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5)
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5)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7.15 1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청 직원들과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조 실장님,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은데요.”

윤은실 국장이었다. 그녀는 매우 절제하는 태도여서 음식을 별로 먹지 않았다. 젓가락질을 몇 번 하다가 말고 일찍 입술을 닦은 후 구청 직원들과 쉴 새 없이 깔깔거리며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조 실장이 새우튀김을 입에 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슨 제안인데…?”

“푸른용뉴스에 지원하기로 한 구정 홍보비 말예요. 어차피 올해 예산에 잡혀 있을 텐데 그것을 연말까지 묵혀뒀다가 불용 처리하지 말고 여기 참석한 3개 신문사들에게 공평하게 나눠 지원해 주시면 안 될까요?”

푸른용뉴스 몫의 보조금을 구청에 협조 잘 하는 우리들끼리 나눠먹게 해달라는 제의가 그럴듯하게 들렸으나 과연 맞장구를 치는 것이 옳은지 혼란이 왔다. 조 실장을 비롯한 홍보실 직원들도 당황한 기색으로 머리를 갸웃거렸다. 노진걸 사장이 한 술 더 떴다.

“조 실장, 이미 책정된 홍보비 예산 아껴서 뭐하나? 푸른용뉴스에 할당된 부수를 우리한테 나눠주면 우리가 그만큼 신문을 더 보내서 구정 홍보를 더 열심히 할 것 아닌가.”

그리고는 박하식 부장과 나를 돌아보며 동의를 구했다.

“어이, 자네들도 좋잖아. 이제 구청에서 퇴출된 푸른용뉴스의 보조금을 나머지 3개 신문사들에게 나눠서 더 보태주면 여러분들 회사의 경영에 훨씬 도움이 될 것 아닌가?”

박 부장과 나는 서로 멀뚱히 쳐다보며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조 실장이 입을 열었다.

“노 사장님, 그것은 우리 맘대로 못 합니다. 구의회에서 행정사무감사 때 지적을 받을 수도 있고, 푸른용뉴스를 두둔하고 있는 구의원도 몇 분 계시기 때문에 문제를 삼으면 정말 난처해집니다. 그래서 당분간 불용처리 상태로 나뒀다가 나중에 상황을 봐가면서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노 사장님 제안대로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드려야죠.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잘 알겠소. 조 실장, 아무튼 홍보비 예산을 더 늘려서 우리 3개 신문사한테는 팍팍 지원 좀 해 주세요.”

결국 노 사장은 한 발 물러서며 소주를 목구멍 속으로 털어 넣었다.

“알겠습니다, 노 사장님. 청룡신문, 용머리신문, 새청룡신문, 이렇게 3개 신문은 앞으로 잘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청룡구를 위해 적극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식사를 마치고 모두 일어설 때는 조태식 실장이 기자들에게 조그만 봉투를 하나씩 돌렸다. 고급 봉투에 인쇄된 글씨와 로고를 얼핏 보니 백화점 상품권 같았다.

“요새 김영란법 때문에 상당히 신경 쓰이는데 밖에 나가서 우리한테 받았다는 말 절대 하지 마십시오.”

조 실장이 목소리를 낮춰 특별히 주의를 줬다. 나는 카메라 가방에 그것을 얼른 챙겨 넣었다.

“인터뷰 자료는 광고시안과 함께 이메일로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광고는 다음호 1면 하단에 꼭 실어 주세요.”

보도자료를 직접 담당하고 있는 송 주임의 말을 들으며 나는 신발을 꿰어 신고 도망치듯 식당을 뛰쳐나갔다.

“민 기자, 같이 가!”

박하식 부장이 뒤따라 나오며 소리쳤다.

“오늘도 굉장히 더운 날씨네! 어디 카페 없나? 차 한 잔 하자. 내가 살게.”

박 부장이 다가오더니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제의했다. 나는 흔쾌히 응했다. 두리번거리는 우리의 눈에 큰 길 건너 독특하게 외관을 꾸민 카페가 보였다.

우리는 마주앉자마자 구청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푸른용뉴스 기사 때문에 사업을 망쳤다고 하는데 말이 됩니까?”

“말도 안돼. 사업 자체가 워낙 현실성이 없어서 구청장한테 아부하는 놈들 외에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푸른용뉴스의 부정적인 기사가 영향을 미쳤다고……? 이런 얼어죽을 놈들, 용역결과를 제대로 공개하고 사업 추진이 어려운 이유를 솔직히 밝힐 일이지 애초 사실대로 지적한 언론이 뭔 죄가 있어. 시나 중앙정부의 관료들이 멍청해서 청룡구에서 나오는 지역신문의 보도를 보고 될 사업을 안 될 사업으로 나가리 시켰다는 말인가!”

박 부장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다음주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