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함께한다는 것…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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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동환 기자
  • 승인 2021.02.08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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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성미 풀무생협 이사장
삶의 새로운 어려움에 대응해온 생협… “이제는 내포신도시”
소비자가 친환경농산물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교 역할
80년 광주에서 보낸 대학시절… “내 삶의 결정적 전환점”
새롭게 희망 찾아나선 풀무생협… “공동체 문화 확산되길”
조성미 풀무생협 이사장은 내포신도시가 변화된 소비환경에 맞춰 소비자협동조합이라는 초기 풀무생협 정신을 구현할 적절한 장소로 판단했다고 한다. 사진= 황동환 기자
조성미 풀무생협 이사장은 내포신도시가 변화된 소비환경에 맞춰 소비자협동조합이라는 초기 풀무생협 정신을 구현할 적절한 장소로 판단했다고 한다. 사진= 황동환 기자

‘한국 생협의 시초’로 4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풀무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풀무생협)이 지난 1일 내포신도시로 거점을 옮겼다. 지역의 친환경유기농 생산자와 건강한 먹을거리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이어주는 활동에서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이 추가됐다.

1959년 풀무학교 안에서 가난한 서민들이 당면한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소비조합은 1980년 지역주민에 의해 풀무소비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 1993년에 ‘풀무소비자생활협동조합’으로 명칭을 바꿔 활동하다가 2013년 홍동면에서 홍성읍으로 활동 거점을 옮겼다. 풀무생협은 창립 이후 두 번에 걸친 파산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시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마주했던 과제를 해결했다.

이번에 내포신도시에 새로운 둥지를 튼 풀무생협은 과연 무엇이 이 시대가 당면한 삶의 새로운 어려움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려는 것일까?

2012년 풀무생협이 두 번째 파산 위기 국면에서 이사장직을 맡아 8년여의 홍성읍 시대를 거쳐 내포시대의 문을 연 조성미 풀무생협 이사장(64)을 만나 풀무생협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풀무생협은 홍성의 소비자로서 참여했을 뿐 총회에 참석할 일은 별로 없었는데 2012년 총회 때 한 번 놀러오라는 식으로 초대받아 갔던 자리에서 이사장직을 맡게 됐어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풀무생협 행사에 가면 인간적으로 너무 좋았어요. 그런 게 지역에 확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더 이상 확장이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때 제가 선언을 했죠. 풀무생협의 정신인 소비자생협으로서 거듭나려면 홍동의 풀무생협만으로는 안 된다. 홍성의 풀무생협으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그렇게 홍성의 풀무생협을 만들겠다고 그날 취임사에서 즉흥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계기가 돼 홍성 매장을 열게 된 거예요.”

풀무생협의 첫 파산위기는 생협 내부문제가 발단이 됐지만 두 번째 위기는 국내·외 농업환경 의 변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2005년 정부가 추곡수매제도를 폐지하자 지자체마다 농업을 살리기 위해 경쟁력을 갖춘 브랜드를 찾고 있던 중 친환경 농업으로 방향을 잡은 농촌 자치단체가 곳곳에서 생겨난 것이다. 친환경농산물 생산자 중심으로 활동하던 풀무생협의 경쟁력이 점차 약화됐고 쌀이 남아돌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과 2005년 생산된 쌀 중 남아도는 쌀을 일반미 값을 방출하는 과정에서 11억원의 손해가 발생했고 부실운영으로 연결됐다.

풀무생협은 회생을 위해 2010년 아이쿱생협연합에 경영위탁을 맡긴 결과 그동안의 생산자 중심 협동활동이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풀무생협은 소비자도 참여하는 처음의 설립목적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900여명의 조합원 중 280여명이 풀무생협을 떠나는 시련을 겪었다. 홍성읍으로 매장을 옮긴 풀무생협은 조합원 배가운동을 벌여 탈퇴자의 두 배가 넘는 소비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면서 현재는 1500여명으로 늘어났다.

“꾸준히 풀무생협을 믿어주시고 아껴주시는 분들,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그 자리를 지켜주셨던 이사님들과 조합원들이 있었고, 여기에 친환경급식의 가치를 중요하게 봤던 어린이집 원장님들이 풀무생협이라는 이름을 믿어 준 것이 큰 힘이 됐어요. 로컬푸드는 많아요. 그런데 친환경을 추구하는 로컬푸드는 없는 거예요. 매장을 열면서 첫 번째로 내건 슬로건이 지역과 함께하는 친환경 로컬푸드였어요. 홍동이나 장곡 같은 단지화 된 생산지뿐만 아니라 소농들도 있었고 이분들이 친환경 인증이라는 제도에 낯설지 않아 가능했다고 봅니다. 제철에 우리지역에서 나는 과채를 아이들이 먹기를 원했던 어린이집 원장님들이 힘이 많이 됐습니다. 처음 3~4곳부터 시작해 지금은 홍성군 어린이집의 45%인 26곳의 어린이집에 친환경급식 식재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집 친환경급식이란 친환경식자재를 어린이집 식재료 중 70%이상 써주는 것을 검증되면 우리가 친환경급식 어린이집이라고 자체 인증 현판을 달아줘요. 1년에 한번 검증을 하고 70%가 안 되면 현판을 뗐다가 6개월 후 70%가 되면 다시 달아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죠.”

조성미 이사장은 본인이 홍동 풀무생협 시절에 느꼈던 것을 지금의 젊은 엄마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생협활동을 통해 협동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통해 공동체 문화가 확산되길 바라고 있다. 조 이사장이 추구하는 건강, 생명, 협동, 공동체의 가치들은 80년 5월 광주를 체험한 각성에서 상당부분 비롯됐다. 사진=황동환 기자
조성미 이사장은 사람들이 생협활동을 통해 협동의 가치를 깨닫고 이를 통해 공동체 문화가 확산되길 바라고 있다. 조 이사장이 추구하는 건강, 생명, 협동, 공동체의 가치들은 80년 5월 광주를 체험한 각성에서 상당부분 비롯됐다. 사진= 황동환 기자

풀무생협은 사회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추가해 내포로 매장을 확장 이전했다. 이를 통해 조 이사장은 풀무생협이 1959년에 마을공동체를 위해 풀무학교 안에서 출발했던 그 공헌 정신을 홍성이라는 지역사회에 좀 더 확산되길 바라고 있다. 풀무생협의 내포에서의 새출발은 풀무생협의 초기정신과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자 약속이라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많이 변했고요.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생협도 보조를 맞춰야하는 거죠. 예전 생협으로 머물러서는 더 이상의 성장이나 발전은 없다고 봅니다. 현대의 흐름과 트렌드를 맞춰 갈 수 있는 곳으로 내포가 적절하다고 판단을 한 거죠. 생협은 각 시기마다 대두된 삶의 새로운 어려움에 대응해왔습니다. 새롭게 직면하는 과제에 따라 생협의 활동 내용도 거기에 맞춰 채워가야겠죠.”

조 이사장에게 2021년 풀무생협이 대응해야할 삶의 새로운 어려움은 무엇인지 물었다.

“각자 모래알처럼 각자 흩어져 있고 개인주의적이다 보니, 삶이 외롭고 고독하잖아요. 누군가와 소통하고 함께하는 경험이 부족한 것 같아요. 협동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홍동에서 느꼈던 것을 지금의 젊은 엄마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거예요. 아이들에게 공부안하면 닦달하고 남보다 좋은 옷 입히고 잘 먹이고 하는 것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스스로 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장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생협활동을 통해서 삶이 재미나고 즐거운거구나, 함께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그런 걸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재미있게 잘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이제 막 문을 연 풀무생협의 내포매장에 대해 조 이사장이 거는 기대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가교 역할에서 찾을 수 있다.

“파프리카 하나 배추 한 잎에도 그걸 생산하는 농부들의 스토리와 땀방울이 있는 거구요. 소비자들도 이런 스토리를 하나하나 알게 되면 애정과 고마움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들이 이런 것을 소비함으로써 사회가 건강하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긍지도 갖게 하는 일이죠. 이런 의미에서 생협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역할은 이런 스토리들을 소비자들에게 더욱 확산시키는 거죠. 뜨개 교실. 쉽게 접근하는 환경운동. 여성, 학부모교육. 먹을거리에 대한 교육 등 작은 동아리 모임들을 꾸릴 겁니다. 특히 생산자들과 관계도 돈독히 하는 가교 역할을 할 겁니다. 도시의 소비자들이 농촌의 생산자들의 실태도 알고 애환도 알 수 있도록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을 만들 겁니다. 특히 공공기관이 많은데, 수준높은 소비패턴을 어떻게 맞춰갈지 고민거리이기도 하고 과제이기도 하죠. 이는 어떻게 보면 저희밖에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조 이사장이 태어난 곳은 논산이나 유년시절부터 지낸 홍성이 사실상의 고향이다. 홍남초·홍여중·홍여고를 졸업한 그는 1981년에 광주 조선대 의대 간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 졸업후 홍성에서 조산원으로 20년 넘게 아이 받는 일을 했다. 2003년 조산원 폐업과 함께 조산원 일을 그만둔 그는 대신 2018년까지 충남 서북부 7곳의 보건소에 자연분만을 위한 준비교실에서 출산과 자연분만·모유수유의 가치, 아이를 스스로 낳을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강의를 했다.

“조산사라는 역할은 말 그대로 아이 낳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죠. 산부인과 의사처럼 아이를 받아낸다고 하지 않아요. 아이는 배 아파서 낳는 사람이 낳는 거지 의사가 아이를 받아내는 것은 아닌거죠. 부부교실을 열어서 부부가 함께 힘을 합해 아이를 낳는 그런 교육도 했습니다. 20년간 약 12000명의 아이를 받은 것 같아요. 의료원 산부인과 과장이 제게 왔을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아이를 낳아봤지만, 아이 낳을 때 옆에서 손잡아 준 사람 평생 안 잊히잖아요. 그 시대만해도 병원도 많지 않았던 힘든 시절에 격려하고 교감하면서 아이를 낳다보니까 그 사람들이 제게 의지를 많이 했던 것 같고, 지금도 그런 여운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보면 반가워합니다.”

건강·생명·협동·공동체는 조 이사장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들이다. 간호학을 공부했고 조산원으로서 많은 시간동안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해온 그는 풀무생협이 추구하는 가치와 연결돼 있다. 그는 협동의 가치를 재발견해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과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자·소비자간 가교 역할에서 생협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건강 잃으면 다 잃는 거잖아요. 건강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는 거고. 내가 일부러 의도하고 살아온 건 아닌데 이 세상의 건강한 변화에 관심을 갖고 그런 변화를 추구하며 살아왔죠.”

생명을 바라보는 조 이사장의 애틋한 시선과 사회를 향한 따뜻한 애정은 그의 과거 경험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78년부터 1981년까지 조 이사장이 광주에서 지냈던 대학시절은 한국 현대사의 최대 격동기와 겹친다. 특히 1980년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의해 처참히 살육된 형제자매들의 비참한 모습을 조 이사장은 현장에 똑똑히 목격했다.

“제가 거기서 철들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현장에 있었습니다. 다 목격했습니다. 학생이어서 제가 총칼을 들고 싸우진 않았지만, 투쟁하는 것을 다 목격했죠. 만일 광주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그냥 모범생이나 착한 학생으로 남았겠죠. 저는 어려서부터 사랑 많이 받으면서 컸거든요. 우리 집안이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어렵지 않게 자랐던 것 같아요. 순탄하게 컸을 거예요. 그런데 광주에서 현장을 보게 됐습니다. ‘아! 이 세상이 내가 혼자 착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거구나,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거구나. 사람이 불의를 보고 화를 낼 줄도 알아야 되는 거구나’하는 것을 절절히 깨닫게 됐습니다. 5월 광주는 제 인생의 결정적 전환점이 됐죠.”

풀무생협은 지역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조 이사장의 바람이자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사실 풀무생협이 내포에 문을 열 수 있었던 것도 홍성군이 같이하겠다고 해 성사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유기농 특구인 홍성군도 친환경농산물 생산 메카가 군이 가야할 갈 길이라고 한다면 풀무생협이 가는 길에 역할을 나눠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작 홍성군에서 친환경 농산물이 생산되는데 이 농산물이 소비자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루트가 없었어요. 생산자들도 소비처가 있어야하고 소비자들도 생협에 오면 지역의 친환경 농산물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줘야하죠. 그리고 생협도 생산된 좋은 먹을거리가 주민들의 식탁에 오르는 문제에 대해 소홀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주민들이 친환경 농산물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생산자 소비자간 가교 역할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내포신도시로 확장이전한 풀무생협 조성미 이사장과 직원들의 개장 준비를 위해 상품들을 진열하고 있다. 사진=황동환 기자
내포신도시로 확장이전한 풀무생협 조성미 이사장과 직원들의 개장 준비를 위해 상품들을 진열하고 있다. 사진= 황동환 기자
'풀무생협 유기농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지난 1일 내포신도시에 문을 연 풀무생협 매장 내부. 사진=황동환 기자
'풀무생협 유기농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지난 1일 내포신도시에 문을 연 풀무생협 매장 내부. 사진=황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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