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정, 가족의 힘… 그게 ‘대길(大吉)’이죠
사람의 정, 가족의 힘… 그게 ‘대길(大吉)’이죠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03.23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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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길엔지니어링 이학춘 대표이사
1995년 홍성서 사회생활 첫발… 2008년 사업 시작
롤러코스터 같던 26년…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죠”
㈜대길엔지니어링 이학춘 대표이사. 그는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전했다. 사진= 노진호 기자
㈜대길엔지니어링 이학춘 대표이사. 그는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고 전했다. 사진= 노진호 기자

“가장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올해 초 사무실을 옮기고 또 한 번의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있는 ㈜대길엔지니어링 이학춘 대표이사(50)의 말이다.

조양문 앞에 자리를 잡았던 ㈜대길엔지니어링은 올해 초 월산리(홍성군 홍성읍 충서로 1416 2층)로 이전했다. 2008년 문을 연 후 13년 만에 둥지를 옮긴 것이다.

이 대표는 “1995년 서해건설엔지니어링에 취직하며 홍성에 왔다. 그러다 2008년 독립해 대길엔지니어링을 시작한 것”이라며 “전 사무실이 홍주성 복원사업 부지에 포함됐다. 뭐 이런저런 이유로 이전을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에 꽤 많은 돈이 들었다. 그래서 대길산림엔지니어링과 힘을 합치게 됐다”며 “우리 위층에 있는 대길산림엔지니어링은 한 7~8년쯤 같이 일하다 독립한 동료가 하는 곳이다. 이름은 비슷해도 엄연히 별도 법인”이라고 부연했다.

이 대표는 보령 주산면 출신으로, 주산농고와 예산농업전문대학(현 공주대 산업과학대학)을 나왔다. 그는 “군 제대 후 안양에 있는 설계사무실에서 공부를 하다 홍성으로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길엔지니어링은 일반측량 업체로 △토목 관련 인허가 △도시관리계획 △공장 설립 △개발사업 컨설팅 등을 다룬다. 이곳의 업무는 특별한 성수기나 비수기는 없다고 한다. 취재를 위해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5명 정도의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으며, 이 대표는 별도의 사무실에서 상담 중이었다.

그는 “인허가 업무가 주라 특별히 계절을 타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래도 봄에는 조금 더 일이 있는 편이다.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하는 시기라 그런 듯싶다”고 전했다.

코로나19의 영향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 대표는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우리 업계도 일이 줄었다”며 “홍성에 일반측량업체 11곳이 있는데 다들 걱정”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는 홍성에 터를 잡은 지 26년이 됐지만, 이곳 ‘토박이’는 아니다. 홍성과 가까운 보령 출신이긴 해도 분명 ‘타지(他地)’는 타지였다. 그는 홍성과 친해지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했다. 지역발전협의회, 법사랑위원회 등의 활동을 했으며, 공간정보산업협회 일을 맡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홍성과 진짜 친해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궂은 일’을 겪으면서다. 이 대표는 “2008년 7월에 내 사업을 시작해 2009년 12월 초 법인을 설립했다. 그런데 같은 달 말에 경찰 압수수색을 받았다”며 “당시 공무원 108명이 수사를 받는 사건이 있었는데 거기에 연루됐다. 그때의 고초는 이듬해 여름까지 이어졌고, ‘뇌물공여의사표시’ 혐의 등으로 벌금 1000만원이 구형돼 700만원을 선고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억울하기도 하고, 누가 날 그 늪으로 밀어 넣었는지도 알지만 이제 와서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고생은 했지만 그 일로 홍성사람들과 더 가까워졌고, 사업의 토대가 든든해졌다. 전화위복이 된 것”이라고 더했다.

이 대표는 “홍성사람들은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타지 인이 동화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면서도 “한 번 품어주면 계속 가는 게 여기 사람들이다. 그런 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본인의 일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사업이 천직이라고도 여겼다. 그는 “우린 대가를 받고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분명 돈을 받았음에도 일이 잘 되면 고맙단 인사를 받는다. 가끔은 직접 캔 냉이 같은 것을 가져오는 분도 있다”며 “고객들이 만족하는 걸 보면 나도 기분이 좋다. 이런 사업 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사업을 하다보면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만나고, 가끔은 사기꾼도 있다”면서도 “그래도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좋은 관계가 이어지면 사업도 계속될 수 있다”고 보탰다.

홍성과 친해지려, 좋은 사람을 얻으려 왕성한 활동을 해 온 그이지만, 지금은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고 한다.

이 대표는 “2015년 뇌종양 수술을 받았고, 이후 항암치료만 13번이었다. 재작년 위암 초기 판정도 받았다. 아무래도 예전 같진 않다”며 “공간정보산업협회 일이나 재홍성보령향우회 정도만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홍성과 친해지려 열심히 다녔던 것인데 이제는 정말 친해진 것 같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 그들과 주고받은 정으로 이어온 ‘홍성살이’지만, 가장 큰 힘이 된 건 역시 가족이다. 이 대표는 가족으로 아내와 딸 둘이 있다.

끝으로 이학춘 대표는 “2000년 남의 얘기만 듣고 잘못된 선택을 했었다. 전세 값까지 날리고 빚이 거의 1억원이나 됐었다”며 “아내가 애들 키우며 어려웠을 텐데도 잘 버텨줬다”고 회상했다. 이어 “아내는 직장동료 소개로 만나 1998년 결혼했다. 지정식당에서 처음 만난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며 “내가 아팠을 때도 옆에서 지켜줬다. 늘 고마울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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