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이별
진심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이별
  • 황동환 기자
  • 승인 2021.03.18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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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예산중앙장례식장 조세제 대표
신발 외판사원·부동산업에도 종사…“돈보단 사람”
예산군 최초의 전문장례식장…“새 장례문화 선도”
지난 2월 22일에 문을 연 예산중앙장례식장 조세제 대표. 그는 넓은 빈소, 남녀로 구분된 상주 숙소, 별도 영결식장 등이 기존 장례식장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한다. 사진=황동환 기자
예산중앙장례식장 조세제 대표. 그는 새로운 장례문화를 그리고 있다. 사진= 황동환 기자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음을 맞게 된다. 마지막 순간만큼이라도 고이 보내드리고 싶은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예전 장례식장 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사별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이들의 눈물과 특유의 향내음이 뒤섞인 음침한 분위기다. 반면 새로 짓는 장례식장은 기존 장례식장의 틀을 이미 벗어나 있다. 현대식 조형미가 곁들어진 요즘 장례식장은 미술관이나 카페처럼 밝고 아늑하기까지 하다.

이 같은 '요즘' 정서에 부응하는 호텔형 예산중앙장례식장이 지난 2월 22일 예산군 예산읍 마상길 11번지(전 한일프라자 옆)에 문을 열었다.

600여평의 대지 위에 3층으로 지어진 예산중앙장례식장은 분향실 4곳(일반실, 특실, VIP실)으로 구성됐다. 특히 천주교·불교·개신교 등의 종교예식을 거행할 수 있는 영결식장은 다른 장례식장에서는 보기 힘든 시설이다. 3000여평에 달하는 넓은 주차장 역시 강점이다.

예산중앙장례식장 조세제 대표(73)는 “예산엔 4곳의 장례식장이 있다. 모두 20년 이상 노후화 됐다. 장례식장이라고 꼭 어둡고 음침할 필요가 없다. 기존 장례식장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다”며 “유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자는 취지에서 현대식 호텔형 장례식장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 대표는 서천 사람이다.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 가정에서 농사일을 하며 성장했다. 그러다 19세 나이로 홍성군 광천 우시장에 있던 태화상회에 취직했다. 40~50대 이상의 연령 층에겐 익숙한 말표 고무신으로 알려진 신발가게다.

조 회장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장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조 대표는 “장항선 일대를 다니며 외판 일을 했다. 그 시절엔 마땅한 차가 없으니까 열차나 버스를 탔는데. 소매치기도 많이 당했다. 60년대 후반 70년대 초반 상황이다. 그곳에서 8년간 일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조 대표는 예산으로 옮겨 직접 신발가게를 열었는데, 조 대표의 47년 예산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장항선 일대를 다니며 장사를 해보니 가장 장사가 잘되는 곳이 예산이었습니다. 예산 읍내 시장에서 조양고무라는 이름으로 직접 소매상에서 일을 했죠. 당시 가장 많이 팔기로 유명했던 50년 경력의 동신고무의 매상을 한 달 만에 추월했습니다.”

조 대표만의 특별한 장사비법이 있었던 것일까?

“소비자와는 절대 논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대로 했어요. 처음엔 이득 보다는 사람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아무래도 시골이다보니 검정 고무신, 학생운동화, 장화, 슬리퍼 등의 신발이 많이 팔렸습니다. 나중에 장날 같은 경우 8명이 팔아도 모자랄 정도로 가게에 손님이 몰렸습니다.”

그러다 1978년, 조 대표는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 부동산 중개업이다. 자격증이 따로 있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말하는 ‘촉’으로 큰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조 대표는 스스로 “토지를 보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던 같다”고 한다. 그렇다고 촉으로만 모든 부동산 거래를 하진 않았다.

“나름 이론이 있습니다. 인구가 줄거나 정체된 곳의 땅은 사면 안 됩니다. 중앙을 공략해야하고 변두리 땅은 피해야 하죠. 사실 부동산업으로 돈도 좀 벌긴 했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 게 가장 큰 소득입니다.”

어쩌면 조 대표가 장례식장을 건립하기로 결심한 배경도 이때부터 만들어졌는지 모른다. 2017년 장례업에 뛰어들기 전 주위 사람들이 조 대표를 향해 “거의 모든 예산사람들을 알고 있다는 것은 큰 재산인데 (장례식장을 할 사람이) 회장님밖에 더 있겠느냐”는 설득에 마음이 기울면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결국 돈 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겼던 조 대표는 장례식장 일을 하게 됐다.

“예산에 뼈를 묻어야하는데. 예산에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동안 예산에서 알고 있던 분들을 하늘나라로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했고, 장례업의 경우 비수기가 없다는 측면도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예산중앙장례식장이 문을 열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조 대표는 “재작년엔 허가문제로, 작년엔 건축하는데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었는데 코로나19가 터졌다. 그럼에도 조 대표는 희망을 보고 있다.

“예산군의 315개 마을 이장들을 모시고 장례식장을 구경시켜드리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이게 어려워지면서, 일일이 마을 이장들을 찾아다니며 선물도 드리고 소개했습니다. 코로나도 언젠가는 지나갈 거라 믿습니다. 코로나 때문은 아닌데 우리는 빈소를 넓게 했어요. 염할 때 꽃침대를 사용하는데 유족들이 감동을 할 정도로 좋아합니다. 장사는 소비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면 되는 거거든요. 자신의 아버지가 이렇게 아름답게 영면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예산중앙장례식장은 전문장례식장으로는 예산군에서 최초다. “진짜 진보라면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발전한다”라는 조 대표의 말처럼 예산군의 새로운 장례문화를 선도할지 기대가 된다.

사진=황동환 기자
예산중앙장례식장 1층 로비, 기존 장례식장과는 달리 미술관이나 카페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진=황동환 기자
사진=황동환 기자
호텔형 장례식장이 대세인 요즘 예산중앙장례식장 역시 현대식 건물로 깔끔한 외관을 보이고 있다. 사진=황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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