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로 산다는 것은?
[칼럼] 장애인의 비장애 형제로 산다는 것은?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08.02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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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옥 홍성군장애인가족지원센터 팀장

나에게는 네 살 어린 발달장애인 남동생이 있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한 번도 친구들에게 ‘내 동생은 장애인이야’라고 말해본 적이 없다. 그 말을 하는 동시에 나는 ‘바보 누나’로 불리기 때문이다. 내가 꼬맹이였던 80년대에는 주변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었다. 그 많은 장애인이 다 어디로 갔는지, 그 넓은 서울에서도 장애인은 내 동생뿐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발달장애인인 동생은 키와 몸집이 커서 어디서든지 눈에 잘 띄는 아이였다. 지적능력은 3살 아이 수준이라 음식만 보면 손으로 집어 먹었고, 장난감을 보면 무조건 뺏고, 주변 아이들을 때리기 일쑤였다. 그런 동생은 동네에서 바보로 불렸다.

부모님도, 주변 누구도 나에게 모범생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난 장애인 동생이라는 아주 큰 약점을 가진 꼬맹이였기에 바보 누나가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선생님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는 모범생이 됐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의 시선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모범생의 가면을 쓰고 장애인 동생이 있다는 걸 숨기며 외줄을 타는 곡예사처럼 지냈다.

친구들에게 장애인 동생을 숨기는 건 오래 가지 못했다. 이제는 놀림과 눈치에도 당당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했다.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기가 아니라 용기 있게 보이려고 기를 쓰고 살았던 것 같다. 그즈음 장애가 있는 동생은 우리 가족의 곁을 떠났다. 난 더 이상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고 모범생일 필요도 없었다. 이제는 누구의 놀림과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됐다. 그저 마음 한구석 동생을 미워했던 죄책감만이 가득했다.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 근무하다 보면 비장애 형제의 상담을 의뢰받거나 엄마의 손에 이끌려 프로그램에 참여하러 오는 아이들을 본다. 모범생 가면, 용기 가면, 반항 가면을 쓴 비장애 형제를 보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가면 뒤 아이들의 모습이 보여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울컥한다. 상담을 오는 부모들에게 이야기한다. 자녀에게 그 어떤 짐도 지우지 말아 달라고, 그들도 아직은 어린아이일 뿐이라고.

케이트 스트롬의 책 ‘장애아의 형제자매’에는 비장애 형제자매의 심리가 자세히 기술돼 있다.

장애와 관련해 부모나 사회의 관심사는 항상 장애아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장애아의 형제자매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아에게 관심과 보살핌이 집중되는 사이, 형제자매들은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어린 시절에 방치됐다는 소외감이나 우울, 장애에 대한 두려움,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부모나 가족, 사회가 관심을 두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함께 풀어가지 않는다면 형제자매들은 성인이 돼서까지 불안한 자아와 힘든 삶으로 고통 받을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현실에 대해 많은 형제자매와 대화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저자 자신이 뇌병변 장애가 있는 언니의 형제자매로서 겪어왔던 경험을 통해 한층 더 깊은 성찰과 설득력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그 해결의 실마리들까지 풀어내고 있다(출판사 서평).

장애인의 가족이라고 하면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를 떠올린다. 하지만 ‘비장애 형제’들도 복잡한 갈등을 느끼며, 자신을 장애인 형제자매의 최종적인 보호자로 여긴다는 점에서 장애 문제의 당사자이다.

2020년 중증장애인이 있는 기초생활 보장 수급자 가구의 부양의무가 폐지됐다. 하지만 그 범주에 들지 못하는 장애인 가족들은 ‘내가 죽고 나서 나의 장애 자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부모가 죽고 나서 나의 장애 형제는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을 하며 산다. 부모의 죽음 이후 비장애 형제는 남아있는 장애인 형제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다.

그들의 아픔을 다 이해해달라는 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 없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더불어 장애인에 대한, 그의 가족들에 대한 시선이 좀 더 아름다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가면을 쓰지 않아도 곡예사처럼 외줄 타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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