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깻잎 투쟁기가 깻잎 연대기가 되려면
[칼럼] 깻잎 투쟁기가 깻잎 연대기가 되려면
  • 내포뉴스
  • 승인 2022.08.1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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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정책팀장

농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더 이상 없으면 안 될 필수의 존재다. 코로나19로 농촌에 이주노동자가 사라지자 인건비가 상승하고, 일할 사람이 없어서 농작규모를 줄이거나 수확을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 만난 토마토 시설재배 농민은 일할 사람이 없어 농사지을 엄두가 안 나고 일할 맛이 안 난다며 깊은 한숨을 뱉었다. 올 초 홍성의 길가에는 인건비 상승을 단속하는 현수막이 군데군데 나부끼기도 했다.

하지만, 농촌에 사는 이주노동자의 삶은 가혹하기만 하다. 겨울에는 비닐하우스에 사는 이주노동자가 추워서 얼어 죽었다는 기사가 난다. 돈을 주면 도망간다며 농가주가 으레 임금체불을 하고, 여권을 빼앗기도 한다. 너른 들판 위,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가 이주민의 숙소다.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이유로 장시간 노동, 강도 높은 노동이 당연하게 부과된다. 이주노동자들은 작업장을 옮기고 싶어도 농가주의 허락이 없으면 이동할 수 없다(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농촌에서 탈출하기 위해 떠나고, 그러는 사이 농가주의 불신은 더 커져왔다.

앞서 나열한 현실은 최근 나온 책 ‘깻잎 투쟁기’에서 다루고 있는 농촌 이주노동자가 겪는 일이다. 이 책은 열악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농촌의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저자가 직접 농가에서 일을 하며 관찰하고 인터뷰한 결과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직접 깻잎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에서 노동자들과 일하면서 확인한 농촌과 농가의 불편한 진실을 책을 통해 전한다.

농민들에게도 나름 사정이 있다. 농업소득은 십여년 넘게 제자리다. 2003년 평균 농업소득은 연 1천여만원 수준이었는데 2021년 1천 3백만원 상승에 그쳤다. 농가 당 가구원 수는 1998년 3.1명이지만, 2021년 2.1 명으로 줄었다. 가족이 함께 농사 짓던 농가에는 이제 부부만 남았다. 가구원의 무급노동은 외부인(주로 이주노동자)의 유급노동으로 대체되었다.

2003년 농가의 평균 노무비는 평균 경영비 중 6.19%로 경영비 항목 중 네 번째였다. 2012년 5.08%로 일곱 번째로 하락하다 2021년 8.47%, 세 번째 비중으로 상승했다. 최근 노무비 비중 상승은 코로나19 등 이주노동자 인력부족 탓이다. 이는 이주노동자 저임금으로 경영비 부담을 억제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토지, 에너지, 신규투자 등의 비용은 농가에서는 통제 불가능하지만 노무비는 상대적으로 통제 및 조절 가능한 영역이다. 경영비 지출 부담의 일부를 저임금으로 해소해 온 면도 있다.

늘어나지 않는 농업소득, 도매 경매 시장에서는 가격결정권이 없는 농민들의 열악한 지위, 기후변화와 재료비 및 에너지비용의 상승 압박 속에서 농가는 인건비 통제로 소득을 확보해 오는 전략을 취하기 쉽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숙소 등 기본 생활시설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이 경우 비용절감 차원에서 최소한의 비용만 투입할 여지도 높다. 새로운 토지나 건물을 구매하거나 수리 방식이 아닌, 있는 땅에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를 치는 방식으로 말이다.

농민들의 형편이 좋지 않은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인권침해와 피해가 단지 경영 부담 완화를 위한 생존전략으로 정당화될 순 없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농민이 모두 똑같은 집단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농민은 상대적으로 농가 내부에서는 소득이 높고, 규모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임금체불, 노동계약위반, 열악한 숙소시설, 욕설과 폭행 등 차별과 배제는 엄연한 사실이자 엄혹한 현실이다.

농민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개별 농가의 책임만큼이나 사회 전체의 책임 또한 무겁다. 우리 사회의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고려하면, 농가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는 낮은 농업소득, 열악한 농촌 정주여건 등 이를 방치해온 사회 구성원과 정부의 무관심에서 비롯된 구조적 폭력이라 할 수 있다. 갑을(병정무) 관계의 불평등 세상에서, 정에 위치한 농가가 무에 위치한 이주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해결하는 길은 농가에게만 책임을 묻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사회 전체가 농업의 가치를 대우하고 농촌과 농가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제 농촌만의 깻잎 투쟁기가 아니라 모두의 깻잎 연대기를 써야한다. 피땀눈물 어린 깻잎이 아니라 낙관과 우애가 담긴 깻잎을 먹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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