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농사 짓지 말라는 농민
[칼럼] 농사 짓지 말라는 농민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0.18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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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농본 정책팀장

우연한 기회로 H지역 농민을 만나게 됐다. 농민 A는 H지역에서 나고 자라면서 오랜 세월 농사를 지어왔다. 농민 B는 같은 지역에서 나고 자랐지만,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6년 전 귀향을 한 경우였다. 두 농민 모두 농사의 기반인 땅을 확보했고, 안정적 판로인 지역 로컬매장에 농산물을 출하하고 있었다. 나는 농사 준비 일환으로 그들에게 어떻게 농사짓는지, 무엇이 어려운지 물었다.

두 농민은 내게 농사를 짓지 말라고 조언했다. A농민은 “젊은 사람이 농사짓는다고 하면 반가워서 권하면 좋겠지만, 솔직히 그렇게 못하겠다”고 이야기했다. B농민은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시작할 때는 즐거웠는데, 지금은 죽을 맛이다. 농사 지으면 안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일이 고되고 그만큼 벌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투입비용과 인건비 상승을 지목했다. 무엇보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 농산물을 내고 싶어도 수확 자체가 어렵다고도 했다. 차라리 인력회사나, 비공식적인 인력반장을 하는 게 낫다고 충고했다.

익히 알려졌듯이 농촌 농업 노동자는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농민들이 버거워하는 노무비는 1인당 10만~15만원이다. 코로나19로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 보니 최근에는 일할 사람을 찾는 게 농사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됐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가 상승해 그 비용을 감당하면서 수확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농가들도 속속 생겨난다. 거기에 매번 다른 노동자가 오는 경우가 많아 새로 가르치는 것도 버겁다고 한다.

농가의 노무비 부담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0년 동안 평균 농업총소득은 2011년 약 2650만원에서 2020년 약 3600만원으로 연평균 3% 증가했다. 그 사이 농업경영비는 2011년 약 1770만원에서 2020년 약 2420만원으로 연평균 4% 증가해 농업소득은 2011년 약 880만원에서 2020년 약 1180만원으로 3% 증가에 그쳤다(같은 기간 최저시급에 따른 연봉은 월 209시간 기준으로 약 1100만원에서 약 2200만원으로 연평균 8% 상승했다). 농업경영비 중 노무비가 평균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은 4.8%에서 2020년 7.8%로 2.9% 증가했다.

영농형태별로 살펴보면, 논벼를 재배하는 경우 2011년 노무비 비중은 1.3%에서 2020년 2.5%로 증가했다. 그런데 일반밭작물의 경우 노무비 비중이 2011년 5.9%에서 2020년 12.8%로 증가했다. 노무비의 연평균 증가율이 무려 13%에 이른다. 일손이 많이 필요할수록 그 충격이 큰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 밥상 물가 폭탄이라고 언론에서 떠들어대고 정부는 수입 등 공급량을 늘려 물가를 안정화하기 바쁘다. 농업 현장에서는 농업경영비가 꾸준히 상승하고, 농업소득 증가도 정체돼 있다. 농민들은 수입(매출)과 비용 측면에서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가 부족해지기 전에는 상대적으로 ‘값싼’ 외국인 노동자에게 강도 높게 일을 시켜, 투입 대비 산출을 늘리고자 했고, 그 탓에 외국인 노동자들은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 살아야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미등록 외국인의 경우는 법적인 문제로 더 취약한 위치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가 농산물을 구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이나 대형마트에는 ‘선별된’ 신선하고 보기 좋은 농산물이 넘친다. 작은 가격 변동에 야금야금 주머니가 헐거워지는 것 같고 계절마다 ‘금값이 되는 농산물’이 야속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농산물은 실제 금값도 아니며, 달리 보면 농민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흙먼지 속에서 캐낸 값진 금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인식의 격차 그리고 생산자와 노동자에게 쌓이는 고통으로 농사짓는 일은 갈수록 어려운 일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농민들도 농사를 권하지 않는 때가 됐다. 농민이 농사를 짓지 말라고 하는 세상,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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