 1884년 우정총국이 설치됐지만 20일 만에 갑신정변으로 중단됐고, 10년 후인 1895년에야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일제 암흑기를 거친 우체국은 해방 후에도 6·25전쟁으로 통신시설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우체국은 세계에서 15번째로 전국에 우편번호제도를 도입하는 등 발전을 거듭했고, 전자우편 도입 등 대국민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우체국은 3476개에 달한다고 한다(우정사업본부 홈페이지 참조/2018년 기준).

오원철 국장은 “장곡우체국은 1960년 설립됐다. 직원은 사무실 3명(국장 포함), 집배원 3명”이라며 “집배원들은 광천에 있는 집배센터에서 소포나 등기 등을 가져와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 국장과 우체국의 인연은 꽤나 오래됐지만, 사회생활의 시작이 우체국은 아니었다. 그는 “1987년 천안에 있는 단국대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다. 이후 1995년 1월 청소우체국(보령)을 통해 우체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며 “보령의 미산우체국장으로 한 13년쯤 있었고, 장곡으로 온 것은 2002년 12월의 일”이라고 말했다. 우체국과의 인연이 시작된 보령시 청소면은 그의 고향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체국의 역할도 다양해졌다. 현재 우체국은 우편은 물론 예금과 보험 업무도 하고 있으며, 인터넷 쇼핑몰(https://mall.epost.go.kr)도 운영 중이다.

그 역할은 다양해졌지만, 그 기본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오 국장은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우체국의 중심에는 ‘주민’이 있었다.

오 국장은 “장곡우체국에서 일한지 벌써 19년째다. 주민들 댁에 경사가 있으면 함께 좋아하고,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슬퍼하고… 특히 부모님처럼 여기던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며 “오래 있다 보니 지역주민들이 다 가족 같다”고 전했다.

그는 주민 곁으로 다가서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 국장은 “주민들과 화합할 수 있는 행사도 열고, 직접 마을을 돌며 우편물도 수거했다. 요즘에도 매일 아침 7시면 출근을 한다. 여긴 아침 7시나 8시에도 소포를 가져오시는 분들이 간혹 있다. 그러면 들어오시게 차도 대접하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곡은 노인인구가 많다. 그래서 무거운 우편물은 직접 옮겨 드려야 한다. 또 글을 모르는 분도 많아 직접 자녀들에게 전화해 주소를 받아 적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오 국장은 “저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직원들의 역할도 매우 크다”며 “매일 가가호호 방문하는 집배원들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혼자 사는 어르신 댁을 찾으면 화재 위험이 없나 살피고 건강 상태도 체크한다. 또 산불감시원 역할도 하고 거동수상자가 보이면 경찰서 등 관계기관에 신고까지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기관인 만큼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도 컸다. 그는 “등기, 소포 등 대면이 불가피한 업무가 많은 게 우체국”이라며 “마스크, 손 소독 등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 우체국에서는 마스크도 판매했는데 아침부터 주민 100여명이 줄을 선적도 있다”고 더했다.

오원철 국장이 19년째 몸담고 있는 장곡우체국. 장곡우체국 제공
오원철 국장이 19년째 몸담고 있는 장곡우체국. 장곡우체국 제공

우체국에 대한, 자신의 업(業)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무거운 고민도 안고 있었다.

오 국장은 “현재 면 단위 우체국 직원은 국장 포함 3인 체제인데 적어도 4명은 돼야 한다. 지금은 갑작스러운 직원 유고 시 대처가 힘들다”며 “직원들의 기본적인 행복 추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정부 시책으로 우체국 2인 관서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안다. 2024년까지 일반 면 단위 우체국은 상당수 폐국 또는 취급소로 전환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지역주민들의 불편이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또 우체국이 하고 있는 사회공헌(봉사)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직원들의 복지 하락도 자연스러운 수순이 될 것”이라고 읍소했다.

그러면서도 오 국장은 ‘더 큰 노력’의 필요성도 인정했다. 그는 “우체국도 수익을 내야하고 더 효율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것에는 동감한다. 예금과 보험은 내로라하는 금융기관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며 “지역주민과 융화돼야 우체국의 존재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 국장은 “내가 장곡우체국에 처음 왔을 때의 상황은 너무 열악했다. 하루에 소포가 5~6개 밖에 안 될 정도로 주민들의 삶과 거리가 있었다”며 “그래서 주민 곁으로 다가서기 위해 노력했다. 집집마다 우편번호 스티커도 달아주고, 우편물 방문접수도 늘렸다”고 전했다. 이어 “홍성에는 지역특산품이 많다. 우체국 쇼핑을 활용한다면 서로 상생할 수 있다”며 “발품을 팔고 공을 들여 장곡에 우량 중소기업을 유치하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오 국장의 노력이 이것만은 아니다. 그는 짬이 날 때마다 전자오르간과 색소폰을 연습하고 있으며, 재활치료·요양보호·레크리에이션 등 자격증도 여러 개 땄다. 또 적십자 봉사회와 바르게살기운동 협의회 활동도 했다.

오 국장은 “전자오르간은 8개월, 색소폰은 2개월쯤 됐는데 이제 몇 곡 부르는 정도다. 자격증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싶은 게 있으면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며 “이게 다 주민들을 위한 노력이다. 동시에 장곡우체국을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으로 서해삼육중고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1남 1녀가 있다. 정년까지는 5년이 남아, 당분간은 가족보다 주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아 보인다.

끝으로 오원철 국장은 “익히 듣게 되는 고객만족 경영 서비스니 고객 밀착경영이니 하는 것들이 우체국에도 필요하다”며 “장곡우체국의 고객은 지역주민들이다. 그들이 만족해야 ‘좋은 우체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장곡우체국이 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원철 장곡우체국장은 ‘지역주민이 만족해야 좋은 우체국’이라는 소신을 갖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오원철 장곡우체국장은 ‘지역주민이 만족해야 좋은 우체국’이라는 소신을 갖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 사진= 노진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