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6)
정의는 유효기간이 없다(6)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9.07.22 09: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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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로서 정말 회의를 느끼네. 구청의 비위나 맞춰 항상 빨아주는 기사만 써야 하니 이게 무슨 기자고 사회의 목탁인가?”

“저도 오늘 상당히 혼란을 느꼈습니다.”

“자넨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야 할 텐데 이렇게 어용기자로 길들여져서 어떻게 하나!”

“그래서 저는 서경만 선배를 좋아합니다. 기사는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아, 나라고 그렇게 쓸 줄 모르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밥줄 끊길까봐 못 쓰고 있는 거지.”

박 부장은 시샘이라도 하듯 대꾸했다. 우리는 같은 지역의 동업자로서 동류의식을 갖고 협력하기 보다는 서로 경계할 때가 더 많았다. 사주들부터 관계가 썩 좋지 않아 4개 지역신문사들이 협회나 친목단체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기자들끼리 현장에서 만나도 겨우 아는 체 하고 지나칠 뿐 항상 서먹한 사이였다. 그러나 모처럼 박 부장과 마주앉게 되니 서로 속에 쌓인 이야기를 맘껏 털어놓으며 가까워질 수 있었다.

“구청장이 과거 민주화 투사였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지역신문을 자기 이미지 홍보를 위한 도구로만 삼는 독재자의 전철을 밟고 있어.”

“공무원들이 자꾸 오보, 오보 하는데 그 말도 귀에 거슬리더군요. 그 기준이라는 게 기사가 자신들 비위에 거슬리면 오보고 입맛에 맞으면 올바른 보도라는 말이잖아요.”

“그렇지. 설사 오보를 했더라도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요구할 수도 있고, 자기들 입장을 해명할 수도 있잖아. 그래도 신문사가 응하지 않는다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거나 경찰이나 검찰에 고소하는 것이 순서야. 그런데 그런 순서를 무시하고 돈줄로 재정이 취약한 신문사의 목부터 죄니 지방권력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이것은 푸른용뉴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지역신문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일이니 5공 때의 언론통제 정책과 무엇이 다른가.”

“청룡구 4개 지역신문사들이 뭉쳐서 한 목소리로 항의하고 성명서를 내며 공동대응을 한다면 구청도 우리를 함부로 못할 것 같은데 사주들부터 단합이 안 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글쎄 말야. 오히려 이 기회에 남의 불행을 이용해 자기 배를 채우려고 하는 사주도 있으니…. 아까 노 사장과 윤 기자가 하는 말 들었지. 물론 자기 배만 채우겠다고 하지는 않았어. 어차피 푸른용뉴스로 지출하지 않을 거면 그 예산 우리 3개 신문사들에게 공평하게 나눠 달라고 좋은 말을 했어. 그래도 선뜻 동의할 수가 없더구나. 푸른용뉴스가 당당하게 바른말 하다가 어려움을 당했는데 우리가 좋아라 하며 밥그릇을 빼앗아 먹는 것이 난 언론인의 양심으로 도저히 허락하질 않더군. 노 사장과 윤 기자는 참 대단한 사람이야.”

“저도 듣고 있기가 상당히 민망했습니다.”

“지방자치가 발전하려면 건전한 지역언론의 비판과 감시가 필요한데 구청장이 그걸 모를 리 없으면서도 앞으로 재선, 3선까지 해야 할 입장이고, 국회에 진출할 꿈도 꿀 게 분명하니 옛날 자신이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던 독재자의 언론통제 정책을 따라가는 것 아니겠어.”

“서 선배한테 전화해 볼까요?”

우리는 평소 친할 수도 없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동정과 연민을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제안했다.

“뭐 하러 전화해?”

그러나 박 부장이 냉정하게 반응했다.

“전화하고 싶으면 나중에 자네 혼자 있을 때 하거나 만나든지 하게.”

그는 아까 경쟁사 몫의 구청 보조금을 덤으로 받아내는 일에 대해 언론인 양심까지 들먹이며 경계하는 입장을 보였지만 막상 서 선배를 우리 사이에 끌어들이는 일은 반기지 않았다.

“혹 만나거나 전화하게 되면 윤 기자 얘기는 하지 말게.”

“네, 알겠습니다.”

결국 나는 박 부장과 헤어진 후에야 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 선배는 반갑게 받아주었다.

“민 기자, 오늘 기자간담회 잘 끝났어?”

“네. 그런데 선배님, 오늘 기자간담회에 초청도 못 받으시고 우리끼리만 맛있는 것 얻어먹었네요.”

나는 소신껏 기자활동을 하다가 따돌리게 된 그에게 미안했다.

“그래! 밥맛이 좋던가?”

“전 서 선배님 생각도 나고 우릴 어용기자로 만들겠다는 구청의 태도가 역겹기도 해 밥이 목구멍에 걸릴 것 같더군요.”

“홍보실에서 푸른용뉴스에 대해 온갖 욕을 다 했겠군.”

“물론이죠. 전 권력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진실을 말하고 비판하는 선배님과 푸른용뉴스 사장님을 존경합니다. 하지만 구청의 보조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한 발짝씩 양보해 타협할 수는 없습니까?”

“그게 타협할 수 있는 일인가.”

“그러다가 신문사가 문을 닫으면 어떡합니까?”

“걱정해줘서 고맙네. 우리도 방법을 찾고 있어. 우리 신문을 지지하는 구의원을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하는데 비굴하게 굴복하는 방법은 아니야. 이 분이 다음 달에 있을 구정질문을 통해 언론탄압에 대해 항의할 거야. 또 시민단체와도 접촉하고 있어.”

지난해 임종팔 구청장의 취임과 함께 새롭게 시작된 구의회는 구청장과 소속이 같은 정당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그의 편이 되어줄 만한 구의원이라면 소수 야당에 속하는 의원 중에서도 비판적인 발언을 잘 하는 정원창 의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지역구가 청룡산 아래 위치한 청룡동이어서 주민들의 눈치를 보며 적극 나서지 않고 있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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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인 2019-07-24 23:34:21
재밋습니다. 다음호를 기다리겠습니다!
지역신문의 고뇌가 느껴집니다.