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교도소 교회 건립, “재소자들의 부모 될 것”
‘뉴스타트’ 운영 … ‘출소자의 사회 안착 돕는 지원 활동’
사람들이 접근하기 꺼려하는 교소도에서 평생 교도관으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 후 곧바로 목사 안수를 받고 재소자·출소자 및 이들의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목회자가 있다.
홍성교도소 교회 김봉래 목사(75)가 그 주인공이다. 전남 함평이 고향인 김 목사는 1975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이후 제주교도소에서 10년을 근무했다. 2년 후인 1977년 김 목사는 제주도에서 평생 반려자를 만났다. 이후 펼쳐질 김 목사의 삶의 행로를 쫓아가다보면 부인과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인의 영향으로 김 목사가 개신교에 귀의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 목사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전도사로 활동했으며, 7년간의 신학대학 과정을 거쳐 목사가 됐다.
김 목사가 늦은 나이임에도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배경이 그 답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목사 안수를 받고 싶어하는 재소자들을 보면서 안따까웠다”면서 “그러면 내가 목사가 돼 그들의 마지막 작은 소원이라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목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교도관으로서 재소자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김 목사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이후 사회에 온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품의 사람이었다.
“어려운 이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자 했다”라는 김 목사의 말은 지금도 그렇지만 30년간 교도관으로 종사하면서 견지했던 그의 일관된 삶의 태도이자 가치였다. 전도사로서 또 목사로서의 사명감도 있었겠지만, 그 오랜 시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실천했던 재소자들과 출소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한 봉사는 결코 사명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김 목사는 “재소자들의 부모가 되어 주자”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다짐이 변함없이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을 “신앙의 힘”으로 돌렸다.
지난 2005년 정년퇴직과 함께 교도소에서의 공적 업무는 끝났지만, 지금까지 교도소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재소자들과 출소자들을 향한 그의 인도적인 사랑의 실천은 현재 진행형이다. 또 교도관에서 목사로 신분이 바뀌면서 그는 더 넒은 품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안아줄 큰 계획을 준비 중이다.
김 목사는 홍성교도소 재직시절 건립한 ‘홍성교도소 교회’를 담당하고 있다. 교도소 내 특정 종교시설은 타종교와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지금도 원칙적으로 불허돼 있다. 지금은 폐지된 홍성교도소 내 경비교도대원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한 명분으로 법무부 장관의 특별허가를 받을 수 있었던 운도 있었지만, 전도사 시절 전국을 누비며 교회 건립 후원활동을 펼쳤던 김 목사의 비상한 노력이 있었기에 홍성교도소는 국내 53개 교도소 중 유일하게 개신교 교회가 존재하는 교도소가 됐다.
‘홍성교도소 교회’를 기반으로 김 목사는 교도소 직원들과 가족들 및 재소자의 신앙생활을 돕는 한편, 재소자의 사회복귀 지원, 음식‧물품 지원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교도소 담을 넘어 만나는 사회의 높은 장벽에 좌절하고 재범의 유혹에 시달리는 출소자들을 돕기 위해 김 목사는 6년 전 봉사단체 ‘뉴스타트’를 설립했다. “내가 너희들의 발과 입이 돼, 죽어서도 홍성교도소에 묻히겠다”는 김 목사의 결연한 각오에서 출발한 단체가 ‘뉴스타트’이다.
‘세상이 못하면 우리가 해야합니다’라는 ‘뉴스타트’의 슬로건이 인상적이다. 출소를 기다리는 교도소 담장 안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김 목사와 그가 운영하는 봉사단체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끝으로 김 목사의 용기 있는 실천과 뜻에 공감하는 분들을 위해 연락처와 후원 계좌를 전한다.
☎010-3414-0239(김봉래 목사)/[국민: 737301-01-3838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