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맛과 멋이 담긴 전통시장
[기고] 맛과 멋이 담긴 전통시장
  • 노진호 기자
  • 승인 2021.11.08 15: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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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만 충남도의회 청년발전특별위원장(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상인들도 격려하고 시장구경에 장도 볼 겸 전통시장과 상설시장을 이리저리 들러 봤다. 늦가을 장이라 그런지 장터에는 배추와 무, 대파 등 채소와, 포도, 복숭아, 사과, 배 등 과일과 이른 서리태 콩, 팥 등 잡곡이 가득해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듯하다.

먹는 얘기를 생각하니 어릴 적 우시장 근처 빵집에서 10원이면 열개인가 주던 찐빵을 군침 흘리며 게걸스레 먹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흥정하고 사고파는 모습은 필자의 어릴 적 시절과는 사뭇 다르지만 전통시장은 푸근한 고향의 냄새와 인정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서해바다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전어와 대하가 팔딱거리는 생선전은 언제나 비릿한 냄새가 가득하고 생선을 담았던 나무상자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며 집안의 어른들은 반찬으로 따지면 그래도 새우젓 등 비릿한 젓갈이나 갯것이 있어야 진지를 드셨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전통시장은 농촌에서 물건을 조금씩 갖고 팔러 온 할머니, 읍내 소재지에서 물건을 사러 온 주부들과 이런저런 손님들로 하여금 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 사는 모습이 묻어 나 정겹고 맛있는 음식냄새로 가득해 오늘따라 가을하늘이 푸르고 구름은 드높다.

필자가 어릴 적 홍성전통시장의 우시장 근처는 염소와 개, 닭을 사고팔던 곳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우시장은 지금의 마늘전 자리였는데 여기저기 박혀있는 쇠말뚝에 매어져 있는 소들은 음매 음매하고 소리를 지르며 어디로 팔려가나 하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눈물 흘리며 울음 짓던 측은한 모습은 필자의 동심에 젖기도 했다.

홍성전통시장은 지금도 시장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활기가 있는데 홍성상설시장은 찾아오는 손님도 거의 없고 저녁 5~6시경이면 사람의 발길이 끊길 정도로 시장기능을 거의 상실했다고 상인들은 말한다. 그래서 필자가 군수 지난 번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텐 플러스 공약으로 현재 시장기능이 매우 상실된 홍성상설시장은 홍성전통시장과 통합해 홍성전통시장을 더욱 활성화하고 시장기능이 쇠퇴한 홍성상설시장은 축산군에 걸 맞는 한우 한돈 먹거리타운으로 조성해 군청이전과 더불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원도심 공동화 방지와 지역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마 60~70년대 당시에는 필자의 집안 형편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쌀이 모자라고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 5일 장날에는 장터에 보리 한줌을 가지고 가서 튀겨서 광밥 또는 튀밥이라 불리던 것을 과자 대용으로 주린 배를 채우느라 즐겨 먹었는데 튀밥은 먹어도 먹어도 그렇게 배는 부르지 않았다. 풀무로 바람을 부쳐 장작 등의 불을 때서 일명 뻥튀기라는 튀밥기를 돌리면 튀밥이 다 되어 개봉될 때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꽝하는 소리와 함께 한 됫박의 곡식이 열배 이상으로 부풀려 튀겨진다.

이때 초등학교 시절 정도의 필자나 같은 또래의 아이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튀밥이 튀어 나오면 뚫어진 자루 사이로 여기 저기 땅에 떨어진 튀밥을 주워 먹으려고 새까만 손으로 분주히 움직이던 그 시절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루는 아버지를 따라 장에 갔었던 일도 있었는데 농기구인 곡괭이와 쇠스랑을 사기 위해 5일장 내에 있는 대장간을 구경했다. 대장간에서는 풀무로 부쳐 빨간 불덩이를 일궈 불을 세게 하여 쇠를 녹이고, 녹인 쇠를 놓고서는 어른들은 망치로 번갈아 가면서 두들겨 패서 원하는 농기구도 만들기도 했는데 단단한 쇠를 녹이는 것이 참 신기했다.

또 나무를 자르는 톱을 잘 들게 하기 위해 장터에 앉아있는 톱 장수에게 톱을 쇠톱으로 예리하게 갈기도 했는데 낫은 잘 들게 하기 위해 낫을 간다고 했지만 톱은 톱을 간다고 하지 않고 톱을 ‘실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집에서 먹을 쌀을 구입하는 것을 쌀 팔러 간다고 했고 쌀을 내다 파는 것을 쌀을 돈 산다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또 우스갯소리 인지는 몰라도 먹고 살기가 어려웠던 그 시절에는 5일장을 맞아 한여름의 보신을 위한 영양탕을 만들고자 분량을 더 많이 내기 위해 개를 도축(잡을 때)시 퉁퉁 부을 때까지 사정없이 팬다고 해 누구네 개 잡는다는 농담이 전해오기도 했다.

어쨌든 그래도 어르신들은 땀을 많이 흘리는 한여름에는 개장국을 먹어야 여름을 난다고 했으니 먹기 살기가 어려웠던 그 시절에 적절했던 말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구수한 장국밥 한 사발과 막걸리에 고된 삶을 달래고 우시장 주변과 쌀전, 푸주간의 주변에는 국밥집이 여기 저기 많이 있었는데 국밥집에 가면 소머리 국밥, 돼지 선지국, 장국밥, 장터국수 등이 그렇게 맛이 있었다. 연탄이나 장작으로 끓인 솥에서 모락모락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더불어 먹음직스런 구수한 음식냄새는 지나가는 손님들과 장꾼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기도 했다.

또 어른들은 선지에 곁들여 구수한 막걸리를 거나하게 드시며 젓가락으로 상다리 장단 맞춰 두드리며 보릿고개 힘든 농사와 고된 삶을 달래며 세월 가는 아쉬움을 노래하셨고 그 당시 장국밥집을 지날 때 필자를 비롯해 어린 아이들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생때를 쓰기도 해 결국은 어른들의 가는 길을 멈추게 했으며, 국밥집 채반 바구니에 둥그렇게 말아 놓은 맛좋은 국수가 얼마나 맛이 있던지 지금도 입가에 군침 흘리며 눈 깜짝 할 사이에 먹던 시절이 너무나 그립다.

이제는 덧없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어머니들은 이제 경로당 오가는 할머니 신세가 됐고 나도 어느 새 중년의 세월 너머로 유수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그 잘 나가던 동네의 구멍가게도 어느 때부터 인가 점차 사라지고, 그 다음에는 슈퍼가 생겨 번창하다가 이제는 슈퍼가 쇠퇴하고, 상설시장이 생겨나고 쇠퇴하고, 최근에는 대형마트가 생겨난 뒤로는 아무래도 5일 시장은 쇠퇴를 가져온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시골의 농가에서 할머니와 아낙네들이 다 팔아도 몇 만원도 안 될 것 같은 잡곡이나 채소 등을 가지고 와서 시장 안에서 하루 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이것 좀 사유”를 연호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정겹게 손짓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

지금은 계량단위가 통일이 돼서 곡식을 사고 팔 때 전자식 계량기로 물건을 달아서 주지만 옛날처럼 됫박과 말이라는 계량기구로 팔던 모습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저울질로 거래하는 장터가 아닌 눈대중으로 주고받던 넉넉한 인심이 있던 곳이 5일장이다.

그 당시 쌀 한 됫박 살려고 해도 쌀을 됫박에 수북이 고봉으로 주고 인심 좋게 한줌 더 올려주던 모습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할머니, 아주머니 들은 인심 좋게 나물 몇 개라도 더 주려고 하는 모습이 가득해 아직도 5일 시장은 푸근한 인심과 정겨운 모습이 가득하다

이렇게 늦가을! 5일시장의 장터에는 풍성한 오곡백과가 쏟아져 나오고 장터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5일 시장을 바라보는 마음은 너나 나나 풍성하다. 5일 시장은 정말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채소 한 다발, 생선 몇 마리를 사는데 한줌 더 담아 주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표정이 밝고 순수하고 순박해 보인다. 물건을 사는 사람도 할머니의 넉넉한 마음을 비닐주머니에 담고 집으로 간다. 이처럼 향수 어린 흙냄새, 바닷고기의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풍경으로 거스름돈과 물건값을 주고받아 쥐고 할머니는 몸빼바지 앞치마 호주머니에 넣는다.

아마 그 돈은 수 없는 사람들의 손과 주머니를 거쳐 온 돈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돈은 일터에서 하루하루 모진 설움 이겨내며 몇 천원, 몇 만원의 수입인 사람의 것일 수도 있고 한 자리에서 몇 백 만원을 쉽게 쓸 수 있는 사람의 것일 수도 있다.

어렵사리 자린고비의 돈은 장롱 깊이 감춰져 햇빛을 못 보기도 하지만 고생해 본 사람의 돈은 때로는 어렵게 사는 소년소녀 가장이나 거동이 불편한 홀몸어르신에게 익명으로 도와주는 생활비가 되기도 하고 부동산 투기로 졸부가 되거나 뇌물로 받은 불로 소득은 고통과 패가망신을 당하기도 한다는 소식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기도 한다.

어쨌든 돈이라는 것이 우리 삶, 사람과 필연의 동반자로 세상을 함께하며 좋은 일, 궂은 일을 두루 섭렵하는 재주가 있으니 돈은 요물인 것만 분명하다. 돈이 많으면 때로는 신분도 높아지고 종 부린다는 말처럼 부자로도 만들고 거지로도 만드는 게 돈이라지만

어떤 사람은 돈이 많을 때는 돈을 관리하느라 많은 걱정 속에서 살았는데, 돈 없는 지금이 오히려 걱정이 덜하고 행복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그러나 자녀교육과 노후를 위하여 돈을 멀리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우리가 되새기며 어려운 이 시기에 근검절약하며 살아야 할 대목이 아닌가 생각돼 진다.

홍성에는 홍성과 광천 갈산에 오일장이 선다. 지난 60~70년대 까지만 해도 구항장, 결성장, 금마장, 반계장이 섰다고 하나 80년대에 사실상 사라졌다고 한다. 5일장에는 신토불이의 농, 특산물, 쇠고기, 돼지고기 등 축산물, 잡화나 옷들도 있고, 농기구, 철물 등 다양한 제품을 거의 없는 게 없을 정도다. 그리고 천수만 서해바다 그물에서 갓 걷어 온 어패류가 있고, 자식들의 부양이나 받을 고령의 나이에 생계비 마련 또는 단 돈 몇 만원, 몇 천원의 용돈을 스스로 마련하려고 감자와 마늘, 채소 등을 놓고 시장 안에서 하루 종일 전을 펴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도 볼 수 있다.

사람은 태어날 적에 주먹 쥐고 이 세상에 왔다가 갈 때는 손바닥 펴고 간다는 말처럼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가는 것이므로 지금 내게 있는 돈은 잠시 머무는 것일 뿐 어찌 내 것이겠는가!

지금은 국내외에 걸쳐서 코로나 팬데믹 현상에 의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5일장의 풍경 속에는 고된 삶의 푸념들을 들먹이게 하는 애달픈 삶의 현장으로서 옛날의 정겨웠던 그 모습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5일장의 풍경을 보노라면 5일장은 그래도 따뜻함이 배어 나오고 서민들의 애환과 사람 사는 맛과 멋을 느끼게 하는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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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승 2021-11-08 15:31:25
어렸을 적 시장의 모습이 떠오르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