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통 통 통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칼럼] 통 통 통 가슴 뛰는 삶을 위하여!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0.06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승만 충남도의회 청년발전특별위원장(더불어민주당)

우리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부모와 자식간의 첫 만남이 이뤄지며 성장하면서 친구와 만나고, 학교선생님과 만나 학교생활을 하게 되고, 남자들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군대에서 전우들을 만나게 되어 또 다른 사회의 경험을 하는 과정을 겪는다.

직장에 들어가면 직장동료와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끊임없는 만남의 연장선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 인생지사일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차서 혼기가 되면 남녀 이성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며 중년을 거치면서 황혼을 맞이하고 노인이 돼 결국은 죽음이라는 이별의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언필칭 ‘피할 수 없는 길’을 만나는 것이다.

대중가수인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현재까지도 많이 불리고 있다. 필자는 독일 시인 칼로스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인생은 만남이고, 인생은 시간적, 공간적 존재’라는 내용이 있다. 삶에서 만남이라는 개념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만남, 막무가내의 만남이 아니라, 이는 참 만남을 가리키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없으므로 인간의 만남은 시간적, 공간적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영어속담에 ‘Man is mortal’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한번 태어나면 누구나 죽을 운명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며 인생은 결국에는 죽음과의 만남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말은 듣기도 불쾌하고 음산한 기분이 들어 썩 좋지 않는 말이고 우울한 말이기도 하다. 이는 사람들이 누구나 다 죽음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무섭고 두렵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밤에 공동묘지에 혼자 가서 있다고 상상을 해보라 얼마나 무섭고 으스스 한 일이겠는가?

공무원 재직시절을 회상하니 화장장 업무를 다루던 일이 생각이 난다. 홍성군청 사회복지과장 시절 사무실에 힘이 빠진 듯한 민원인(중년의 한 아저씨)이 찾아왔다. 이미 그 아저씨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금방이라도 찔끔찔끔 떨어질 것만 같았으나 인내하는 모습으로 한마디씩 또박 또박 내게 말을 건넸다.

다섯 살 먹은 아이가 농기구에 올라가서 놀다가 떨어져서 사망했는데 화장장에서 왜 화장을 안 해 주느냐고 언성을 높이며 하소연 하는 것이었다. 알아본 즉 장사법에 의하면 사람이 사망을 하면 24시간이 지나야 화장이나 매장을 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처리할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부모입장에서 피어 보지도 못하고 자라지도 못한 재롱둥이 어린아이가 사망했으니 얼마나 가슴 아파했겠는가! 그러니 빨리 가슴에서 지우고자 하는 부모의 심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식이 먼저 이승을 떠나 부모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이 얼마나 슬픈 일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앞으로는 세상에 이런 일은 없어야 할 텐데”하면서 민원인과 한참 동안 대화를 나누며 위로의 말을 전하고 필자는 “내일 아침에 화장을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처리 해드리겠노라”고 하며 안심시켜 드리고 위로의 말뿐 그 이상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마음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한 일이 있은 후에 알고 보니 그 아이의 부모는 장애인이지만 아이만은 똑똑하게 키우려고 가난과 어려운 생활 속에서 오로지 미래의 희망만을 꿈꾸며 소중하게 아이를 키워왔다는 말을 듣고 정말 마음이 왠지 울적해지며 필자도 눈물이 핑 돌았다.

홍성군에는 홍성추모공원의 명칭인 화장장과 납골당, 유택동산이 있다. 오늘도 돌아가신 영혼들을 모시려고 전국에서 유족들은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초상을 당한 유족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돌아가신 분에 대하여 유족들의 울음소리와 슬픔은 고인과 유족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부 중 한 사람이 저 세상에 먼저 갔을 때보다, 부모가 돌아갔을 때가 더 슬피 우는 것 같고, 이보다 더 슬피 우는 모습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어린 자녀들이 사망했을 때가 가장 슬피 우는 것 같다. 정말 자식의 장례에는 부모들이 화장로에 들어 갈 정도로 처절하게도 슬피 울어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도 했다.

화장을 하고 나면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잘 살았던 사람이나 못 살았던 사람이나, 고인에게 염을 아주 정성들여 잘하던 못 하던, 돈 많이 든 고급 관에 모셨던, 값싼 관으로 모셨던, 값 비싼 수의로 모셨던지, 값싼 수의로 모셨던지, 돌아가신 영혼을 화장로에서 화장을 하고 나면 누구나 똑같이 한줌의 유골로 변한다. 정말 만인은 평등한 것이다.

오늘은 수많은 영혼이 머무는 홍성추모공원의 화장장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태어나서 단 한번 사는 삶! 단 하나 뿐인 너와 나의 생명을 소중히 하고, 우리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고 상대에게 던지는 말 한 마디라도 좋은 말만 골라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며 항상 웃음으로 사랑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남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를 사랑하고, 가족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모두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친절을 베풀면서 현실에 주어진 바로 지금 이 순간을 통 통 통 가슴 뛰는 삶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게으름과 현실에 안주하는 나태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세계를 바라보며 넓은 가슴을 키우며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날까지, 살아 숨 쉬는 동안,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젊었을 때 부지런히 배우며, 열심히 노력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나이 들어서도 평생 공부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우리가 죽으면 종교에서는 윤회, 부활, 영생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하직하면 죽음 그 자체일 뿐이기 때문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