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징어 게임 속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칼럼] 오징어 게임 속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0.2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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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사)한국음악협회 예산군지부장(아트&뮤직 큐레이터)

기나 긴 코로나는 명절 연휴의 루틴(routine)마저 변화시켰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잉여시간을 문화로 달래볼 요량으로 OTT(Over the top) 업계에 몸담고 있는 딸의 추천으로 ‘오징어 게임’을 시청했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오징어 게임’은 훌륭한 무대 연출, 능숙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훌륭한 음악으로 구성돼 있었다. 입시 때에도 밤 10시 넘어서까지 공부해 본 적이 없던 내가 ‘오징어 게임’을 보며 밤을 꼴딱 새웠다.

1970~1980년 마을 공터나 골목에서 친구들과 즐기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았던 놀이가 있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기, 말타기 등도 있었는데 이 드라마에서 등장한 것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놀이’, ‘딱지치기’ 등이었다.

친구들과 재미로 했던 놀이들이 목숨을 담보로 한 잔혹한 놀이로 재구성된 것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연령, 성별, 국적이 다른 사람들의 내면 심리를 묘사한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니 나 자신이 참가자가 되는 감정이입을 경험했다. 한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은 상대적 논란이 따르겠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추억의 놀이와 공간을 재해석한 극이 한국적 감성과 상상력 즉 문화에 대한 공경의 대상이 돼 전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속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에 주목한 독자들은 얼마나 될까? 살육이 난무하는 작품 속에는 하이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클래식 작품부터 3·3·7 박수에서 비롯된 리듬으로 한국적 음색을 강렬한 리코더를 통해 표현한 정재일 음악감독의 곡까지. 드라마 속 음악의 역할과 가치를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 속 배경음악인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Original Sound Track·OST)의 궁극적 목적은 극의 전체적 감정, 극의 반전, 주인공의 내면 등을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즉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 플롯 간 전환을 위해 음악이 효과도구로 사용된다.

오징어 게임 속에는 참가자들이 게임을 하러 이동할 때마다 들려오는 음악이 있다.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왈츠 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쾌활한 남성 합창곡으로 작곡됐다. 그러나 작곡가는 초연에 만족하지 못했고. 원곡을 관현악 작품으로 편곡한 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연주해 큰 성공을 거뒀으며, 지금은 꿈과 희망을 갖고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빈 신년음악회의 전통적 앙코르곡이 됐다. 이렇듯 왈츠는 19세기 유럽 사교계를 완전히 지배하다시피 한 대중적이고 유명한 춤곡이다. 좋은 날 기쁘게 들어야하는 이 춤곡이 잔인한 게임을 위해 이동할 때 들려오다니!

‘오징어 게임’은 생사를 가르는 잔혹한 게임이지만, 게임 시작 전과 후에 그들이 듣는 음악은 왈츠였다. 희망을 간절히 갈구했던 참가자들의 마음을 표현하려했던 의도가 아니었을까? 게임 참가자들에게는 이 곡이 죽음의 공포를 떨쳐낼 수 있는 최면제고 극단의 상황을 순치시키는 마취제였으며, 승리와 생존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클래식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뇌파의 극점을 하향시킨다는 보편적인 상식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오징어 게임 속에 존재했던 가장 순수한 이념인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현실로 이뤄질 수 있을까? 지독한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음에도 인색한 평가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예술인에게도 진정 가치 있는 결과물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소수의 권력층이 만들어놓은 불평등한 게임의 부조리를 우리의 다수결로 무너뜨리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 전쟁에 참패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전하려고 했던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의도가 오징어 게임 속 참가자들에게 전이되는 것처럼 아름답고 전형적인 왈츠 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 우리 모두에게도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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