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구심점… 행정기관의 정책 파트너”
“농민들의 구심점… 행정기관의 정책 파트너”
  • 황동환 기자
  • 승인 2020.12.21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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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의열 충남농어업회의소 회장
관 주도 농정서 민관 협치로… “열쇠는 법제화”
서산 베테랑 농부… “소득안정 돼야 행복한 농업”
광역 지자체 첫 설립… “소비자 의견도 들을 것”

‘농업’은 이대로 사라지게 될까? 농촌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1980년~2019년까지 농가인구 및 소득현황’ 자료에 따르면 1980년 농가소득에서 65.4%에 달했던 농업소득 비중은 2019년 24.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도·농간의 소득격차도 가속화돼 도시근로자 가구소득의 95.7%였던 농가소득은 61.8% 수준까지 줄었다.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살기 힘든 현실이다 보니 농가인구도 대폭 감소해 1980년 1080만명에서 2019년에는 5분의 1 수준인 220만명이 됐다.

한미FTA 등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체제 전면화도 농어업 종사자들에겐 큰 위협 요인이다. 이런 현실에 저항하다가 박근혜 정부 시절 민중대회에 참석한 농민 백남기 씨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망하기도 했다.

고조되고 있는 국내 농어업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농어업계의 의사를 전체적으로 조율해 정부에 전달하고 정책파트너 역할을 할 대표성 있는 단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농어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기존 농정체계로는 위기에 몰린 농업의 현실을 타개하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장 및 지역 중심의 지방농정을 강화할 필요가 절실해진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농어업회의소’가 대안으로 부상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농정은 행정이 주도하고 민간은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이제는 행정과 민간이 함께 기획·실행·평가·책임지는 ‘협치체제’로 전환하자는 것이고, 농어업회의소가 이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2010년부터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을 펼쳤다. 지금까지 광역 2곳과 28개의 시·군이 대상에 선정됐고, 앞으로 전국 280여개 시·군·구 중 농업비중이 높은 일반농산어촌 122개 시·군을 중심으로 설립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농어업회의소 박의열 회장. 2018년 12월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설립된 충남농어업회의소는 2019년 3월 내포신도시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사진= 황동환 기자
충남농어업회의소 박의열 회장. 2018년 12월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설립된 충남농어업회의소는 2019년 3월 내포신도시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사진= 황동환 기자

광역단위 지자체 중 가장 먼저 설립된 충남농어업회의소를 이끌고 있는 박의열 회장(59)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재 전국단위 농어업회의소는 아직 없다. 전국에 이미 설립된 농어업회의소는 35개이다. 이 가운데 8개가 충남에 있다. 제주와 충남이 광역단위 농어업회의소 창립을 함께 준비했으나, 결국 충남만 창립됐다. 광역단위에 농어업회의소가 창립된 곳은 충남이 유일하다. 그리고 광역단위 지자체 중 추가 창립이 예상되는 곳은 경남이다. 제주는 단체별 조율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충남농어업회의소는 51개 농업단체들이 참여한 설립추진단을 거쳐 창립됐다. 박 회장은 충남농업경영인협회 회장 자격으로 농어업회의소 설립추진단 단장을 맡았고, 초대회장까지 추대됐다. 임기는 2년이다.

박 회장의 고향은 서산이다. 서산 부석중학교과 천안공고를 졸업한 그는 뒤늦게 공주대학교에 진학해 공주대학원(환경원예학)에서 학업을 마쳤다. 그는 농사지으며 나이 50이 넘어 대학 공부하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배우고 싶었던 공부였다고 한다.

“환경원예학은 환경변화에 따라 식물들이 어떻게 적응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환경원예학의 여러 분야 중에 나는 생강을 다뤘다. 올해 졸업했다.”

박 회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 일로 6년간 고향인 서산을 떠나 있었다. 그러다가 고령의 부친이 농사짓는 것이 힘에 부치자 부친이 짓던 농사를 이어받았다. 학교 졸업 후 몇 년의 외지생활을 제외하고는 태어나 자라고 지금까지 사는 곳이 서산이다. 그는 서산에서 5만평 규모의 농경지에 마늘 양파, 대파, 쪽파, 생강, 벼 등을 재배하고 있다.

“서산은 농사짓기 편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AB지구가 일반인들에게 분양되면서 10만평, 20만평 씩 대규모로 영농하는 분들이 있다. A지구는 아직까지는 3000만평 정도 되는 데 아직까지는 대규모 영농이 이뤄지나 B지구는 태양광 시설 등이 들어오면서 농지는 이전에 비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박 회장은 한 단체의 장이기 이전에 농민이다. 그렇기에 그는 농촌이 처한 현실과 농민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농업인들에겐 소득안정이 필수적이다. 38년간 농업에 종사한 내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다. 나는 농사에 만족하고 있다. ‘농사에서 돈을 빼면 행복한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일정한 소득만 보장되면, 다시 말해 돈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더 행복한 영농, 농업이 될 수 있다.”

그는 농업이 행복한 일이 되려면 무엇보다 ‘예측가능한 농업’이 돼야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1월 충남농어업회의소가 ‘농업재해보험’을 주제로 개최한 제2차 농정대토론회도 ‘예측가능한 농업’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농업에서 정책화할 수 있는 것으로 우선 관심을 갖고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농어민의 소득안정에 필요한 정책이다. 수익보장형 재해보험을 정책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안정적인 생산여건이 되면 예측가능한 영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회에선 농작물의 가격등락폭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농업재해보험을 다뤘다. 시장가격이 떨어졌을 땐 보험에서 보전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토론회는 정책 개발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다. 토론회를 통해 수렴되고 정리된 정책 안을 도에 건의할 예정이다.”

민관 협력시스템 및 농정거버넌스 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농어업회의소의 안착이야말로 한국 농정의 선진화·효율화를 위한 시급한 과제다.

좋은 구슬도 꿰어야 보배인 법, 아무리 좋은 안이 도출돼도 현장에 실현되려면 정책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박 회장이 주력하고 있는 것이 ‘농어업회의소법’ 제정이다. 정부가 지난 10여년간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관련법이 제정되지 않아 자칫 어렵게 만든 성과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농업인 단체에는 임의단체인 농업경영인회, 농민회 등이 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임의단체가 농업정책을 시·군에 건의하면, 지자체가 필요하다고 자체 판단하는 부분만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지자체에서 농민 단체들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고 집행할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농어업회의소법이 만들어지면 농어업회의소와 농업정책의 논의하는 것이 의무화 된다. 그 만큼 정책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 또 여러 농어업관련 단체들의 여러 목소리들을 농어업회의소를 통해 통일된 목소리로 정부에 건의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농어업회의소와 회의소와 함께하는 단체들과의 관계는 상하 개념은 아니다. 서로 동등한 위치에 의견을 모으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농어업단체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농어업회의소법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선 현재 정부와 국회 모두 이견이 없다. 지난 20대 국회에선 여야가 각각 법안까지 만들었지만 농해수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무산됐다. 다행히 21대 국회에선 홍문표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박 회장은 이번 국회에서 농어업회의소법이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국회 때 농어업회의소법이 발의되긴 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이었었던 미래통합당 양당이 같이 발의한 법안이다. 하지만 나중에 미래통합당의 반대로 법안 통과가 무산됐다. 이번 국회에선 지난 국회 때 보다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야당인 국민의힘 쪽에서 ‘농어업회의소법’이 민주당의 100대 공약에 속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반대한다는 이야기도 들리긴 하지만, 다행히 야당 소속인 홍문표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민주당 쪽에선 상대당이 발의해주면 발의 명단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갈 것 같다. 현재 민주당 신정훈 안과 국민의힘 홍문표 안 이렇게 2개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고 서로 조정해 하나로 통일해 통과될 것 같다.”

박 회장은 전국농어업회의소 창립을 주도하고 있다. 내년에 법이 통과되면 전국 단체가 창립될 것으로 보인다. 설령 법이 통과되지 않아도 전국 조직은 만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궁금했다. 농업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국민이 언론을 통해서 접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전국 농민단체인 농민회는 농업회의소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농민회는 현재 같이 하진 않는다. 창립 준비를 위한 추진단에서는 함께 했다. 하지만 농어업회의소법 입법과정에서 준비한 법안이 졸속법안으로 보고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농어업회의소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농민회가 정책개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데 농어업회의소가 법적지위를 얻을 경우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농민회도 함께할 것으로 본다. 지금은 투쟁이나 극한 싸움이 아닌 대화로 풀어가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기존 관 주도 농정에서 농업인의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는 농정추진체계로 건너가기 위한 교량구축에 나선 박 회장과 충남농어업회의소가 어떻게 디딤돌을 놓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농어업회의소는 소비자들의 의견도 들을 것이다.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농산물도 생산하는 시스템도 구축하려고 한다. 다양한 의견들을 취합할 수 있는 기구, 꼭 필요한 기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겠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농민은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 생산을 위해 현재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도 우리 농산물을 애용해서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당부 드린다.”

박의열 회장의 말처럼 농어업회의소를 통해 실현되는 세상이 단지 농어업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 11월 25일 충남농어업회의소가 주관한 제2차 충남농정발전대토론회 참석자들이 토론회가 끝난 후 단체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황동환 기자
충남농어업회의소가 지난 11월 개최한 제2차 충남농정발전대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황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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