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강직했던 조선의 선비 이태중…“공직자의 표상”
청렴·강직했던 조선의 선비 이태중…“공직자의 표상”
  • 황동환 기자
  • 승인 2021.02.1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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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향토문화연구회, 홍성에 이태중 청백비 건립키로
후손 이태복 월진회 회장, 홍성문화원서 초청강연
(사)홍주향토문화연구회는 8일 홍성문화원에서 월례회의를 개최하고 이태복 매헌월진회 회장을 초청해 '청백리 삼산 이태중' 강연을 자리를 마련했다. 사진=황동환 기자
매헌윤봉길월진회 이태복 회장 8일 홍성문화원에서 '청백리 삼산 이태중'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황동환 기자

홍성지역 향토사 연구와 문화재 보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묻혀있던 역사 인물 발굴을 위해 노력해 온 (사)홍주향토문화연구회(회장 이의석, 이하 연구회)가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백리 삼산(三山) 이태중(李台重, 1694~1756년)을 알리는 일에 팔을 걷어 붙였다.

이태중의 면모는 문중에서 이야기로 전해져 알고 있었을 뿐 세상엔 제대로 알려지 않았다가 후손 이태복 매헌윤봉길월진회 회장이 집필한 ‘이태중 평전’에 의해 세간에 일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묘소가 홍성군 은하면 목현리에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홍성지역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연구회는 8일 홍성문화원에서 올해 첫 번째 월례회의를 개최하고 김대중 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태복 회장을 초청해 이태중에 관한 강연을 들었다.

이태복 회장은 “왕조 체제하에서 수탈과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조정과 지방관들의 탐학에 맞서 청렴하고 검소한 생활태도를 견지하면서 백성을 위한 선정에 앞장섰던 이태중은 지금의 공직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너도나도 초지일관 청렴결백하고 강직했던 조선의 선비 이태중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김석환 군수가 이태중 청백비 건립을 지원하기로 한 만큼 이를 계기 삼아 청렴한 공직풍토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연구회 이의석 회장은 “된장찌개 하나, 멸치 한 접시로 관직을 수행했다는 말에서 엿볼 수 있는 조선 영조시대의 ‘청백리’ 삼산 이태중은 홍성과도 깊은 인연이 있지만 묻혀있던 역사 인물”라며 “철두철미 청렴결백한 삶을 견지했던 이태중이라는 인물을 올바로 조명함으로써 공직자들의 표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연구회의 이태중 조명 사업에 홍성군도 지원에 나섰다. 연구회는 먼저 청백비를 건립하기로 뜻을 모으고 현재 적당한 장소를 물색 중이다.

 

■ 청백리(淸白吏)는 청렴결백한 관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특히 유교를 지배이념으로 한 사회에서 청렴결백한 관리가 되어야 인과 덕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고 봤다. 조선 왕조 초기에는 청백리보다 왕권에 충성하는 인물들이 필요했지만 성종 이후 안정기에 들어선 이후부터 청백리를 언급하고 강조했다. 살아있는 청렴결백한 관리를 염근리(廉謹吏)라하고 사후 인물을 청백리리라 불렀다. 하지만 선조 이전에는 생존한 인물에게도 청백리 존칭을 붙였다.

삼산 이태중은 목은 이색의 13대 손으로 할아버지 이행 때 결성현 삼산으로 내려와 은거했으며, 숙부 이병상과 스승 이희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조와 동갑인 이태중은 선비로서 명분과 대의에 맞지 않으면 죽음을 무릅쓰고 왕에게 간언했다. 오직 백성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했고, 백성 구제에 전력을 다했다. 부패한 관리를 숙청하고 백성들의 혈세 낭비를 뿌리 뽑아 민생 구제에 힘썼다. -이태중 평전(이태복 지음) 참조-

삼산 이태중의 묘소는 홍성군 은하면 목현리 산17번지에 위치해 있다. (사)홍주향토문화연구회 자료집에서 캡쳐
삼산 이태중의 묘소는 홍성군 은하면 목현리 산17번지에 위치해 있다. (사)홍주향토문화연구회 자료집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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