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동전망대 갤러리 짙은서 5월 1~15일 전시회
‘들길’은 마을에 들다 붉어지고/ 마을 골목은 들로 내려서자 푸르러졌다./ 바람은 넘실 천(千)이랑 만(萬)이랑/ 이랑 이랑 햇빛이 갈라지고/ 보리도 허리통이 부끄럽게 드러났다. (하략)
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김영랑 시인의 ‘오월’ 중 일부다. 바람과 햇빛, 바다 내음이 이랑 이랑거리는 천수만 한울마루 속동전망대 ‘갤러리 짙은(홍성군 서부면 남당항로 689)’에서 붉어지고 푸르러지는 봄의 아름다움을 품은 전시회가 열린다.
5월 1~15일 진행되는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문인화를 그리는 ‘들길’ 이윤희 작가(66)다. 이 작가는 “문인화 하면 신사임당이나 사군자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내 작품은 조금 다르다”며 “기존 문인화에 나만의 ‘색’을 더했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흰 화선지에 염색을 한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애용하고 있다.
이 작가와 문인화의 인연은 강산이 두 번 변한 것보다 더 오래 됐다. 하지만 그저 그 세월이 길다고 소중한 것은 아니다. 하늘로 떠난 어머니가 남겨준 선물이기에 더 값진 것이었다.
이 작가는 “오빠가 먼저 떠나고 안산에 살던 내가 어머니를 돌보게 됐다. 그런 이유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홍성에 오게 됐다”며 “당시 서예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도 해볼 수 없을까 해서 홍주문화회관을 찾았다가 문인화를 알게 됐다. 우병완 선생님께 배웠다. 참 고마운 분…”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어머니는 2년 전 하늘로 가셨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도 그 곁으로 갔다. 너무 버거웠던 슬픔을 이겨낼 수 있던 건 그림 덕분”이라며 “수덕사 선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할 때였는데 ‘이 길을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수덕사는 어머니와 동생을 모신 곳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지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다가도 심란하면 꽃 한 송이라도 그린다. 어머니 덕에 만난 그림은 이제 내 삶의 전부라 해도 좋다”고 더했다.
이 작가는 한 6년쯤 공을 들여 2015년 ‘초대작가’가 됐다. 그는 “초대작가가 됐다고 뭔가 특별해진 것은 아니지만, 붓질을 정말 열심히 오래 했다는 게 내 장점”이라며 “개인전은 이번이 여덟 번째쯤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요양병원 등에서 재능기부도 하고, 1년에 한두 번 전시회를 연다. 최근엔 짬을 내 (사)한국미술협회 홍성지부 회원들과 하상주차장과 전통시장을 꾸며주고 있다.
담백한 ‘먹빛’으로 삶을 그려가고 있는 이윤희 작가의 꿈은 ‘지금처럼, 이대로’다. 그는 “난 예전부터 시골길과 들꽃이 좋았다. 그래서 내 아호(雅號)도 ‘들길’”이라며 “지금처럼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이 길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 길을 가다보니 좋은 인연들도 생긴다. 이번 전시를 하는 갤러리 짙은도 우연히 만난 인연”이라며 “이들과 동행하며 좋은 일도 더 하고 싶다”고 전했다.
‘들길’ 이윤희 작가는 5월 3~28일 예산군청 전시관에서도 전시회를 연다. 월간 서예문화 2020년 6월호에 실린 이 작가에 대한 글 중 일부로 마침표를 찍겠다.
“‘들길’의 작품에서는 어색함이나 거부감이 전혀 풍기지 않았다. 작가가 그려낸 삶의 진솔한 풍경이 마치 내 이웃의 일상적 삶의 모습인양 정답고 친밀하게 다가왔다” - 문종선 서예문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