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를 육상 꿈나무로, “1년에 한 아이만이라도…”
문제아를 육상 꿈나무로, “1년에 한 아이만이라도…”
  • 황동환 기자
  • 승인 2020.12.28 1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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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영희 내포초등학교 교장
1982년 교직 입문… “어려움 겪는 아이들 마음 쓰여”
코로나19 학교현장 변화 직감… “우리가 먼저 한 거죠”
독서·진로 교육 강조… “저도 책에서 길을 찾았어요”
정년 퇴임을 2년 앞둔 내포초등학교 김영희 교장. 지난 38년간의 교직생활 동안 그는 1년에 한 명의 아이를 변화시키는 것을 자신의 교육의 모토로 삼았고, 실제로 변화된 아이들의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사진=황동환 기자
정년퇴임을 2년 앞둔 내포초등학교 김영희 교장. 그는 ‘1년에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변화시키자’는 생각으로 38년간의 교직생활을 이어왔다고 한다. 사진= 황동환 기자

지난달 말 초등학생 두 명이 직접 쓴 편지와 함께 마스크 300장을 품에 안고 홍북읍주민복합지원센터를 찾았다. 편지에는 “엄마가 첫 용돈을 주셨는데 의미 있게 쓰고 싶어 마스크를 샀어요. 마스크를 구하기 힘든 할아버지·할머니와 몸이 불편한 분들에게 드리고 싶고, 코로나19가 빨리 사라져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밝게 웃는 세상이 오길 바래요”라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었다. 이 아이들은 내포초등학교(이하 내포초)에 5학년 김하연·3학년 하진 남매다.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한 이 소식은 한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를 타고 전국에 퍼지기도 했다.

마음이 착한 아이들, 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봤다.

“저는 인성을 강조해요. 창의적인 사람도 팀워크가 이뤄진 다음에야 빛을 발하는 겁니다. ‘공부를 잘해도 인성이 안 돼 있으면 어렵다’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죠.”

내포초 김영희 교장(59)의 말이다. 김 교장을 만났을 때 또 다른 미담도 들려줬다.

“지난해(2019년)에는 우리 학교 4학년 학생이 수백만원이 들어있는 지갑을 주워 경찰서에 갖다 준 일이 있어요. 그 일로 경찰서장이 직접 표창장을 들고 교장실로 찾아와 표창을 했죠.”

부여군 양화면이 고향인 김 교장은 어렸을 때부터 꿈이 교사였고, 1982년 그 꿈을 이뤘다. 그리고 38년이 지났다. 2년 후면 정년을 맞이한다.

“어렸을 때 다들 꿈이 있잖아요. 시골에서 살았는데 최고 잘되는 게 교사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꿈꾸었던 걸 이룬 거예요. 교사가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아주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김 교장은 결혼하면서 남편과 함께 부부교사로 홍성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렇게 시작한 홍성에서의 삶이 35년이다. 이 중 13년은 장학사, 장학관, 교육연구관 등 주로 교육전문직에 종사했다. 그에게 홍성은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충남도교육청과 홍성교육청에서 주로 근무했죠. 충남교육연수원에서도 교육연구사로 2년 근무를 했어요. 또 도교육청 옆에 있는 충남교육연구정보원에서도 일했는데 그곳에선 교육연구관으로 1년 반 동안 원장으로 일했어요.”

다듬어지지 않은 어린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얻고, 친구들 혹은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품성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본령이라면, 김 교장은 어느 교육자 못지않게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 교장은 교직생활 동안 꾸준히 실천해온 자신만의 교육방침을 들려줬다.

“교육에 대한 제 개인적인 모토가 ‘1년에 한 아이를 변화시키자’입니다. 생활의 문제가 많은 아이들, 조손 가정 또는 편부·편모 아이들… 저는 좀 잘 사는 아이보다는 못 사는 아이들한테 마음이 많이 가요. 돌아보면 1년에 적어도 한 아이는 변화시킨 것 같아요. 20·30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지금 30·40대가 돼 찾아와서는 ‘보통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고 부잣집 애들을 좋아하는데 선생님은 편애하지를 않으셨어요. 어려운 애들을 더 예뻐해 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라는 얘기를 할 때 뿌듯합니다.”

김 교장은 자신의 돌봄으로 변화된 아이들의 사례들을 들려줬다.

“지금도 기억이 남는 아이가 있어요. 제가 금마초등학교 교사일 때 우리 반 아이였는데 부모가 이혼해 편부 가정에서 자란 아이였어요. 아버지는 경기도에서 직장생활하고 있었고 할머니 곁에 있었죠. 그런데 도벽이 굉장히 심했어요. 또 다른 애들을 때리는 등 폭력적인 성향도 강했죠. 그런데 운동신경은 굉장히 발달해 있는 거예요. 제가 그 아이의 운동 소질을 키워줬죠. 나중엔 전국체전에 나가 1000m 달리기에서 금메달 따는 등 아주 두각을 나타냈죠. 그러면서 그 아이의 인성도 변한 겁니다. 할머니가 하는 소리가 그 아이가 저를 만나고 도벽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운동을 한 이후에 애가 착해졌다고 할머니가 학교에 찾아와서 저를 붙잡고 우셨던 기억이 있어요. 아버지까지 저를 찾아왔었어요. 아이가 변화되는 순간을 볼 때 정말 보람을 많이 느껴요.”

이밖에 김 교장이 손수 편지를 쓰고, 선물을 사주면서 여러 차례 가정방문을 통해 말과 행동이 사나웠던 아이를 선행장·학업상 받는 아이로 변화시켰던 서천 마동초등학교 때의 일도 전했다. 또 가정폭력 피해로 자살소동까지 일으켰던 다문화 가정 아이를 WEE센터와 도에 연결하고 학교에서 치료비를 지원해 회복시킨 후 졸업시키는 등 사례도 있었다.

내포초등학교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학교 교훈 표지석. 사진=황동환 기자
내포초등학교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학교 교훈 표지석. 사진=황동환 기자

김 교장이 ‘1년에 한 아이씩 변화시키자’라는 모토를 갖게 된 것은 그가 교직생활 중에 만난 선배 교사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홍성교육청에서 근무할 때 선임 과장이셨던 장재현 선생님이 ‘롤모델’입니다. 홍성여고 교장 선생님도 하셨는데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분이세요. 또 모든 사람들을 다 품는 분이셨죠. 그래서 저도 그분 따라 책도 많이 읽고, 모든 사람들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죠.”

코로나19 팬데믹은 세상 사람들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B.C’는 Before Corona로 ‘A.C’는 After Corona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학교 현장도 코로나가 몰고 온 변화에 가장 크게 노출된 곳 중 하나다. 수십명의 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 교단 위 선생님의 가르침을 배웠던 익숙한 상황은 이제 코로나로 인해 전혀 자연스럽지 않게 돼버렸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어쩌다 한 번씩 접했을 비대면 수업, 원격강의, 온라인·유튜브 화상수업 등의 말들이 지금은 일상적인 교육용어가 됐다.

올해 초 교육부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비대면 수업 지침을 각 학교에 내리기 이전부터 김 교장은 학교 현장의 변화를 미리 내다봤다. 그 때는 교육부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 수업 여부를 검토하던 시기였다. 내포초는 코로나19로 인한 학교현장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모범학교에 속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김 교장이 있었다.

“4월 17일 처음 원격수업이 시작됐는데, 우리는 3월부터 원격수업을 시작했어요.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원격수업을 이야기할 때, 무조건 몇 달은 간다고 판단했죠. 마침 우리 학교 정보부장이 프로게이머를 하다가 온 분이예요. 그 분이 전 직원 대상 원격수업 연수를 1주일간 진행했어요. 교육부 지침보다 한 2~3주 먼저죠. 그러다보니 다른 학교에서 문의가 오는 겁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강사로 나가 도와드렸죠. 학부모님들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줌으로 원격수업은 이렇게 이뤄집니다’라고 알려드렸죠. 그리고 보통 e학습터에 올라와 있는 콘텐츠를 선생님들이 그냥 클릭해 들려주는데 그 영상이 길지가 않아요. 천편일률적이죠. 그래서 선생님들께 학급에 맞게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자체제작을 했어요. 그 때 다른 학교에서 하지 않는 것을 우리 선생님들이 한 거죠.”

김 교장의 ‘선견지명’은 어릴 때부터 형성된 김 교장의 적극적인 성격과 다독에서 유래됐다.

“제 경우 하늘만 보이는 그런 시골에서 컸어요. 완전 시골이예요. 사람들이 저보고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고 있느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잘 해결해 나가는 비결은 뭐냐? 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자기 주도적 학습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스스로 모든 걸 다 했으니까요.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책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책에서 길을 찾은 거죠. 자신감도 책에서 얻었어요.”

이러한 김 교장의 경험은 독서교육의 강화로 이어졌다.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 앞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지름길은 독서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제를 보다 일찍 알게 되면 학생 자신에게 그만큼 좋을 것이므로 진로교육도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아이들이 진로를 일찍 찾을 있도록 돕고 싶어요. 강사들을 더 보강해 학부모나 아이들한테 진로교육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면 그 다음엔 자기주도적 능력을 키우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공부 하나만 잘하는 것보다 어떤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자기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그런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 또 공부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죠. 초등학교부터 이런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서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능력을 함양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내포초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책은 무조건 사주고 있어요. 올해 도서실도 리모델링했습니다.”

김 교장은 2년 후 내포초를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나야한다.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지를 물었다.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어요. 마지막 날까지 아이들을 위해 평소 하던 대로 최선을 다하는 게 목표입니다. 다만 학부모와 교사들 그리고 학생들이 김영희 교장 선생님하고 같이 한 시간들이 정말 소중했고, 리더다운 리더였다는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정년 때까지 충남뿐 아니라 전국의 학교들을 도와줄 생각입니다. 제 얘기 듣고 해결이 됐다고 고맙다는 전화를 받을 때 보람을 느껴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김 교장은 최근에 읽은 ‘일을 잘 맡긴다는 것’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일을 잘하는 리더가 있고 일을 잘 맡기는 리더가 있는데, 일을 잘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책이다. 그는 “저도 혼자 다 하려고는 안 해요. 적재적소에 사람을 배치를 해서 그 사람이 잘하게끔 하는 게 리더죠”라고 전했다.

내포초등학교 현황을 설명하는 김영희 교장. 사진=황동환 기자
김영희 교장은 독서교육과 진로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진= 황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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