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째 이장… “어려운 일들, 열심히 했죠”
54년째 이장… “어려운 일들, 열심히 했죠”
  • 이번영 시민기자
  • 승인 2022.01.0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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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동 홍성군 홍동면 상하금 이장
유철동 이장은 54년 동안 행정자치부장관을 비롯해 수많은 표창장, 감사장, 공로패 등을 받았다.
유철동 이장은 54년 동안 행정자치부장관을 비롯해 수많은 표창장, 감사장, 공로패 등을 받았다.

마을 주민 농사 지원, 대소사 기획 진행, 재해 예방 등 각종 공무를 집행하는 최일선 행정책임자, 주민의사를 행정기관에 전달하고 민원을 대행하는 중간자, 서로 하려고 하는가 하면 서로 미루기도 하는 ‘이장’을 54년째 맡고 있는 홍성군 홍동면 금당리 상하금 유철동 이장(82).

“스물여덟이던 1969년 1월부터 이장을 맡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던 1960~70년대 다수확 품종 통일벼를 정부에서 반 강제로 심게 했죠. 벼 포기 많이 심으라고 면 직원들이 못줄 잡아주며 감시했어요. 함께 풀을 깎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마을별 경쟁을 했죠. 면사무소, 군청 심사에서 1등상 받으려고 애썼죠. 초가 지붕개량, 비만 오면 장화 없이 다니기 어려운 마을안길 포장 등 어려운 일들 열심히 했습니다.”

당시 이장에게 가장 어려웠던 건 세금 걷는 일이었다고 한다. 재산세, 수세, 산림조합비, 적십자회비 등 각종 부과금을 이장이 거둬 면사무소에 냈다. 다른 마을보다 뒤지지 않으려고 주민들에게 독려하는 일이 어려웠다. 세금을 받아 그날 내지 못하고 급한데 써 버리고 뒤에 목돈 내느라 빚을 져 거덜 나는 이장들도 흔했다는 것.

배당받은 추곡 수매량을 채우기 위해 두 집 벼를 모아 한 가마 만들기도 했다. 비료 배급 후 빈 포대 가져가려고 싸우는 등 가난의 서글픈 추억들을 떠올렸다.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대신해주고, 초상이 나면 부고장 봉투를 작성해 배달하는 것 등 안 하는 일이 없었다. 출장 나온 공무원이 이장네 집에서 화투나 치다 점심때가 되면 닭 잡아 대접해 주는 일도 관행이었다.

이제 세상이 변했다. 모든 세금 고지서는 개인별 우편으로 배달되며 상여를 메고 산소 파는 장례는 영구차와 포크레인이 한다.

이제 사람 줄어드는 게 문제다. 상하금은 1970년대 중반까지 60여호에 400명 가까이 살았으나 지금은 35호에 100명도 안 된다. 환갑 아래는 두 사람 뿐이며 70대가 청년 취급받고 혼자 사는 집이 태반이다. 전에는 이사 가거나 들어오는 사람이 이장 도장을 받아 전출입신고를 했으나 지금은 면사무소에 신고서 한 장 써내면 된다. 이장은 자기 마을에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파악이 어렵다. 이장 수당은 올라 한 달에 30만원 나오지만 이장이기 때문에 경조사비는 더 많이 든다.

그는 어떻게 50년 넘게 이장을 맡고 있을까? 우선 상하금은 창원유씨 집성촌으로 주민의 3분의 2가 일가다. 문중에서 신임을 받고 있으며 자기보다 마을 일을 우선하는 삶의 태도가 붙박이 이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다. 그가 역점을 둔 분야는 마을안길 확포장과 하천길 정비사업이었다. 홍동면 금당초등학교 뒷 마을로 마차가 겨우 다니던 길을 전체 4㎞정도 확포장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면사무소와 군청을 찾아가는 건 물론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황영란 도의원 같은 이들에게도 무조건 전화를 걸어 포장비를 따왔다.

향토예비군 금당리 소대장, 홍동면 상록회장, 새마을지도자회장, 바르게살기회장, 농협 이사 등 안 해본 공직이 없다. 특히 금당보건진료소 운영위원장을 오래 맡으며 주민건강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

유철동 이장은 1942년 홍동의 명산인 초롱산 밑 상하금에서 태어나 논 열다섯 마지기 농사 지으며 다른 지역에 나가본 적 없이 살고 있다. 마지막까지 고향에서 산다는 생각이다. 그가 올라다니며 노닐던 초롱산 어린 나무들은 아름드리 나무가 됐다.

“배움이 부족하지만 맡은 일 열심히 하며 무시당하지 않고 사는 것만도 보람으로 생각한다”는 유철동 이장. 금당초 1회 동기생인 김용해 충효예실천운동본부 총재와 연락하며 가깝게 지낸다. 출향인들이 타계하면 찾아오는 고향에서 누가 오던 장사지낼 준비를 해놓고 고향산천과 포근한 인심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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