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의 말과 글… 부끄러움은 없을까요?
지금 우리의 말과 글… 부끄러움은 없을까요?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0.08 09: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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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로 되새겨보는 ‘한글날’
영화 ‘동주’ 스틸컷. 네이버 영화 캡처
영화 ‘동주’ 스틸컷. 네이버 영화 캡처

10월 9일은 제575돌 ‘한글날’이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訓民正音) 반포를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이날은 1926년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시초며,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됐다.

내포뉴스는 한글과 국어의 발전을 다짐하기 위해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된 이날을 맞아 그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한다.

575돌 한글날을 맞아 선택한 영화는 2016년 2월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다. 이 영화는 이름도, 언어도, 하물며 꿈까지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그 어둠의 시대를 평생 함께한 친구이자 라이벌인 윤동주와 송몽규에 대한 이야기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혀있는 동주의 모습으로 시작된 영화는 그래도 웃을 수 있던 북간도 시절로 돌아간다. 이 영화는 윤동주의 시와 함께 펼쳐진다. 영화 초반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로 시작하는 시 ‘흰 그림자’와 함께 몽규는 중국으로 떠나고,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로 향하는 여정에는 ‘새로운 길’이 배경이 된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동주의 마음이 전해진다.

앞서 말했듯 영화 속 동주와 몽규는 파트너이자 라이벌이다. 연희전문 시절의 말다툼에서 둘의 생각을 잘 볼 수 있다. 동주는 “문학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하고, 몽규는 “용기가 없어 문학 속으로 숨는 것”이라고 한다.

어두운 시대를 몸소 겪어내던 동주와 몽규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일본행을 결심한다. ‘히라시마 도쥬’로 창씨개명까지 하고 일본으로 향하는 동주의 마음이 ‘아우의 인상화’란 시로 대변된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모든 것에 가로막혀 일본으로 향하는 동주와 몽규의 모습도 그리고 그 시절도 슬픈 그림이었을 것이다.

일본 유학 시절에도 어려움은 계속된다. 우리의 말과 글을 쓸 수 없던 시절이었기에, 어쩌면 그 어려움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육첩방, 남의 나라에 머물던 동주는 다카마쓰 교수에게 말한다. 시를 쓰지만 시인은 아니라고… 시를 쓰지만 시인이 될 수 없던 이유는 ‘조선어’로 지은 시였기 때문이다. 조선어로 쓴 그의 시는 품을 수는 있어도 읊을 수는 없었다.

동주와 몽규는 교토에서 다시 만난다. 몽규는 계속해 혁명을 그려가고, 동주는 조용히 시를 써 나간다. 몽규의 혁명과 동주의 시는 엇갈리는 듯 보이지만, 사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즈음 영화에는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 스며든다. 이 시 속에 등장하는 어쩐지 미워지는 사나이, 돌아가다 생각하니 가엾어진 사나이, 추억처럼 있는 그가 부끄러움을 안고 있는 동주 자신이었는지 친구이자 동경의 대상이던 몽규를 말하는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영화 ‘동주’ 포스터. 네이버 영화 캡처
영화 ‘동주’ 포스터. 네이버 영화 캡처

영화의 후반부, 동주의 시와 몽규의 혁명은 점차 그 끝으로 향한다. 그리고 후쿠오카 형무소, 일본 고등형사와의 마지막 설전, 행동하던 몽규는 우리의 말로 울부짖으며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남긴다. 시를 쓰던 동주는 “이런 세상에서 시인이 되길 원했다는 게 부끄럽다”며 조서(調書)를 찢는 행동으로 뜻을 전한다.

동주는 몽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 첫머리에 나왔어야 할 ‘서시’는 동주의 마지막과 어우러진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연희전문 시절 만난 이여진의 말처럼 동주의 시는 참 쓸쓸하다.

‘동주’는 흑백영화다. 영화를 보기 전엔 옛 시절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 감독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우리의 말과 글을 잃어버린 그 시절은 푸른 꿈도 장밋빛 미래도 그릴 수 없었기에 ‘흑백’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됐다.

추억, 사랑, 동경, 시, 강아지, 토끼 그리고 어머니… 윤동주가 시 ‘별 헤는 밤’에 적은 아름다운 말들이다. 우리의 말과 글을 되찾은 지 한참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소중함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것을 아름답게 쓰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영화 ‘동주’가 그 생각의 길에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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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GNHS 2021-10-12 16:14:25
제가 정말 좋아했던 영화에요. 이렇게 다시 보게되니 정말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